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67>산사나무(山査子)
소화를 돕고 피를 맑혀주는 산 과일…산사나무(山査子)
학명: Crataegus pinnatifida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활엽소교목
산사(山査)라는 이름은 ‘산(山)에서 자라는 아침(旦) 나무(木)’란 뜻이다. 숲으로 드는 산문(山門)에서부터 산사(山寺)가 굽어보이는 깊은 골짜기까지 숲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5월에 아리잠직 흰 꽃이 피고, 가을에 노랗게 물들면 잎사귀 새로 빨갛게 입술을 내미는 열매의 미소가 볼우물처럼 맑다.
열매가 해당화 같고 또 찔레나무 같은데 크기는 그 중간쯤 된다. 모두들 함박웃음 웃으며 화려한 단풍잎에 반할 때 행락에 들뜬 이들의 눈을 피해 귀여운 장신구들을 치렁거리며 저만의 가을을 즐긴다할까. 아담한 키(4~6m)에 기품 있는 미색(美色)을 갖춘 여성스러운 나무이다.
산사나무는 잎 모양이 독특하고 줄기에 가시가 나 있다. 종명 피나티피다(pinnatifida)가 잎이 깃털 모양이며 깊은 골이 있는 잎의 특징을 꺼냈다면, 속명 크라타에구스(Crataegus)는 그리스어로 힘을 뜻하는 '크라토스(kratos)'와 가시를 가졌다는 의미인 '아게인(agein)'의 합성어로, 목질이 단단하고 가시가 돋쳐있는 줄기를 들추었다.
한국이 원산지인 산사나무의 이름을 흔히 ‘아가위나무’라 부른다. 이 순수 우리이름 역시 ‘가시가 있는 나무’라는 뜻인데, 흥미롭게도 ‘아(棘)+가(棘)+외(棘)’의 3중 이음동의어에서 왔다고 한다.
산사나무를 북한에서는 ‘찔광나무’라 부른다. 우리 산야에는 같은 속의 넓은잎산사, 좁은잎산사, 가새잎산사, 털산사(잎 뒷면과 꽃자루에 밀모가 있다) 자작잎산사(잎이 갈라지지 않는다) 등이 더 있다.
숲이 삶터이지만 일조량이 좋은 곳에선 원정형의 자연스러운 수형을 유지하여 독립적이다.
싱겁게 키가 크지 않아 산 아래 정원에서 한결 야성의 것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산사나무의 열매는 바로 우리들 일용할 식탁의 서랍 속에 상비약으로 넣어둘만한 천연소화제로서 빼어나다.
한 그루만 뜰에 자라도 연중 온 가족에게 넘치고 남는다.
산사나무의 생약명은 ‘산사자(山査子)’이다. 성미는 시고 떫으며 달고 따뜻하다. 간, 비, 위경으로 들어가 소식(消食)하고 어체(瘀滯)를 풀어준다. 즉 건위 및 소화촉진작용이 있어서 소화불량, 복통 등에 탁월한 반응을 보인다.
어혈을 제거하므로 타박상이나 고지혈증, 협심증, 고혈압에도 널리 응용되며, 강심작용과 혈압강하, 관상동맥혈류량촉진, 혈관확장의 약리작용이 임상 보고된 바 있다(신맛이 강한 열매이므로 위산과다, 위궤양이 있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산사자는 너무 익으면 물러지므로 붉은 빛이 들기 시작할 때 벌써 따서 썰어 말리거나 통째 쪄서 건조하는 것이 좋다. <물류상감지>에는 “늙은 닭의 질긴 살을 삶을 때에는 산사열매를 넣으면 쉽게 연해진다”고 적었다. 과즙은 해독작용이 있으며 숙취를 풀어준다.
귤껍질(진피)처럼 오래 묵을수록 효능이 좋아지는 열매의 성품도 그렇고, 거칠고 투박한 잎 모양도 가만 보면 그 시절‘할머니의 약손’을 빼닮았다.
배앓이 하는 손주의 배를 열고 쓱쓱 문질러주는 할머니의 따스한 물리치료와, 썩지 않고 거뭇해질 때까지 말랐다가 어느 날 아이의 닫힌 뱃속으로 들어가는 산사자의 시원한 약물효능은 서로 통하는 바가 크다.
산사나무의 꽃말은 ‘유일한 사랑’이라 한단다. 나는 ‘변함없는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풋풋한 사랑보다 쿰쿰한 사랑, 엄마 사랑보다 할머니 사랑이 더 움푹하다.
다산(多産)의 열매와 바람 잘 날 없는 시련, 고단한 손마디와 초름한 식탁으로 이어졌던 그 오랜 옛날을 떠올리면, 무릎 위에 갓난아기를 눕힌 채 이제 막 발갛게 익어 치렁거리는 아가위나무 한그루 창밖으로 바라보는 새 며느리의 그림이 고향처럼 평화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산에서 자라는 아침나무(旦木)’라는 뜻을 가진 산사나무는 성미가 시고 떫으며 달고 따뜻해 소화촉진작용이 있어서 소화불량, 복통 등에 탁월한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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