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릴때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목포, 뼈아픈 역사 위에 꽃피운 근대문화의 금자탑
나주학생독립기념관 시민역사교실 목포 근대문화유산 답사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경술국치 100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나주의 근·현대사 알기 시민역사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목포권 근대문화유산 답사가 실시됐다.
지난 5월 ‘타오르는 강’의 저자 문순태 작가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매달 한 차례씩 열리고 있는 시민역사교실은 이번 목포 근대문화유산 답사를 통해 일제에 의해 문을 연 항구도시 목포가 어떻게 일제의 수탈에 이용됐고 그 잔재 위에 어떻게 정체성을 찾아왔는지를 찾아가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번 목포 탐방에는 전남문화관광해설사 조대형 선생이 안내와 해설을 맡았다.
일정은 목포의 상징인 유달산 유적지를 시작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재활용한 목포근대역사관, 일본영사관, 동본역사 목포별원, 목포역(멜라콩다리) 등을 돌아보았다.
실제로 일제의 조선자본 수탈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은 당시의 생생한 역사현장과 기록들이 남아있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수치의 역사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한때 전국적으로 몰아쳤던 일제잔재 청산운동에도 목포의 경우 일제시대에 조성된 거리와 건물, 정원 등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수치의 역사도 역사'라는 표본이 되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 진행된 역사교실은 ▲‘나주학생독립운동의 배경 및 일제침탈(김남철, 나주고 교사)’ ▲‘학생독립운동과 청년단체의 활동(이기훈 목포대교수)’ ▲‘근대교육과 학생독립운동의 정신계승(박만규 전남대역사교육학과 교수)’ ▲‘일제의 나주 토지수탈과 수리조합(박태선 전남대역사교육학과 출강)’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으며, 오는 20일 ‘일제강점 100년과 나주(한규무 광주대교수)’ 강연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치게 된다.
기념관은 이번 목포 답사에 이어 오는 23일과 24일 1박2일 일정으로 부산 근대문화권역을 돌아보는 ‘다른 고장으로 떠나는 근대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노적봉 다산목(多産木)은 다산을 이루게 한다는
인근 주민들의 믿음의 대상으로 은밀하게 보존돼 왔다.
그러다 2000년 10월 새천년 시민의 종 종각을 건설하는 과정에
외부로 드러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실제로 이 나무를 쳐다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인근지역은 유난히 출산율이 높았다다는 설이 전해진다고.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여자나무로 불려지고 있으나
오래전부터 다산목으로 전해져오고 있으며,
수종은 팽나무로 150년이 넘은 어미나무 뿌리에서 싹이 나와 성장하여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남자들이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한다.
여자들은 열심히 사진 찍고 태연자약한데...
2000년도에 세워진 시민종각
대통령 김대중의 작품으로
전국에서 딱 하나 뿐인 현파이란다.
노적봉.....
노적봉이다.
양동교회(등록문화재 제114호), 전남 최초로 세워진 교회란다.
1897년 목포항 개항 이후
영산강뱃길을 타고 영산포까지 왔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유진벨 선교사가 나주 서성문 근처에 선교지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하려다 당시 나주 유생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딛혀
선교지를 목포로 옮기면서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1910년에 세워진 교회로
그때 당시 건립된 건물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문화재 114호로 등록됐다.
나주에서는 선교활동을 포기하고 목포로 선교지를 옮기기는 했지만
1908년 선교사 클레멘트 오웬(Clement Owen, 오기원)과
打馬子 南大理, 조사 마서규, 임성옥, 노응표, 조상학
제씨가 西門당을 신설하고 서문정교회라 이름 한 것이
현재 나주교회와 나주제일교회의 연혁으로 기록되고 있어
최초의 교회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목포에 종교가 들어온 순서는
기독교(1897)...카톨릭(?)...일본불교(1898)...한국불교(1915) 순이라고 한다.
목포 유달산에 우뚝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조각가 탁연화 씨의 작품이다.
어느 관광객이 동상이 왼쪽으로 약간 기운 것을 보고 이유를 묻자
목포의 한 거물급 인사가 그랬단다.
"내일 당장 목포시장한테 전화해서 똑바로 세우라고 하겠다"고.
믿거나 말거나...
오른쪽 글씨를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목포 유달산에서 바라본
목포 시가지와 삼학도 전경.
원래는 섬이었으나 간척지사업으로 매립됐다가
지금은 다시 바다로 수로를 놓고 있는 중이란다.
유달산 첫번째 정자인 대학루에서 목포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안내를 하고 있는 조대형 선생과 나주 시민역사교실 일행들.
러시아산.
일제시대 러시아가 영사관을 짓기 위해 사들인 산이란다.
목포 유달산의 또 하나의 명물
평보 서희환 선생이 깨진 오석에 새긴 작품이다.
서희환 선생(1934.1.5 함평에서 나고 1995. 4. 19 서울에서 지다)은
한글서예를 전문으로 창작활동을 한 서예가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선생의 작품이 소장된
대한민국 최초의 작가라고 한다.
일제시대에 조성된 목포의 시가지.
도로와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꽃게 비빔밥, 솔찮히 맛있다.
일제의 수탈 상징이었던 목포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전하는 근대문화유산의 대표적인 건물이 되고 있다.
당시의 상장
나주군 영산면 동수리 나도진에게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서장이
식량증산정책에 좋은 실적을 올려서
수여한 모양이다.
오른쪽 사진은
당시 목포역 열차 시각표다.
목포에서 중국 장춘, 대련까지
운행이 된 모양이다.
아...
그리고 미처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목포근대역사관에는 이름 없는 방이 하나 있다.
조대형 선생은
심신허약자, 임산부, 노약자, 뇌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은
절대 봐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데려간 곳이다.
그 곳에는...
우리는 두번 다시 국권이 유린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주.민주.통일 만세!!!!
일본식 정원이 그대로 남아있는 당시의 건물
지금은 프랑스식 카페로 쓰이고 있다.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근대문화도시다.
목포는 예향이다.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 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김은 밤 조각달은 흘러 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지나
못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목포의눈물
'남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F1 코리아그랑프리 22일 시동 '부릉부릉' (0) | 2010.10.22 |
---|---|
구례 잔수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0) | 2010.10.18 |
10월 광주서 독일 등 5개국 60개 회사 참여하는 국제소금박람회 (0) | 2010.09.24 |
삐걱거리는 남도 생태마을, 그러나 그 속의 잠재력 ‘무궁무진’ (0) | 2010.09.20 |
생태적·주체적 인재 양성하는 강진군 도암면 늦봄문익환학교 (0) | 2010.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