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문화, 확실한 콘텐츠를 잡아라③
◇ 최근 ‘문화역서울284’로 부활한 옛 서울역
옛것도 새것처럼 유용지물(有用之物)하라
옛 서울역 새로운 서울문화아이콘 ‘문화역서울284’로 부활
연초제조장 재활용한 아트팩토리형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역사문화도시 나주, 나주에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주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자원이다. 하지만 없는 것 역시 문화다. 가장 나주적이고, 나주를 자랑할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발끈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세계를 향해 나주의 ‘이곳’, 나주의 ‘이것’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나주문화, 이제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이미 콘텐츠는 충분하다. 무엇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듯이, 한때는 잘 나갔던 공간들이 시대와 함께 모습을 감추거나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곳이 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이것도 우리 역사일까’ 싶은 일제(日帝)시대 건축물들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도 우리의 것으로 품고 갈 것을 요구한다. 순발력 있는 자치단체들은 방치되고 있는 근대건축물을 발빠르게 재활용해 새로운 지역문화콘텐츠로 둔갑시켜나가고 있다.
그 가운데 몇 곳, 옛 서울역을 부활시킨 ‘문화역서울284’와 버려진 연초제조창을 세계적인 공예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현장을 찾아가 본다. / 편집자 주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옛 서울역사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1 지역신문발전기금 심화교육의 일환으로 실시한 ‘지역문화콘텐츠 현장탐방연수’는 나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구도심재생사업을 미리 가늠해보고 시행착오를 예측하는 계기가 됐다.
옛 서울역을 있는 그대로 재활용해 지난 8월 새롭게 문을 연 ‘문화역서울284’ 현장을 찾았다.
1981년 국가사적 제284호로 지정되었던 옛 서울역사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지난 2년간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문화역서울284’로 재개관한 것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문화역서울284’는 옛 서울역의 사적번호 ‘284’를 사적으로서의 모습과 가치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역할까지도 해내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
옛 서울역은 경부선과 경의선 등 철도 주요 간선열차의 시발역인 동시에 종착역이었다. 1900년 7월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약 33㎡(10평) 규모의 목조건물에서 업무를 시작했다가 1925년 9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현 위치에 새롭게 신축하였고, 역사명도 경성역으로 바꿔 불렀다.
광복 후 경성역은 서울역으로 개명되었고 한국전쟁 때에는 역사의 일부가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이후 서울역사는 수도 서울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늘어나는 수송량을 감당하기 위해 1960년대에 남부와 서부 역사를 신설, 이곳 역사와 구분해 사용하다 2004년 1월 새로운 민간역사가 신축되면서 이 역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하지만 서울시민들은 이곳을 마냥 두고 보지 않았다. 이 긴 역사를 가진 건물을 그들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다.
◇ 옛 서울역, 낡고 퀴퀴한 냄새마저 풍기는 창고 같은 이 공간에서 인디밴드 연주자들은 물론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문화역서울284’ 예술프로젝트 ‘카운트다운’
역내에 들어서자마자, 아이 업고 줄서서 표 끊던 매표소와 종일 역내뿐만 아니라 광장까지 신문지 깔고 앉아서 기차를 기다렸던 그 현장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중앙홀의 돔 지붕 천장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게 단장돼 눈길을 끌었다. 곳곳에 전시된 미술품들을 감상하면서 1층의 대합실과 1920년대 사진을 토대로 벽난로와 몰딩, 벽지 등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놓은 귀빈실, 1925년 완공 당시에도 조선의 갑부들이 서양식 정찬을 즐긴 고급 레스토랑이었던 2층 식당의 장식물들이 여전히 우아하고 멋스러웠다.
특히, 눈길을 끈 곳은 바로 2층에 있는 복원전시실로 복원공사 당시 수집한 건축 부자재를 활용해 아주 작은 소품들과 소변기가 걸려있던 자리와 배관 파이프가 지나가는 자리까지 그대로 살려놓았다.
이곳에서 내년 2월 11일까지 ‘카운트다운’이라는 제목의 예술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카운트다운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김성원 예술감독<왼쪽 사진>은 “근대건축물 중 이 정도 규모의 대형건물을 복원한 것은 서울역이 처음”이라며 “1925년 준공 당시 사진자료에 기초한 물리적인 복원과 구 서울역사와 함께한 우리의 삶의 기억을 담아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감독은 또 “근현대적 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재이기 때문에 건물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설치미술과 비디오아트 위주로 진행하고 있는데 주말에는 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문화역서울 284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인디밴드 공연장을 찾았다. 낡고 퀴퀴한 냄새마저 풍기는 그런 창고 같은 공간에 연주자들은 물론 관객들이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
이들은 마치 외국의 한 공연장에 와 있는 느낌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공간의 매력을 만끽하고 있다고.
◇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세계 유일의 공예비엔날레전시장으로 탈바꿈해 세계인의 이목을 쏠리고 있다.
폐업한 연초제조창을 세계 유일의 공예 메카로
연수단이 찾은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작은 도시 한 가운데 볼품없이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창고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공예비엔날레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옛것은 필요없다’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의 발상을 뒤집어 ‘옛것도 새롭게 활용한다’는 의미의 ‘유용지물(有用之物’을 주제로 열리고 있다.
‘아트팩토리’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케 한 행사장은 1946년 11월 경성전매국 청주연초공장으로 시작, 1953년 서울지방전매청 청주공장으로 승격되고 1987년 한국전매공사 청주연초제조창으로 개편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적게는 3천여명이, 많게는 1만여 명이 근무할 정도로 청주를 대표하는 근대산업의 요람이었다. 고단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청주사람들만의 대들보였다. 솔, 라일락, 장미 등 내수용 담배를 연간 100억 개비를 생산하고 세계 17개국으로 수출하는 등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담배공장이었다.
그렇지만 산업화의 새로운 변화에 따라 1999년에 담배원료공장이 폐쇄되고 2004년에는 제조공장이 완전 가동 중단됐다. 이후 월급날마다 흥겨운 잔치마당이됐던 안덕벌 장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밤나무숲의 추억도, 물방개 춤추던 우물물도, 아이들의 놀이동산이었던 먹바위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멈추고 트럭의 엔진소리와 매캐한 담배연기의 추억도 소리소문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던 곳에서 7년 전 세계 공예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리게 됐다. 낡고 거친 콘크리트건물에서 공예를 생산하고 공예를 수출하며 공예로 하나 되는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인 것이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변광섭 기획홍보부장은 “국내 첫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 세계 최대 규모의 공예축제라는 수식어답게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국제교류사업을 대폭 확대하고 적극적인 해외마케팅을 통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글로벌 리더십을 갖고 세계 공예문화의 허브로 자리 잡도록 할 것”이라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 1946년 처음 문을 열어 58년 동안 청주 지역경제의 대들보가 됐던 연초제조창의 추억이 비엔날레 전시장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나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호문학관 동네사랑방 전락하나 (0) | 2011.11.15 |
---|---|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나주 빛가람 추진상황 (0) | 2011.11.15 |
한국전력, 나주혁신도시에 새 보금자리 ‘첫삽’ (0) | 2011.11.11 |
제82주년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행사 ‘풍성’ (0) | 2011.11.08 |
애정남 나주시공무원노조에 박수를... (0) | 201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