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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

강 시장의 언중유골(言中有骨)

by 호호^.^아줌마 2014. 8. 26.

강 시장의 언중유골(言中有骨)

 

 

7월 중순쯤으로 기억 된다. 취임식을 마친 강인규 시장이 언론사 순방을 하던 중 전남타임스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 관사 얘기가 나왔다.

 

“반남 본가가 꽤 멀어 출퇴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디에서 기거 하시느냐”는 질문에 “선거 때 임시숙소로 사용하던 남내동 주유소건물 3층에 기거하고 있다”고 답을 했다.

 

“시장님의 체면이 있지, 어떻게 상가건물에서 기거를 하시느냐, 관사건물을 활용하시지 그러느냐”고 하자 “전임 시장이 민간인에게 임대를 내줘버려 내년까지는 손도 못 댈 형편”이라고 답했다. 왠지 말에 뼈가 숨어 있는 듯 했다.

 

지난 14일의 일이다. 금천면에 있는 나주배유통센터 수출선과장에서 나주산 햇배가 미국과 대만으로 첫 수출길에 오르는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수출대행업체인 리마글로벌 임종세 대표이사가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수출농가와 수출업체에 대한 지원금이 15~30%에 이르는데 나주시는 전국 최저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하자 주변 사람들이 “시장님께서 지원액을 늘리시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강 시장은 “나주시 자체수입이 550억원 규모인데 지금 예산이 없어 2차 추경을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누군가 “전반기 때 다 써버렸구만”이라고 응수하자 강 시장은 “그건 내가 말 못하겠고...”라고 되받았다. 이 역시 말에 뼈가 숨어있었다.

 

문득 김후옹 여사의 ‘우리 아베 참봉 나으리’라는 넋두리 같은 사부곡이 떠오른다.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 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서 쓰셨는지?

우리 아베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 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 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 진데’

 

일제 식민지 때 안동에서 당대의 파락호로 이름을 날리던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인 김용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름을 즐겼던 그는 결국 종갓집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수백 년 동안의 종가 재산으로 내려오던 전답 18만평도 다 팔아먹었다.

 

한번은 시집간 무남독녀 외동딸이 신행 때 친정집에 가서 장농을 사오라고 시댁에서 받은 돈이 있었는데 이 돈마저도 김용환은 노름으로 탕진했다. 딸은 빈손으로 시댁에 갈수 없어서 큰 어머니가 쓰던 헌 장농을 가지고 갔다하니 주위에선 얼마나 김용환을 욕했겠는가.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엄청난 반전이 있었으니, 파락호 노름꾼 김용환이 사실은 만주에 독립자금을 댄 독립투사였던 것. 그가 탕진했다고 알려진 돈은 모두 만주 독립군에게 군자금으로 보내졌고, 김용환은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노름꾼, 주색잡기,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살면서 자기 가족에게까지도 철저하게 함구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 김후옹 여사는 1995년 아버지를 대신해 건국훈장을 추서 받은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회한을 담아 ‘우리 아베 참봉 나으리’ 라는 글을 발표했다.

 

자고로 독립운동을 해도 이렇게 해야 하며 정치를 해도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임 시장의 실책을 드러내야만 신임 시장의 체면이 더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임하는 동안 조용히 일한 다음 4년 뒤, 8년 뒤, 12년 뒤 그 행적을 평가받는 단체장의 은둔의 미덕이 그립다.

 

취임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여기저기 나붙은 치적 현수막이며, 연일 ‘강인규 시장님께서는...’을 주장하는 보도자료의 홍수 속에 머리가 어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