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66>…갈대(蘆根)
담수생태계와 해양생태계의 역동적 중재자…갈대(蘆根)
학명: Phragmites communis Trin.
쌍떡잎식물강 화본목 벼과 갈대속의 여러해살이풀
‘갈대’의 ‘갈’은 가늘다 또는 작다는 뜻의 접두사이고, ‘대’는 줄기가 대나무 마디를 하고 있어서 붙여진 명사이니 ‘갈대’는 이른바 ‘가는 대나무를 닮은 풀’이다. 대나무처럼 벼과이며, 댓잎처럼 좁은 잎을 가진 화본형 식물로서 오리새, 기름새, 억새 같은 ‘새’ 종류와 가깝다.
물을 좋아하는 (반)수생식물인 만큼 습지나 강, 호수, 바다의 접경에서 큰 군락을 이룬다. 억새들의 삶터가 산과 들이라면 달뿌리풀은 하천의 상류, 갈대는 하류나 바닷가에서 자란다.
갈대속 식물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달뿌리풀’과 울릉도 통구미에서만 자라는 ‘큰달뿌리풀’이 있다. 이것들은 마치 앙감질하듯 땅위를 징검징검 뛰며 뿌리를 내리며 달리는 특성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갈대가 주로 땅(수면) 아래로 뿌리를 뻗는다면 물억새는 지렁이처럼 땅 위를 기고, 이에 비해 달뿌리풀은 땅 위에 노출 된 채 토끼뜀을 하듯 연이어 낮은 아치를 그린다. 그래서 ‘덩굴달’이라고도 부른다. 갈대를 줄여서 ‘갈’, 달뿌리풀은 ‘달’이라 부르며, 한자 노(蘆)는 소(疏)하다는 뜻으로, 속이 비어 소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속명의 Phragmites는 ‘Phragma(가로막)’란 뜻으로, 물가에서 드넓게 울타리처럼 자라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종소명 communis는 ‘보통의, 통상의’라는 뜻이다. 서구의 공동체를 뜻하는 커뮤니티(community)는 라틴어로 같음을 뜻하는 커뮤니타스(communitas)와, 공통의 공유를 뜻하는 커뮤니스(communis)에서 유래하였는바 연결해보니 갈대의 성상과 무리의 이미지에 아주 근사하다. ‘갈대’가 자라는 곳은 민초들의 삶터처럼 하천이며 연안이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신경림의 시 ‘갈대’다. 흔들리며 우는 인간존재의 내면이 바닷가 마른 갈대무리의 파랑과 오버랩 되어 달빛처럼 쓸쓸하다. 갈대가 여느 초생들과 달리 하류에 머물면서 헌 데 내륙의 토양 유실을 막고 바다로 흘러드는 냄새나는 물질을 정화하며 연안 수생태계에 산소 같은 역할을 자임한 것은 아무쪼록 ‘생각하는 갈대’ 답다. 내륙과 바다의 경계에 서서 조용히 인간 상처의 내면을 쓰다듬는 착한 시인의 모습 같기도 하고.
가뿐함 속에 깃든 유연, 겸허함 속에 용해된 신념, 경쟁인 듯 상생하는 연대, 도저한 생명의 민중성이야말로 무대 위의 갈대가 우리에게 묻고 싶은 방백의 목소리일 것이다.
‘갈대(蘆根: 생약명)’의 성미는 달고 차다. 간과 위경으로 들어가며, 폐의 열을 맑히고, 진액을 생성하여 갈증을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다. 노근은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간을 도와 농약중독, 식중독, 알코올중독, 중금속 중독, 방사선 중독 같은 갖가지 독성물질을 배출하게 할 수 있다. 마치 담수와 해수 사이를 중재하고 오염물질을 여과하는 하구역의 필터처럼 인간의 체내에서 유출된 퇴적물을 조용히 몸 밖으로 밀어내준다.
갈대가 물에 살면서 물의 속성을 배웠을까 꽃말이 ‘지혜’이다. 또한 흔들리는 물살과 그 물살 위를 파도치는 바람의 모습이야말로 과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연상케 하는 ‘음악(꽃말)’적 갈채도 있다.
어떠한가. 건강한 이곳을 고스란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멧밭쥐, 도요새, 물떼새, 가창오리, 칠게, 보리새우, 고둥, 참갯지렁이들에게 돌려주면. 우리는 날마다 저 한겨울의 갈대밭에 나와 남과 북이며 현대와 탈현대, 개발과 보전 같은 대립적 갈등을 중재하는 지혜로운 완충의 패러다임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 ‘가는 대나무를 닮은 풀’ 갈대의 성미는 달고 차서 폐의 열을 맑히고, 진액을 생성해 갈증을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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