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백로들을 어쩌란 말인가?
“강 속의 물고기는 중요하고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까?”
“산 속의 새들 살리자고 마을 사람들 악취와 소음 속에 살게 놔두자는 겁니까?”
마치 부모가 아이를 앞에 두고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하고 묻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 종종 이런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산강 살리기 사업의 찬반토론장에서, 그리고 마을 뒷산에 집단서식하고 있는 백로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송월동 흥룡마을 사람들이 마을 뒷산 대나무숲에 날아들기 시작한 백로떼들 때문에 여름나기가 고통스럽다는 얘기를 들은 지 얼추 4~5년째다.
처음에는 마을 뒷산을 뒤덮은 흰 새떼를 보며 마을에 큰 경사가 날 조짐이라며 반겼던 주민들이 여름이 깊어지면서 심한 악취와 소음, 그리고 지붕과 장독대, 심지어 농작물 위에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분비물 때문에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겨울에 조류독감과 신종플루 때문에 쓰기 시작했던 마스크를 집 안팎에서 쓰고 다니는 모습이 예사로운 풍경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골칫덩어리로 여겨지고 있는 백로서식지가 올 가을을 마지막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나주시가 도시계획도로를 개설하면서 백로서식지를 관통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봄 대나무를 베던 시공업체가 수많은 백로떼를 막을 길이 없어 공사를 중단했다가 올 가을 백로들이 남쪽으로 이동을 하면 작전을 수행한다는 입장이다.
마을 주민들은 어서 빨리 찬바람이 나서 백로떼가 날아가 주기를 바라고 있고, 100m 밖에서 이 마을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그래도 보기 좋은 풍경인데 하루아침에 없애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지만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고민하거나 따지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동신대 도시관광계획학과 조진상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조 교수도 뚜렷한 답변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의미 있는 사례를 건네주었다.
먼저, 일본의 사례다.
일본 오오사카 시내에는 오오사카 가스회사의 사원주택이 있다. 6층 규모의 작은 아파트인데 외벽과 창틀 사이에 나무를 심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새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도심 한 가운데 새들의 천국이 형성된 것이다. 당연히 분비물 때문에 주변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물론 냄새도 심하고 새들의 지저귐 때문에 가까이에서는 대화가 안 될 지경이 됐다. 그런데도 정작 그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이것을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곳은 독일의 한 작은 마을의 사례다.
조 교수가 잠시 이 마을에 살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날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도로를 시에서 폐쇄를 했다는 것이다. 개구리들이 산란기를 맞아 웅덩이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가 산란을 하고 내려오는데 교통사고가 빈번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그 지역의 한 시민단체가 개구리들을 살리기 위해 시에 도로 폐쇄를 건의하자 시가 이를 받아들여 개구리 산란기인 두 달 동안 길을 폐쇄하고 주민들은 기꺼이 먼 길을 돌아 통행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개구리도 아니고 잡새도 아닌 백로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이나 노력도 없이 서식지를 빼앗는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의문이 간다.
그런데 백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마을이 나주만은 아닌 모양이다.
마을 뒷산의 짙푸른 대나무와 소나무 숲을 하얀색으로 아름답게 수놓은 ‘선비의 상징’ 백로가 상놈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마을이 있다. 바로 경남 창원시 대산면 우암리 신곡마을.
수천 마리의 백로떼가 마을에 둥지를 틀고 밤낮없이 울어대며 역한 냄새의 배설물을 내뿜는가 하면 새벽 2∼5시쯤이며 도심의 폭주족들보다 더 큰 굉음을 내며 울어대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5년째 백로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은 백로떼를 쫓아내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고 폭죽까지 터뜨리고 있다. 주민들은 말한다.
“백로가 선비의 상징이라고요? 그런 말 마세요. 웬수예요, 웬수!”
경남 함양군 함양읍 하백마을 주민들도 마을 뒷산에 있는 천 여 마리의 백로떼를 쫓아버리려고 대나무를 베어냈다. 하지만 백로들이 바로 옆 소나무숲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애꿎은 대나무만 잘려나간 꼴이 됐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행정기관에 백로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조치를 취해달라는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조류학자인 경남대 자연과학부 함규황 교수는 “백로는 먹잇감이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깨끗한 곳이 아니면 절대 집단 서식하지 않는다”면서 “수천 마리의 백로떼야말로 마을이 오염되지 않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함 교수는 “마을이 오염지역으로 바뀌지 않는 한 백로떼가 자기네 서식지를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수십년을 백로떼와 동고동락하며 학마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을들도 있다.
충남 연기군 금남면 감성리에 있는 백로마을. 충남도기념물 제71호인 이 마을 백로서식지는 조선시대부터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은 백로가 많을 때는 풍년이 들고 적을 때는 흉년이 든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인근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 백로서식지는 청용산 아래 용연저수지에 조성된 작은 인공섬과 한가롭게 노는 백로, 왜가리의 모습이 어우러져 신비를 자아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백로가 찾아와 집단 번식을 하면 풍년과 행운을 안겨다 준다고 해서 백로를 길조로 여겨 오늘날까지 잘 보호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희귀조인 해오라기까지 찾아들어 조류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으며 현재 천연기념물 제211호로 지정돼 있다.
이처럼 백로가 모여드는 마을은 첫째는 먹을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산강이 가까이 있고, 넓은 들이 있어 먹이를 구하는데 어렵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는 휴식하는 보금자리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산에는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마을 사람들 또한 백로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새들이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나주도 고민할 때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 미워하고 파괴하는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함께 어울려 사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다. 백로서식지는 그 지역 생태계 건강을 판가름하게 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이 오는 소리에... (0) | 2010.09.03 |
---|---|
책 읽기 좋은 이 계절에 (0) | 2010.08.29 |
우물안 개구리 나주댁, 파리는 어찌갈꼬ㅡ.ㅡ;; (0) | 2010.08.19 |
모기 보고 칼 뽑나 (0) | 2010.08.17 |
뎬무는 지금... (0) | 2010.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