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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호랑이를 떠나보내며..전숙

by 호호^.^아줌마 2010. 12. 27.

◇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이슬촌마을)에 있는 노안성당(근대문화유산 44호)

 

 

호랑이를 떠나보내며

                                                            전숙

세상의 모든 꿈을 입고 성장한 채로 달려온 그는

도루묵 같은 껍질을 우리 곁에 벗어두고 돌아갔다

그의 온 생이 지도처럼 무늬진 검은 등허리를 더듬어본다

그가 노심초사 올려다본 혁신의 바위등성이

한달음에 뛰어내리던 금성의 아스라한 벼랑

도약을 위해 웅크리던 영산강의 잡초투성이 샛길이

점자처럼 돋을새김이 되어있다

그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뜨거운 찻잔처럼 건너오던

빛나던 눈빛은 어디에 새겨졌을까

벅차오르듯 곤두서던 그의 황갈색 갈기는

어느덧 불이 들어온 저녁놀신호등에 속도를 늦추고

나는 또 회한의 강을 건넌다

다시는 정처 없이 보내지 않으리라

그를 반겼던 첫 눈길처럼

불룩한 고봉밥을 지어서 배불리 먹여 보내리라

결단코 부끄러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으리라

촛불 되어 타오르던 다짐의 불꽃이 한줌 재로 잦아드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겨울강에 맨발로 서계시고

바람은 꺾이고 꺾여 미련처럼 뒷걸음질이다

원가 없는 노동이 포효하는 벌판엔

민족의 주식인 쌀가마니들이

검은 포장을 뒤집어쓴 채 한뎃잠을 자고 있다


무성하던 시간의 잎새는

꼭 그러쥔 발톱 사이로 낙엽처럼 흩어지고

때에 이르러서

입고 온 모든 꿈을 우리에게 남겨둔 채

벌거벗은 나무가 된 그는 이제 어디로 떠나는가.


시인 전숙 

- ‘시와 사람’ 등단

- ‘원탁시회’ 동인

- 저서: 시집 ‘나이든 호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