본문 바로가기
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장화신은 고양이

by 호호^.^아줌마 2010. 3. 21.

김현임 칼럼장화신은 고양이


김현임


뜻밖의 전화였다. 내 사는 근처 중학교의 글짓기 강사 제의라니 그 얼마나 황홀한가. 하지만 대학 졸업장 여부를 묻는 지인의 물음에 순간 풀이 죽었다. 도처에 즐비한 울타리랄까.

 

그 열패감을 지우려 몇 년 전 출근길, 햇살 쏟아지던 교정의 행복감을 반추한다. 구령대로, 시원한 등나무 그늘로, 운동장을 두른 시멘트 계단으로 아이들과 함께했던 문예시간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교감선생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그 곳을 그만 둔 후 막급한 후회는 또 몇 번이었던가.

 

그런 어제와 달리 지나치게 씩씩해진 나다. 새벽녘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장화 신은 고양이’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러시아 민담인가? 출처가 어디 건 아버지가 세 자식에게 남긴 유산이야기다. 큰아들에게는 땅을, 둘째에겐 당신의 평생 생업이었던 방앗간을, 막내인 셋째에겐 변변히 돌아갈 몫이 없었다. 겨우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형들의 집에서 쫓겨나  춥고 어두운 길을 터덜터덜 걷는 막내의 심사가 바로 어제의 나였다.

 

머리까지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항상 어떤 힘이 나를 돕지 않던가. ‘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큰 명제는 -그 당시 앞 일이 어떻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이런 글귀 한 구절이, 때론 맘 깊이 자리한 자긍의 힘이 내겐 큰 재록이었다. 어쨌든 민담으로 다시 돌아가자.

 

고양이는 주인보다 한 마장쯤 앞장 서 걸으며 들에서 만난 농부들의 천적, 골칫거리 쥐들을 모조리 처치해 주었다. 보은거리를 묻던 수혜자들에게 땅의 모든 곡식이 주인님의 은혜로 잘 자라노라고 대답해주기를 당부했다. 결국 방치된 성, 일치감치 쥐 왕국으로 전락한 고성(古城)을 접수해 저를 거둔 주인을 공주의 부마로 만들어 주던 영민한 고양이, 그 이야기 속 우직한 주인처럼 오늘 나는 꽤 의기양양하다.  

 

몸이 약해 바깥놀이엔 소질도 취미도 없었다. 대신해 하다못해 일하는 언니에게라도 내 얘기를 쏟지 않으면 못 배기는 나였다. 그럴듯한 각색의 내 얘기를 한가하게 들어 줄 상대가 없어지자 쓰기 시작한 편지형태의 글, 어느새 글쓰기는 나의 천성이 되었다. 혹자는 고백했다. 자신이 쓴 글이 활자화되어 지면에 실리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고.  나?  지독히 억울하고 가끔은 재미나고, 대부분 쓸쓸한 내 소회를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그 소통의 념(念)이 컸다.

 

‘산불리 수불리 이재만중지간(山不利 水不利 利在挽中之間)’이라는 글귀도 내 등을 토닥인다. 그럴 듯한 학벌도 명분도 이룸의 끝은 아니리라. 산 정상에도, 바다 끝에도 진정한 이룸은 없다. 뭔가를 추구하는 그 순간에 이미 우리는 그것을 이루었다는 의미다. 돌아보면 삶의 매순간 나름대로 치열히 살았다. 턱을 당겨 똑바로 앞을 바라보며 꼿꼿이 등 세우고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참으로 분명한 걸음으로 걷는 여정이었다.

 

시간을 들일수록 제대로 결이 배어드는 건 음식만 아니다. 세월과 함께 생겨나는 무늬와 향을 지닌 것들에 경건한 목례를 보낸다. 순수한 열정과 변함없는 끈기보다 소중한 재산은 없다. 나는 아직도 활시위를 겨누는 궁수(弓手)임이 행복하다. 부족하지만 변함없는 발걸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리라. 유일한 내 편인 열정이라는 붉은 장화신은 고양이, 그 한 마리를 동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