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슬픈 베르테르들에게
“보십시오, 로테!
나는 죽음의 황홀을 들이마실 이 차갑고 끔찍한 잔을 들고서도
전혀 떨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이 잔을 건네주었으니
나는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모두다, 이렇게 내 인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다 채워지는 겁니다. 이렇듯 냉정하고, 이렇듯 완고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리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세계를 사로잡았다. 마치 모든 나라의 대중이 은밀히 그리고 아무런 지식도 없이 독일제국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젊은이가 쓴 이 책, 혁명적이고 자유롭게 하는 능력으로 문명사회의 속박된 욕망을 해방시켜 주는 이 책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보였다.
1774년 스물다섯의 괴테가 세상에 내놓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순식간에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온 유럽에 번역본이 출판되고 해적판이 나돌았고, 안타까운 사랑의 두 주인공 베르테르와 로테의 모습은 부채나 도자기에 새겨졌다.
남자들은 베르테르가 입던 푸른색 프록코트와 노란 조끼를 입고 다녔으며, 여자들은 로테와 같이 절대적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 베르테르의 죽음을 동경한 젊은이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라이프치히 신학교수들은 판매금지를 요청했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한때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세계의 고전으로 거듭난 것이다.
아, 그런데 이 푸르른 대한민국의 오월을 보내면서 왜 불현듯 젊은 변호사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리는 것일까.
충격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나주에서 누구네 집 딸 하면 “아하~ 그 착하고 공부 잘하던 아이?” 했던 그 아이가 어스름이 짙어가는 봄날밤에 홀로 집을 나서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사실을...
도대체 우리 사회의 그 무엇이 꿈 많고 천진하던 한 여고생의 꿈을 그리 무참히 꺾고 만 것일까? 딸 가진 부모로서, 잇달아 터지는 청소년들의 자살사건을 보면서 걱정되고 두려웠던 현실이 바로 내 이웃에서도 발생했다는 사실에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경찰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족들이 이 사실이 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극구 함구를 하고 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슬픔에 빠져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굳이 육하원칙을 따져가며 아픈 상처를 헤집어 팔 생각은 없다.
그렇더라도 왜 그 아이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도록 아무도 몰랐을까, 손 쓰지 못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그 부모와 가족을 떠나 모두 ‘미필적고의’의 책임을 통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그 여학생의 사건으로 인해 충격에 빠져있을 주변의 아이들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세심하면서도 발 빠르게 손을 써야 할 것이다. 곪은 상처가 있다면 터뜨려서 치료를 하고, 주변이 덧나지 않도록 예방이 급선무다.
베르테르는 말했다.
“당신네 같은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곧장 ‘이건 바보짓이야, 저건 현명해, 이건 좋아, 저건 나빠’라고 단정 짓지요. 그게 다 뭡니까? 그래서 당신들은 어떤 행동이 일어난 심리상태를 속속들이 다 파헤쳐 보기라도 했습니까? 당신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왜 일어나야만 했는지 그 원인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네들이 그럴 수 있었다면,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들아, 소중한 우리 아이들아! 아파도 참아주렴. 힘들어도 꿋꿋하게 살아주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픔을 달래주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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