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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김용택...정호승...그리고 전숙

by 호호^.^아줌마 2011. 11. 10.

 

그리울 땐

그대 시를 읽습니다

그대 시는, 제 가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림을 그려줍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언제 만나 이 그리움, 다 쏟아낼 수  있을는지요

-김용택 '그리움'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창밖 키다리 은행나무가 진노랑셔츠를 절반쯤 벗어 은근슬쩍 골격미를 드러낸 날.

    

참 뿌듯한 하루.

비가 오지 않아도 꽃집에 스스럼 없이 들어가

"빨간 장미 한 송이 주세요."

"선물 하시게요?"

"네, 저 한테요."

이렇게 산 빨간 장미 한송이를 내 가슴에 꽂고 싶은 날,

 

김용택 시인과 정호승 시인이 나주를 찾았다.

두 시인을 모두 만났다.

이런 횡재가 있을 수 있나.

채만식은 이런 날을 '운수 좋은 날'로 잡았어야 했다.

 

 

김용택 시인이 나주중앙초등학교 꿈밭도서관 개관기념행사에 초대돼

그의 시와 세상 이야기를 전했다.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시인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바닥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그가 해주기로 한 얘기는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 쓰다"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 임실 진메마을에 500년 만에 가장 심한 홍수가 나서 온 동네가 방천난 얘기, 교육방송국에서 막 인터뷰를 하고 나왔는데 강남에 물난리가 나서 산이 무너져 방송국이 휩쓸린 얘기, 일본의 쓰나미에 비행기가 떠내려 가고 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얘기...

 

"자연은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화두로 얘기를 이어갔다. 그에 버금가는 사회현상으로 서울시장 선거의 '안철수효과'과 스티즈 잡스의 '공학과 인문학의 융합' '기술과 예술의 융합' '꿈과 현실'의 융합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리고 또...

지렁이우는 소리...세상에는 2천5백여 종류의 지렁이가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맑고 곱고 깨끗한 소리로 운다고 했다.

딸감나무와 며느리감나무 얘기도 했다.

다른 취재일정 때문에 거기까지 듣고 나왔다. 하지만 그의 주제강연은 이미 들은 거나 다름 없다. 그의 시 속에 그 얘기들이 다 들어있으니까.

 

 

   소풍 갑니다

 

덕치학교 2학년 소풍 갑니다
지호랑 현우랑 병태랑 상윤이랑
여름이랑 수라랑 소희랑 소정이랑
선생님 손 잡고 소풍 갑니다
다리 건너 들길 지나 산길을 따라
우와우와 저 산에 단풍 좀 봐라
노란 단풍 붉은 단풍
단풍 좀 봐라
단풍나무 불나무 느티나무 야호야호
온산에 단풍 들었네
깊은 산속 산길에는

들국화꽃 반가워서 내다보고요
풀섶에는 노란 산국
어서 와라 손을 내미네
단풍나무 숲에 가면 단풍잎 되고
도토리 숲에 가면 도토리 되고
도랑물에 가면은 가재가 되네

덕치학교 2학년은 모두 여덟 명
선생님 손잡고 소풍 갑니다
야호야호 부르며 소풍 갑니다

 

 

 

 

할머니의 잠

할머니는 곡식들과 함께 잠을 잡니다
이 구석에 마른 고추 저 구석에 생고추 쪼글쪼글 마른 대추
노란 콩 한 무더기 검정콩은 두 무더기 파란 콩 한 주먹이 도란도란 잠을 자요
아랫목에 흰 자루 들깨들이 잠을 자고 벽에는 대롱대롱 메주들이 쿨쿨쿨
천장에는 옥수수가 매달려서 잠을 자고 윗목 바구니엔 고구마들이 이마를 마주대고 콜콜콜 잠을 자요
고구마 옆에 신문지 위에는 토란 잎 토란대가 엎어지고 드러누워 잠을 자고
감 두 개와 알밤 세 개 텔레비젼 위에서 이마를 마주대고 잠을 자요
할머니는 곡식들과 함께

잠을 잡니다

 

 

 

 

시와 음악이 있는 시낭송음악회

초청시인 정호승

 

시낭송 : 나주공공도서관 이화독서회

공   연 : 동신대학교 실용음악학과 밴드

일   시 : 2011년 11월 9일(수) 오후 6시30분

장   소 : 나주공공도서관 평생교육원 세미나실(1층)

* 선착순 30명에게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무료로 나눠드립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바닥에 대하여...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시집『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4)

 

 

 

수선화에게...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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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인줄 알았다!!!

시인은 인간이 외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인간만큼 고독한 존재는 없답니다. 그것이 인간의 기본 명제랍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혼자 외롭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도 혼자 외롭게 죽어가고, 인간이 외롭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인간에게 있어서 외로움은 매일 먹는 물이나 밥과 같다고.


외롭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랍니다. 이 외로움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고통스럽고, 외로움을 이해하는 데서 우리의 삶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외롭다는 것은 혼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은 아니라 혼자 있어도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차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대상을 인간에게서 멀리 벗어날 필요가 있답니다. 사람만이 사랑의 대상은 아니라는 거죠. 꽃과 나무를, 새와 강아지를 사랑하는 일도 사랑입니다. 

 

시인은 묻습니다.

 

왜 인간만을 사랑하려고 하는가?

꽃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진정 인간을 사랑 할 수 있을 것인가?

절대자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별이 지고, 꽃잎이 시드는 일을 사랑하는 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혼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롭고, 아무도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 때 나 또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로움에 몸을 떨게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장 많이 상처를 받듯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장 많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면서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합해 놓고 그 사랑을 핑계로

서로 소유하고 지배하려드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 삶의 외로운 풍경이랍니다. 시인이 그렇게 말합니다.

 

 

 

 시는 누구의 것입니까?

- 읽는 사람의 것

 

밥은 누구의 것입니까?

- 먹는 사람의 것

 

낙엽은 누구의 것입니까?

- 우리의 것

 

시인은 또 말합니다.

 

"내 인생의 그늘에 누군가 와서 눈물을 흘린다면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래서 시를 쓴다"고.

 

 

 

 

 시낭송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전숙<위 사진 가운데> 시인으로부터 새로 나온 시집을 받았다.

 

시와사람 서정시선 028

눈물에게

김종 선생이 표지를 그리고 삽화를 놓았다.

 

오늘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