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도 하는데 나주는 왜?
2년 전 가을, 영암군이 건립한 하(河)미술관 개관식을 다녀오면서 비애를 느꼈다. 어떻게, 어~떻게 채 인구 6만도 되지 않는 영암군에 대도시 여느 미술관 못지않은 군립미술관이 들어선 것일까.
하미술관에 들어서면 재일교포인 동강 하정웅 선생이 본국에 대한 기도와 일제에 의해 희생당한 한국인의 위령과 진혼, 망향을 곱씹으며 수집한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물론 하정웅 선생의 기증품은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해서 전국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기증품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가 영암군에 기증한 작품들은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미술작품들이 많다.
영암군은 하미술관 개관을 위해 전문큐레이터를 영입해 선생의 기증품이 지역의 문화자원으로서 그 가치를 빛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전을 펼치고 있다.
공립미술관으로서 다른 미술관은 물론 지역 작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주에는 미술관도 없고, 하정웅 선생의 기증품 한 점도 없다. 왜냐고 묻지 않겠다. 나주에는 선거 때 표 하나를 더 얻기 위한 경로당 김치냉장고 지원은 할망정 지역민들에게 미술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가 없음을 탓할 뿐이다.
그런데 올 봄, 다시 한 번 그 비애가 느껴진다. 어떻게 월출산 자락 그 조그만 동네에 그처럼 웅장한 가야금산조전시관이 들어설 수 있는 것일까. 기념관을 둘러보다가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가야금산조의 창시자 김창조(1856~1919)선생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또 한명의 가야금 명인 안기옥(1894~1974)선생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안기옥 선생은 바로 나주 남평 출신이고 ‘엄마야 누나야’. ‘부용산’을 작곡한 월북작곡가 안성현(1920. 7. 13~2006. 4. 25)의 아버지다.
김창조 선생은 여러 명의 제자를 양성해 이들에게 산조를 전승했는데 안기옥, 한성기, 최옥삼 등이 대표적이다. 안기옥 선생은 해방 후 아들 안성현과 함께 월북해 북한민족음악 정립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산조를 연변대학의 김진에게 전수했고, 김진은 이를 양승희에게 전수했다. 양승희 명인은 김창조-한성기-김죽파로 이어지는 김창조의 초창기 산조와 김창조-안기옥-김진으로 이어지는 산조를 모두 배웠다.
김창조 선생이 광주와 전주를 중심무대로 활동을 했다면, 안기옥 선생은 북한과 연변을 오가며 활동이 눈부셨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계보를 정남희(1905~1984), 성금연(1923~1986)과 지성자(1945~)가 잇고 있지만, 선생의 고향인 나주에서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주지 않으니 선생의 음악은 역사 속에서 홀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들 안성현은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전해지고 있을 뿐 그의 음악세계와 가계는 아직까지 전문적인 검증과정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현 선생이 작고한 뒤로 그의 고향인 남평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드들강변에 노래비가 들어서고 그가 작곡한 노래들이 한 곡, 두 곡 발굴되던 즈음에 나주에서는 시장이 바뀌면서 그나마 추진돼 오던 기념사업마저 길을 잃고 말았다. 전임시장과 현임시장의 공적다툼이 빌미가 됐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 이념의 혹한기를 끝내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됐을 때 '엄마야 누나야'의 시인 김소월의 고향 평안북도 구성군과 작곡가 안성현의 고향 나주가 남북화해의 가교를 놓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끝내 저버릴 것인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 뿐이랴. 영암이 김창조-김죽파(난초)-양승희로 이어지는 가야금 계보가 있다면, 나주는 서편제의 비조(鼻祖) 박유전 선생으로부터 직접 소리를 전수받은 정창업-김창환- 정광수로 이어지는 걸출한 소리꾼의 고장이다.
그런데도 그 명성을 이어가기는커녕 이제 그에 대한 기억과 자료를 간직하던 사람들마저 유명을 달리하고 있으니, 나주는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역사에 묻고 있는 도시로 후진하고 있음에 한숨 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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