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문인협회 시화전 '희뿌연 안개 속에 희망의 등대를 담아'
38명 시인들이 자아낸 주옥 같은 시심(詩心)에 시인화가 김종이 월계관을 씌우다
나주문인협회(회장 김상섭) 회원들이 마련한 두 번째 시화전이 지난 18일부터 닷새 동안 나주문화예술회관 1층 전시실에서 열렸다.
‘희뿌연 안개 속에 희망의 등대를 담아’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시화전은 나주문인협회 회원 38명과 김종, 김삼진, 최규창, 최은하 등 출향시인들의 시화가 한데 선보여 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시인들의 시에 나주미술협회 회장인 소전 김선회 화백과 그림의 선이 고운 연당 김연희 화백, 그리고 시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고 있는 김종 화백의 그림이 더해져 보는 이들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행사를 주관한 나주문인협회 김상섭 회장은 “나라 안팎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난무하는 가운데 시를 통해 우리 이웃과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에도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히며, “지역 문인들의 시심에 더욱 풍성한 향기를 덧입혀준 김종 시임 겸 화백과 미술협회 김선회 회장 등 회원들에게 감사한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
한편, 문인협회는 이번 시화전에 출품한 작가들의 시를 모아 시집 ‘희뿌연 안개 속에 희망을 등대를 담아(도서출판 한림 刊)’를 함께 선보였다.
그 감동과 흐뭇함을 마음에만 담아두기에는 아까운 마음에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아왔으니...
시인의 시심(詩心)과 화가의 땀으로 빚은 물감냄새가 전해질 리 만무하지만 아직 식지 않은 전시장의 시향(詩香) 을 담아본다.
아이야 영산강 가자
최규창
아이야 영산강 가자.
뜨거운 햇빛 받으며
잔 물결 하늘 거리는
영산강으로 가자.
영산강에 가서
낚싯대 드리우고
말없는 하늘을 바라 보자
가끔 날아오는 잠자리 처럼
물끄러미 너를 바라보자.
아이야 영산강 가자.
석양의 그늘속에서
풀 향기 그윽한 언덕은
얼마나 다정한가
영산강에 가서
돌베개로 하늘을 덮고
뜻이라는 뜻
모두 내 버리고
하늘속에 젖어 들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매미 소리 처럼
아이야 영산강 가자.
더위에 겨운 실버들
늘어서 있고
가끔 엄니의 미소이듯 산들바람
불어 오는 곳
게 가서
물속에 담긴 발
송사리떼 노니는 사이 사이
너는
아득한 나그네처럼
무등산
김종
식은 자의 가슴에 불을 넣는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불을 넣는다
귀먹고 눈먼 자에게도 불을 넣는다
아아 무등산 고여도 넘치지 않는 바다
아아 무등산 무등산
죽음의 허리에서 눈뜨는 불씨
아아 무등산 끝끝내 끝까지 가득하던 山
강추위와 찔찔거리는 눈물과
째째한 목숨과 닫힌 방과 감탄사와
새벽에서 밤중까지 흘러내리지 않게 쓸어안고
흙 아닌 자 흙으로
인간 아닌 자 인간으로
모두모두 앉은뱅이에서 일으켜 세우며
크고 무서운 하늘의 말씀으로
굽어보고 있나니.
채전을 일구며
김월룡
석류나무 틈새의 땅 아까워 일구다 보니
석류나무엔
여름 내내 이파리 담금질하여 붉게 익은 열매
아직도 빨아먹을 게 있다고
가지를 떠나지 못한 채 대롱거리며 버티고 있다
땅에 떨어지면 상처라도 날까.
머리가 깨질까의 공포에
이 앙당물고 가지를 붙들고 있는 것일까
놓아버리면 피안인 것을
대지는 부드럽게 포옹하고 가지들은 다시 싹을 틔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준다고 안달인데도
그 아래서 땀을 씻는 나
축 늘어진 석류 한 개 따들고
채소들 잘 자라난 육보시를 바라며 시부렁거린
'욕심은 금물인 거야, 버려야 얻은당께!'
*작가의 말: 석류나무가 심어진 밭의 틈새를 채전 밭으로 일구다가
가지가 휘늘어져 땅에 닿아 있는 석류를 보며 만물은 땅에서 나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진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욕심으로 얼룩진 세상을 향한 달그림자의 독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떠도는 혼(魂)
나종입
헛간 정도는 거뜬히 지어낸다는
새끼목수 함평아재는
술에 취하면
육자배기를 곧장 부르시곤 했다
고나~어~ 해!
논뙈기 밭뙈기 팔아
자식 대학 보내더니
성공해서 아비 모셔 간다고
집까지 팔아 서울로 갔다
언제인가
지하철 2호선에서 술 취한 육자배기 가락을 들었다
고단한 목소리로
가방에 연장을 잔뜩 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육자배기 소리를 들었다.
어제는 함평아재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친구가 부르는 상두가에 맞춰
산으로 향했다
육자배기 소리는 환청으로 들려왔다.
이슬
靑松 金成大
아직
발걸음 소리
꿈속에서 헤매
눈엔 보이지 않고
새하얀
사랑이 한데 모여
애정을 나누고 있다
늘 푸른
희망을 안겨 주러
천릿길 돌아 혼자서 왔네
외로움 감싸
따뜻한
속삭임 할 때
수정 열매
대롱대롱 메달아
힘겨워 떨어지면
그리운 임 올까
톡톡띄는
설렌 맘으로
동트기 전에 빨리 오소서,
종이배
김삼진
돌다리에 앉아서
종이배를 띄운다
까닥까닥
동동동
꽃잎 실은 어디만큼
떠 가고 있는지
멀리 떠난 내 친구
생각이 난다.
도랑물은 졸졸졸
종이배가 동동동
희망의 꿈
싣고서
둥실 떠간 종이배
물가에 혼자 앉아
지난날 생각하면
소꼽동무 내 친구
그리워진다.
오월의 바람
김삼진
나는 오월의 바람이 좋다.
하루 두 번 버스를 타고
도시와 시골 사이를 다니는 나는
오월의 풋풋한 바람을 마신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면
산뜻한 푸르름으로 살찌는 산과 들
눈부신 햇빛 아래 맑은 냇물이 흐른다.
창문을 열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훈훈하고 시원한 오월의 바람은
안으로 가슴 속까지 파고 들어와선
아름다운 꿈 깨우며 날 흔든다.
나는 꿀벌이 아니라도 좋고 좋다.
어쩌다 아카시아 꽃길을 달리노라면
미칠 것같이 좋기만 한 꽃 향기.
조금 더 쉬어 가라 붙잡기나 하듯
천 개 만 개의 잎들이 손을 흔들어 주고
아카시아 흰 꽃잎은
나비가 되어 춤을 춘다.
눈물에게
전숙
눈물은 태초에 가시였단다
순한 눈을 지키라고 하느님이 선물로 주셨지
발톱을 세워 달려드는 적들을
가시는 차마 찌를 수 없었단다
마음이 너무 투명해서
적들의 아픔까지 유리알처럼 보였거든
세상의 순한 눈들은
가시의 방향을 바꾸어
제 마음을 찌르고 말았단다
도살장의 소
마음이 흘린 피
그게 눈물이란다.
무더운 여름날 유선각에 누워
나종입
길 건너 마을 어귀로 꽃상여가 간다
한 때는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지만
치열한 사연들을 풀어헤치며 사라지는 꽃상여
매미가 떨고 있는 정오의 플라타너스 그늘에
처절한 울음이 매달려 있다
머얼리 들려오는 상두꾼 상여소리
카세트 테잎처럼으로 늘어질 때
유선각 마루위엔
저마다 살아온 기억의 불을 켜고
짓물러가는 눈 주위에 또 눈물을 보태고
얼굴에 그려진 세월의 흔적에
깊이 간직해온 사연들을 훔쳐보고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다고 단정한 나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더위로 늘어진 정오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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