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79>종덩굴(朝鮮鐵線蓮)
풀 아기에서 나무 아비까지의 느낌…종덩굴(朝鮮鐵線蓮)
학명: Clematis fusca var. violacea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 으아리속의 낙엽덩굴나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숲속에 자란다. 끝의 작은 잎은 덩굴손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키는 2-3m 자라며 다른 물체를 타고 올라간다.
양성화 또는 암수딴그루이며 종 모양의 자주색 꽃은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밑을 향해 달리고 9-10월에 결실한다.
으아리속은 우리나라에 변종을 포함하여 약 30종이 분포한다. 경기도 이북지방에 자라는 암자색 꽃의 「검종덩굴」, 약 1m 자라고 황색 혹은 자주색 꽃이 피는 「세잎종덩굴」, 역시 1m 정도 자라며 짙은 자주색 꽃을 피우는 「고려종덩굴」, 꽃이 노란색, 녹색, 갈색, 자주색 등으로 변이가 심한 「누른종덩굴」, 키가 20cm 정도로 아주 왜소한 「산종덩굴」, 엽병이 길고 자주색 꽃이 피는 「자주종덩굴」 등이 있다.
이들 중 종덩굴과 세잎종덩굴을 제외하면 모두 고산지역에서 산다. 으아리속답게 잎이 으아리와 유사하며 목본성으로 겨울에도 산 채로 묵어 이듬해 새싹을 피워낸다.
『종덩굴』은 덩굴성의 줄기를 가졌으며 꽃이 종처럼 매달린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속명의 클레마티스(Clematis)는 ‘덩굴손’을 뜻하며, 탄력 있는 줄기는 반시계방향으로 선회한다.
다소 습한 곡간에 은밀히 살면서 투명한 종소리를 머금은 듯 꽃빛도 청순하다.
속세에 나와서도 비밀의 정원에는 반드시 피어 있어야할 것 같은 꽃. 숲 그늘을 좋아하여 숲속에 살지만 우리 산야 나지의 발가벗은 데도 물러섬이 없는 떳떳하고 씩씩한 토종이다.
꽃부리를 이루고 있는 낱낱의 조각을 화편(花片)이라 하는데, 딱 종덩굴에 맞는 한자다. 꽃잎이라는 표현보다는 ‘꽃 쪼가리’에 가깝고 수정을 마치면 바람도 없이 툭툭 땅에 떨군다.
더러 빈 잔처럼 텅 빈 채 통째 떨구기도 하는데 그 순간이 여간 적막하지 않다. 하롱하롱 내리는 매화나 하르르 날리는 벚꽃, 통꽃으로 내던지는 동백과는 사뭇 다른 묘한 여운인데 허망하달까...
하늘가를 사무치도록 붉혔다가 열흘 못 가서 모두 바닥에 내쳐지는 것이 만 가지 꽃들의 결론인 거지만 두꺼운 외투를 입고 좀체 사위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묶여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명줄을 놓아버린다면, 더러 그 껍데기 쓸쓸한 자리에 옹골찬 씨앗을 남겨놓고 일찍 죽은 지아비거나 숲진 경쟁의 사이를 기어올라 절정에서 픽 쓰러져버리는 불꽃 성정의 사내들처럼 허방하다.
세잎종덩굴을 조선철선련(朝鮮鐵線蓮: 생약명)이라 하여 약으로 쓰는데, 뿌리는 열을 내리고 해독하며 종기를 없애고 이뇨하는 작용이 있다. 하지만 약간 독성이 있어 법제하여 양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으아리, 참으아리, 큰꽃으아리를 비롯하여 사위질빵, 할미밀망도 모두 ‘위령선(威靈仙)’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쓴다.
으아리속인 모든 종덩굴들도 같은 이름의 효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으아리나 사위질빵들이 산의 입구에서 자란다면 종덩굴류는 깊은 숲이나 고산지대에서 자라므로 성미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위령선들이 맵고 짜고 따뜻하다면 철선련들은 쓰고 서늘하다.
그러고 보니 종덩굴 무리는 의외로 꽤 남성적인 데가 많다. 여느 꽃과는 다르게 단단해 보이는 표면의 광택은 갑옷과도 같으며, 다 피어도 입을 반쯤 오므린 표정에서 긴장한 투구 속의 병사를 보아도 좋고, 일견 풀로 보이나 나무다운 줄기와 덩굴성으로 물체를 딛고 오르는 모습에선 꽃말에서 말하는 정의며 승리며 쟁취의 모습을 찾아볼 만도 하다.
더욱이 위령선은 ‘성품이 맹렬하고 효능이 신령스럽다.’는 뜻이니 사지관절통이나 마비를 풀어주는 작용으로 근육을 많이 쓰는 일꾼 남자의 성정과도 통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지없이 앙증스러워 마치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노리개나 다름없으니 꽃빛만 스쳐도 가던 걸음이 멈춰진다. 개화기간이 긴 것도 매력이지만 더벅머리 광채가 나는 털을 머리에 인 씨앗의 헤어스타일도 이색적이다.
잎 모양은 타조의 발가락처럼 생겨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두 개의 갈래잎으로, 그 드문 비대칭의 구성도 눈길이 간다. 종덩굴이야말로 필자가 오래전부터 그리던 주택 현관의 아치며 타고 오를 테라스의 기둥 소재였다.
산허리에서 홀로 맑디맑은 새벽종소리를 담아 은은히 깨쳐 울되 이제 내 뜰 내 창가에도 내려와 쥐엄쥐엄 도리도리 방긋방긋 갓난 손주아기처럼 예쁘게 매달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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