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80>참취(東風菜)
봄바람 같고 흰 구름 같은 풀…참취(東風菜)
학명: Aster scaber Thunb.
쌍떡잎식물강 국화목 국화과 참취속의 다년초
『참취』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산지와 숲 가장자리에서 산다. 논밭과 들몰을 벗어나 기슭에서 산중까지 적습(適濕)한 양지나 반 음지를 좋아하며, 한번쯤 인간간섭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는 이차림에서 흔하다.
열매에 갓털(冠毛)이 나 있어 바람에 의해 산포되며 충매화이다. 참취는 국화과의 감국,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들과 더불어 늦여름에서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가을꽃의 하나다. ‘꽃빛이 흰 구름 같다’ 하여 백운초(白雲草)이며, ‘산에 피는 하얀 국화’라는 뜻의 백산국(白山菊)은 일본명이다.
북한에서는 암취, 나물취, 나물채라 부른다. 또 <귀주초약>에서 취의 효능을‘지혈생기(止血生肌)한다’ 했듯 지혈제 삼칠근의 이름을 빌려 중국에서는 초삼칠(草三七)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서덜취, 왕분취, 각시취, 수리취, 곰취 등 대략 70여종의 다양한 취가 제각각 생육조건에 따라 전국에 퍼져 자란다.
식물명 앞에 보통 참, 큰, 왕, 말, 수리 등의 접두사가 붙으면 초형이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우리말 ‘취’는 채소(菜蔬)의 ‘채’와 동원어이므로 참취는 풀어서 ‘키가 큰 푸성귀’이다.
속명 아스타(Aster)는 별(star)이라는 뜻의 희랍어로 방사상으로 퍼진 하얀 설상화의 이미지를 묘사했으며, 종소명 스카베르(scaber)는 ‘거칠다’는 의미로 성장한 잎과 줄기의 깔깔한 질감에 따른 것으로 본다.
참취의 생약명은 「동풍채(東風菜)」이다. 봄바람(東風)이 불 때 어린 순을 채취하여 나물로 먹는 습속에서 온 이름이며, 종자가 바람을 이용해서 퍼지는 만큼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 흔한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꽃도 곱지만 봄에 먹는 새싹나물의 고소하고 쌉싸래한 맛은 가위 일품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끝에서 부르는 희망노래가 밥상머리에서 절로 피어나는 순간이다. 우리 풍속에 복을 기원하고 풍농을 바라는 농경의례의 한 형태로 정월 대보름날 김이나 취에 밥을 싸서 먹었다. ‘복을 싸서 먹는’복쌈이니 가족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복스럽게 한입 우겨넣을 때마다 얼마나 흐뭇하였을까.
참취의 맛은 달고 쓰고 매우며 성질은 따뜻하다. 풍을 없애고(疏風) 기를 잘 통하게(行氣) 하여 혈액순환을 돕는다. 진통작용이 있어 장염으로 인한 복통이나 골절통, 타박상에도 썼으며 혈당강하작용, 혈압강하작용, 비만개선작용, 이담작용의 약리도 밝혀졌다.
코끝에서 혀끝으로 전해지는 취나물의 향미를 따라 어느새 두릅이며 참나물, 독활들도 파릇파릇 생기를 되찾을 무렵 사방 산언덕에선 일 년 중 가장 여리고 달콤한 속살로 사랑의 무도회가 펼쳐진다.
녹은 땅에 이끼가 덮이고 어느새 돌 틈으로 꽃다지며 뽀리뱅이가 흔들리더니 연둣빛 햇살 속으로 아지랑이가 너울너울 춤을 춘다. 지난겨울을 다 잊은 듯 정말로 새롭고 눈부신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인생도 해마다 그러하여 가고 오는 것이 무심하며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이니 유난히 이별이고 유별히 상면이랄 게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봄과 이미 저지른 봄의 가장자리에 서서 늘 안타깝고 설레고 기쁘고 서럽기가 잦다. 사는 것은 늘 한여름 수풀 속을 무성히 견디는 일 같으므로 저 참취처럼 허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빳빳이 치켜세워야 할 것이로되 또 서리 내리면 어김없이 마른 다리를 꺾고 어깨가 짜부라진 채 허옇게 사위어 가리니 사는 일이 어찌 허무하지 않을까.
상큼했던 봄나물 참취의 꽃말은‘이별’이라 했다. 가을이 저물어갈 무렵, 힘겹고 무성했던 한 해를 선선히 마감해야 하는 때, 때론 무겁고 때론 황망했던 것들을 내리고 벗고 태워서 가뿐한 겨울을 채비해야 한다. 슬픔마저 미련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니 이것이 진정한 이별이리라.
참취의 ‘이별’은 그러나 아주아주 짧은 이별이다. 족두리풀이며 복수초, 바람꽃, 피나물, 현호색, 괴불주머니 같은 풋사랑들이 여름도 다 못 걸어가 그림자마저 지워지는데, 참취는 첫봄에서 가을 끝까지 사랑하다 잠시 추위만 가시면 곧 다시 취나물로 돌아오지 않던가! 백운초 앞에서 추억의 하얀 손수건을 받아들고 봄바람처럼 싱그러이 꽃편지를 읽는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
◇ 늦여름에서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가을꽃 참취.
'들꽃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주 금성산…4월에 피는 꽃(2019) (0) | 2019.04.23 |
---|---|
김진수의 들꽃에세이<81>쥐오줌풀(吉草根) (0) | 2016.08.01 |
김진수의 들꽃에세이<79>종덩굴(朝鮮鐵線蓮) (0) | 2016.08.01 |
김진수의 들꽃에세이<78>원추리(萱草根) (0) | 2016.07.30 |
김진수의 들꽃에세이<77>옥잠화(玉簪花) (0) | 201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