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와 느자구
종종 경우 없고 버릇 없는 사람을 보면 "늦쪽바가지 없다"는 말을 썼더니 어떤 이가 "그게 뭔 말이냐?"고 물어온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체나 확실한 의미를 알고 쓴 말을 아닌 듯하여 말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 몇 곳을 뒤져봐도 정확하게 '늦쪽바가지'라는 말의 흔적은 찾기 어렵고 아마도 이건 전라도 특히 나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주워들은 이쪽 사람들의 방언이 아닐까 싶고, 늦없다, 느자구없다에서 좀 더 어감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나 혼자 만들어 쓴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라도 말에는 '싸가지'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느자구'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싸가지'처럼 '느자구 있다'나 '느자구 없다'처럼 존재 동사인 '있다'나 '없다'와만 어울려 쓰이는 특징을 갖는다. '느자구'는 어원적으로 '늦'이라는 명사에 '-아구'라는 접미사가 결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명사 '늦'은 전라도 말에서 '늣'으로 홀로 쓰이는 수도 있는데, 그 의미는 '느자구'와 같다. 그래서 '쩌 놈은 허는 것이 늣이 있어'라 하기도 하고, '늣 없는 놈헌테는 기대를 말아야제'라 쓰기도 한다. 이 '늣'은 옛말에 '늦'으로 나타나는데, <조짐>이나 <징조>를 뜻하던 말이었다.
그래서 『용비어천가』에는 '寶位 실 느지르샷다(是寶位將登之祥)'와 같은 말이 보이고, 『월인석보』에는 '죽사리 버서날 느지오'와 같은 표현도 나타난다. 이 옛말의 '늦'이 전라도 말에서 '늣'으로 변했지만, 접미사 '-아구'가 붙은 '느자구'에는 원래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처럼 '늦'이 홀로 쓰일 때에는 '늣'이 되지만 복합어에서는 '늦'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언어 변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복합어 안에서는 언어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싸가지'가 구체적 명사인 '싹'으로부터 파생되어 <앞이 트일 징조>와 같은 추상적 의미로 변해 갔다면, '느자구'는 처음부터 <징조>나 <조짐>의 뜻을 가졌던 것이다. 옛말 '늦'이 가치 중립적인 <징조>의 뜻만을 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의미인 <앞으로 일이 잘 될 징조>를 가졌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한 일이나, '느자구'는 '싸가지'와 달리 애초부터 추상적 의미를 가졌던 것임은 분명하다.
오늘날 '싸가지 없다'나 '느자구 없다'는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형편없음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 원래는 그 형편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미루어 그 사람의 앞날 역시 형편없으리라는 뜻이 담겼을 터이지만, 근자에는 장래에 대한 부정적 징조보다는 단순히 눈앞에 벌어지는 행태가 형편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긍께 아줌마가 아무말이나 쓰면 되겄소? 교양있게 써야제?"
"저..저...저런 늦쪽바가지 없는 개자식 같으니라고, 파딱 안 인나냐?"
- 나주시 금계동 나주천변에 있는 한정식 '예향'에서... 개팔자가 쭉 늘어졌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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