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장 후보 박정자 선생 전통불화전
문화예술회관에서 관세음보살 보문품 등 선봬
40년 불화인생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 없어”
중요문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후보인 박정자 선생의 불화인생 40년을 총망라한 불화전시회가 지난 1일 나주문화예술화관에서 개막, 5일까지 선보인다.
지난 2007년 전통채색의 탱화와 그림옷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나주에서 불화전시회를 가져오고 있는 선생은 2008년에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병풍과 단청문양전을, 그리고 지난해에는 심향사에서 순금박 단청과 순금니 불화를 전시해 불화의 불모지나 다음 없는 나주에 불화의 정통성을 선보여 왔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지난 3년 동안 보여주지 못한 작품과 관세음보살 보문품 변상도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장흥 출신으로 나주로 시집와 나주중앙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던 선생은 서울에서 살던 지난 1971년 당시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열린 불화전시회에 우연히 들렀다가 단청의 명인 만봉 이치호 스님의 탱화를 보는 순간 한눈에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사천왕의 호위를 받으면서 좌우에 보살을 거느린 부처님이 그윽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자비스러운지 그만 한 순간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원래 동양화를 전공한 미술학도 출신의 박 씨는 8년 동안 교편을 잡으면서 틈틈이 시간이 나면 난을 주제로 한 동양화, 그리고 붓글씨를 써왔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선생은 탱화를 접하고 난 뒤 바늘구멍 하나 허용하지 않는 채색하며, 일점일획의 빈 공간도 없이 화폭 가득한 것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박 씨는 그 길로 만봉 스님이 거처하는 봉원사를 찾아 나서 법당 옆 화실에서 탱화를 그리고 있던 만봉 스님을 만나 무릎을 꿇고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스님은 “배움은 내가 네게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네가 내게 와 어떻게 배우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던지고 자리를 떴다. 당시 스님의 문하생은 수백 명이나 되었지만 대부분은 한두 달, 길어야 몇 년을 넘기지 못했다.
따라서 스님의 말은 기초공부만 10년이 넘는 탱화가 매우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배우려면 알아서 하라는 눈치였다. 허락이라면 허락이었고 어떻게 보면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비웃음으로도 여겨졌다.
이렇게 시작된 선생의 불화인생이 40여년의 세월을 맞고 있지만 그 동안 단 한번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해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선생은 요즘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꼬박 불화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나주시 산정동 자택에 한국전통불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선생의 꿈은 나주에 전통불화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당초 선생이 나주에 내려오게 된 계기가 1997년 당시 나인수 시장이 폐교가 된 다시 신광초등학교를 매입, 불화박물관을 지어주겠다고 해서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으나 시장이 바뀌면서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선생은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나주의 역사문화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주의 명운을 걸고 불화박물관이 들어서야 한다”는 확신에 찬 신념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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