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젊다고 말할 것인가
아주 오래전 주말이면 눈을 부릅뜨고 즐겨보던 명화극장의 한 장면이다.
중세시대 일본의 한 산촌,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운 계절인 겨울, 태어난 사내아이는 논바닥에 버려지고, 여자 아이는 소금 한줌에 거래된다. 타인의 식량에 손을 댄 사람은 가족과 함께 생매장된다. 노인은 새로 태어난 생명을 위하여 마을의 높은 산 ‘나라야마’로 떠나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
한 노인은 이제 칠십을 앞두고 나라야마로 떠날 준비를 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새장가를 든 아들에게 자신이 죽어도 좋을 만큼 쇠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절구통에 이를 부딪쳐 깨트린다. 피를 흘리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에 역설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미소가 번진다.
가을이 되자 노인은 말한다 “내일 새벽 나라야마에 갈 거다” 다음날 새벽 노모를 지게에 짊어진 진 아들은 천근같은 걸음으로 나라야마를 향한다. 나라야마 정상에서 삶을 마감하는 노인에겐 천국이 기다린다는 전설이 있다. 어머니를 정상에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눈이 내린다. 뒤돌아보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없는 미소로 어서 내려가라는 손짓과 함께 눈인사를 건네는 노인...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1982년에 선보인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다. 어쩌면 우리나라 고려장과도 같은 풍습을 가졌던 일본의 전설을 그린 이 영화는 개봉한 이듬해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작품성이나 일본인들의 정서를 돌이켜보자는 것이 아니다. 추석을 앞두고 치매진단을 받은 노모에 대해 누가 모실까 하는 문제를 두고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헤어진 어느 가족의 얘기를 들으면서 떠올린 것이다. 큰며느리로서 당연히 모셔야지 하면서도 걱정하는 지인(知人)에게 “아버지랑 이혼하세요”하는 말을 던졌다는 그 집 아들의 속내가 진심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월 2일이 노인의날이었다.
경로효친 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이날을 기해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사회와 이웃에 헌신하며 노인복지를 위해 힘써온 노인과 노인단체, 노인복지 기여자 등을 대상으로 훈장·포장 및 표창을 수여한다. 뿐만 아니라 그해 100세가 되는 노인들에게 명아주로 만든 전통 지팡이인 청려장(靑藜杖)을 증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는 노인의날이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다. 아마도 직장인들에게는 주5일 근무하는 주말이라 평일에 행사를 치르려는 모양이다.
나주노인복지관에서 12일에 노인의날 기념잔치를 한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노인의날이 노인들에게 하루 기쁨을 안겨주기 위한 날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정말로 우리사회가 노인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를 하고 있는가 돌이켜 보고, 나는 과연 늙음을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영화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 영화에서는 기꺼이 나라야마로 가기를 청하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죽어도 나라야마는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노인이 나온다. 앞의 노인은 한 겨울 양식이 떨어져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어머니와 같이 죽겠다는 아들을 설득해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이별을 고한다.
뒤의 노인은 억지로 나라야마 산 정상까지 갔다가 결코 떨어지지 않겠다며 아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지게째 벗어던지고 떠나버리는 자식과 비명어린 이별을 해야만 했다.
‘나라야마’가 아닌 요양시설을 선택하는 현대의 노인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자식인가 생각해보니 몹시 가슴이 아리고 얼굴이 화끈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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