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무형문화재 샛골나이 노진남 씨
나주 샛골에는 직녀할매가 산다
… 샛골나이 명인 노진남 할머니
서정주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짝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직녀의 베 짜기라고 하면 으레 칠월 칠석을 떠올리지만 사실 여름에는 베를 짜지 않는다. 땀이 차서 무명베를 짜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름은 무명베의 원료인 목화를 따서 말리는 일을 해야 하는 계절이다. 나주의 다시면에 있는, 무명베를 짜는 장인의 집에서는 여름 볕에 탱글탱글한 목화가 익어가고 있었다.
예로부터 나주는 개성, 진주 등과 함께 고운 무명의 산지로 유명했는데, 옛사람들은 나주에서 나는 고운 무명베를 '나주 세목細木'이라 하였다. 세목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목화가 좋아야 한다.
나주는 볕이 잘 들고 물이 풍부한 고장이라 풍성한 목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샛골의 여인들이 베를 잘 짜서 '샛골의 직녀들'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말이 전한다. 가늘고 곱기로 유명한 샛골의 무명은 비단보다도 더 곱다는 대찬大讚을 받기도 했다.
1968년부터 샛골의 직녀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모두 '샛골나이'라 부르게 되었다.
비단보다도 더 가늘고 고운 무명베를 짜는 샛골나이
과거로 시간 여행이라도 하는 듯 고구려라는 고대 국가가 있던 그 시절로 회귀하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멀리에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드라마 <주몽>을 찍은 세트장이 보였고, 수풀의 맑음과 깊음이 남달라 '청림靑林 마을'이라고도 불렸다는 다시면은 동화 속에 나오는 신령한 마을 같았다. 그리고 샛골의 직녀,
"다시가 원래 샛골 고장이야. 거시기 예전에는 샛골 세목이라 불렀어. 지금도 이북이나 일본이나 대만에 가서 '샛골 세목'이라 하면 알 거야. '나이'라고 하면 몰라. '나이'는 새로 만든 말이야." '나이'가 길쌈이라는 뜻이라고
그가 별세하면서 지정이 해제되었다가 1990년
"큰 애기들이 이걸 짜지 못하면 시집을 못 갔어." 장인은 손바늘 솜씨가 남다르던 어머니 아래서 베 짜기를 배웠다. 장인의 아버지는 '다시 사는 우체국 총각'을 점찍어 그녀를 함평에서 나주로 시집보냈다. 1953년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다시까지 와서 세 번인가 거듭거듭 보고 결정했어. 직장도 있고, 키도 크고, 그 이상 더 예쁜 총각이 없다는 거야. 어린 속알지로 예쁘다는 소리가 좀 들리더라고. 결혼해서는 고생 많이 했지."
"고생 퍽시게 했어." 장인의 남편은 한국전쟁에 징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 다녔고, 장인은 밤마다 베를 짰다. 최석보 씨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우체국을 그만둔 이후로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한때는 열넷이나 되던 식구를 모두 장인이 무명베를 짜서 먹여 살렸다.
장인을 나주 직녀라 부르는 것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한창때의
샛골나이
장인은 베가 팔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가 생긴 뒤로 솜이불이 필요가 없어져 버렸잖아. 옷도 나일론이 있응께 이런 거 필요 없어져 부렸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베틀에 앉아 베를 짰다. 노구의 몸으로 감당하기에 베틀은 거대하고도 녹록치 않았다. 장인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북을 좌우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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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목화를 햇볕에 5일 정도 말린 후 씨 앗기를 한다. 습기가 남아 있으면 씨앗이 잘 빠지지 않으므로, 일단 목화를 볕에 잘 말려야 한다.
솜 타기
엉켜 있는 목화 덩어리를 활줄에 걸어 줄을 튕기는 꼭두말로 튕긴다. 꼭두말이 활줄에 진동을 일으키며 솜이 덩글덩글하게 타진다. 꼭두말을 당기면 뭉쳐진 솜덩어리가 뭉게구름처럼 하나하나 피어난다.
고치 말기
솜타기를 한 솜을 고치 말판에 놓고 말대로 말아 고치를 만든다. 솜을 가늘고 길게 말아야 실 잣기를 할 때 실도 잘 자아지고 고루 잘 뽑혀 나온다. 고치를 말고 나면 고치 말대를 빼낸다.
실 뽑기
물레에서 실을 잣아 만든 동그란 뭉치를 무명덩이라 하는데, 열 개의 무명덩이를 날꼬정이에 꽂아 고무대에 끼워 실을 뽑는다. 열 개의 무명덩이에서 열 올의 실을 모아 잡아 쥐어 실을 뽑는데, 이것을 '한 모습'이라 한다.
바디는 피륙을 짤 때 실을 꿰어 날을 고르기 위한 기구이다. 바디를 끼우는 테, 홈이 있는 두 짝의 나무를 '바디집'이라 한다.
북
바디를 바디집에 끼운 후, 베틀 사이로 실 꾸리가 담긴 북을 넣어 좌우로 왕복하며 베를 짜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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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목화의 씨앗을 빼는 '씨 앗기'를 한다. 씨 앗기 한 목화를 다시 햇볕에 말려, 활줄에 대고 줄을 튕기는 꼭두말을 걸어 목화를 부풀린다. '솜 타기'의 과정이다. 솜 타기 한 솜을 말판에 놓고 말대로 마는 것을 '고치 말기'라 한다.
그리고 물레에 고치를 말아 실 잣기를 한다. 실 잣기 한 것을 '무명덩이'라 하는데 열 개의 무명덩이를 날꼬정이에 꽂아 고무대에 끼워 실을 뽑는다. 이것을 길이를 결정하는 베날기를 하고, 베날기를 한 날실 꾸러미를 쌀 풀물에 삶는데 실을 질겨지게 하기 위함이다.
바디 구멍에 실을 꿴 후 베메기도투마리에 벱뎅이(베덩어리)를 끼워가며 돌려 감는다를 하고, 이것을 도투마리베를 짤 때 날을 감는 틀에 걸어 무명베를 짠다. 베를 짠 후 잿물을 받아 다시 한 번 삶는데, 무명베를 하얗게 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것을 말린 후 다듬이질 해 풀을 먹이면, 비로소 고단한 베 짜는 과정이 끝난다.
1932년 함평에서 태어나 1953년 샛골지금의 다시면로 시집와 삼대째 나주 샛골나이의 명맥을 잇고 있다.
동서 김홍남과 며느리
<국립국어원 소식지 쉼표,마침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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