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민극단 ‘성안사람들’ 두 번째 공연이 지난 9일 저녁 나주 원도심 나비센터에서 펼쳐져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협동조합 성안사람들 두 번째 시민극 무대에 올려
9일 나비센터 공연장 ‘나주목사 김성일, 세기의 재판을 열다’ 주제로
전남문화관광재단, 2016전남형생활문화지원사업 ‘형형색색’ 공모사업
주민들 스스로 나주읍성의 역사를 시민극으로 무대에 올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협동조합 성안사람들이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이사장 이낙연)이 공모한 ‘2016 전남형 생활문화지원사업 ‘형형색색’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두 번째 시민극 ‘나주목사 김성일, 세기의 재판을 열다(극본·연출 김양순)’를 지난 9일 저녁 나비센터 준비관 무대에 올린 것.
공연 전날부터 시작된 함박눈이 하루 종일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문화재복원사업으로 철거를 앞둔 옛 나주중앙교회 건물에서 펼쳐진 공연은 배우들의 진지하면서도 해학 넘치는 연기로 시종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연극의 주요 줄거리는 1583년 나주목사로 부임한 학봉 김성일이 당시 나주의 대표 씨족인 임씨 가문과 나씨 가문에서 10여년에 걸쳐 끌어온 친자소송을 재판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동네 아이들이 동헌 앞에서 한바탕 놀고 간 뒤 장날이 풍경이 펼쳐지고, 뒤이어 지친 발걸음으로 등장한 여인이 정수루 북을 울려 억울함을 아뢴다.
여인은 혼인 후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유복자를 낳아 키워왔으나 시댁에서 이를 인정해주지 않자 사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게 된다.
“제 나름으로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왔습니다만, 동네 사람들이 다들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라며 놀리는 통에 아이가 기가 죽어 동네 나가 놀기를 싫어합니다.”
이에 목사는 ‘원님 재판하듯’ 재판을 했다가는 큰 분란이 일 것을 갈파하고 철저하게 증거에 입각한 재판을 실시하게 되는데...
하지만 극의 흐름은 주인공 여인이 엄격한 신분제도와 남존여비사상에 찌든 당시의 인습에서 벗어나 목사고을의 당당한 여인으로 살아갈 것을 선언하는 결론으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공연에 앞서 단원들은 경북 안동 학봉 김성일 종택에 보존되고 있는 ‘결송입안(당시 판결문)’을 사진으로 찍어와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하는 한편,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임상혁 교수가 집필한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2010, 너머북스)’와 나주투데이 기자로 활동하던 신광재 기자가 2007년도에 집필한 ‘나주목사이야기(나주역사문화연구소)’ 등 10여권의 책과 학봉기념사업회 등이 발간한 연구자료 등을 토대로 한 달여 동안 공부한 끝에 주제와 줄거리를 이끌어 냈다.
이번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모두 시민공모를 통해 캐스팅됐다.
주인공 임 여인 역은 요가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경희 씨가, 나주목사 김성일 역은 나주북문교회 황길연 목사가, 당시 나주사회를 대표하는 가문의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 역할은 박계수 씨와 최비용 씨가 각각 남장을 하고 열연했다.
또한 장정숙, 최서연, 임정례 씨가 동네사람들 역을 맡아 걸죽한 사투리를 능청스럽게 연기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극중 시어머니 역을 맡은 김남임 씨는 “첫번째 공연에서는 무당 역을 맡아 한동안 동네무당으로 통했는데 이번에는 표독스런 시어머니 역을 맡다보니 또 한 동안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면서 싫지 않은 푸념을 하기도 했다.
협동조합 성안사람들은 나주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5 도시인문학콘서트’에서 나주목사 민종렬과 녹두장군 전봉준의 담판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시민극 ‘서성문은 알고 있다’를 무대에 올린 바 있다.
2015년 나주읍성 도시재생의 민간협력 사회적경제기업으로 발족한 협동조합 성안사람들은 시민극단 운영과 함께 정리수납전문사업, 흙돌담유지보수사업, 빈집가꾸기 등의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
때는 1583년 3월 나주읍성 동헌, 동네 아이들 몰려나와 한바탕 놀고 있다.
어디망쿰 왔냐 당당 몰랐다
어디망쿰 왔냐 또랑 건너 왔다
어디망쿰 왔냐 동헌 앞에 왔다
야, 우리 역서 놀다가자
솔갱아 솔갱아 장광에 쥐 잡아 놨다
뺑뺑 돌아라 뺑뺑 돌아라
핑갱아 핑갱아 개산에 비 몰아 온다
장광 뚜껑 덮어라 장광 뚜껑 덮어라
손치기 손치기 손으로 친다고 손치기
발치기 발치기 발로 친다고 발치기
함박쫍박 시집가 종갈애기 나도가
어린것이 어찌가 옹굴동굴 잘도가
손치기 손치기 손으로 친다고 손치기
발치기 발치기 발로 친다고 발치기
금성산 오두재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네
진달래꽃잎 똑따서 진달래화전 만드세
손치기 손치기 손으로 친다고 손치기
발치기 발치기 발로 친다고 발치기
며느리 : 제 나름으로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왔습니다만, 동네 사람들이 다들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라며 놀리는 통에 아이가 기가 죽어 동네 나가 놀기를 싫어합니다. 더구나 이 아이가 어찌나 영특한지, 글월을 한번 들으면 거미 똥구녘에서 거미줄 나오듯 술술 나오는데, 이제 쇤네 재간으로는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아이 : 어머님, 소학에 이르기를, 부생아신(父生我身)하시고 모국아신(母鞠我身)하셔서 복이회아(腹以懷我),유이포아(乳以哺我)라 하였는데 어이하여 저에게는 낳아주신 아버지가 안 계시는 것입니까?
동네사람3 : 워따워따, 애기가 참말로 유식하네잉~ 지금 뭐라 하는 것이여?
동네사람2 : 아, 이 사람아, 부생아신...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모국아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셔서, 복이회아... 배로써 나를 품어주시고, 유이포아...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셨다...이런 말 아닌가?
동네사람3 : 아따, 자네 참말로 유식허네잉!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디, 자네는 향교 뽀짝 옆에 산다등만
사자소학을 띄어부렀는갑네!
동네사람2 : (어깨에 힘을 딱 주고 으쓱거리며) 아, 이 사람아. 향교 담 너머로 유생들 공자왈 맹자왈 글월을 들은지가 30년일세.
동네사람1 :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뻘로 하는 말이 아닌갑서잉? 요새 성안사람들이 다들 서문쪽으로 몰린다등만 그쪽 학군이 좋긴 좋은갑네.
며느리 : (허탈한 표정으로) 고려시대 여인들은 아들 딸 차별 없이 재산을 상속받았고, 제사를 지냈으며, 재혼도 할 수 있었다 들었나이다.
허나 지금 이 시대 여인의 삶은 어떤지요? 유교사상이 조선땅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땅바닥에 뒹굴고 가부장적 권위로 재산상속에 있어 남성과 차별을 받고 있으며, 여성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회활동을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쇤네, 삼종지도의 의무를 다 하고 홀몸으로라도 아들 하나 잘 키워보겠다 다짐하였거늘, 지금 이 사회는 애비 없는 자식이라 하여 벌써부터 자라나는 아이의 싹을 분질러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 나라 조선의 근간을 이루는 윤리와 도덕이 무어라고 혈연마저 의심한단 말입니까?
좋습니다. 이 아이를 족보에 넣어주지 않으신다면 저 혼자 키우겠습니다. 허나, 나중에라도 이 아이에게 제삿밥 얻어드시겠다 찾는 일은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이는 이 나라 조선의 어엿한 대장부로 키워내겠습니다.
(친정부모를 향해)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아무리 딸자식은 출가외인이라고 하지만, 어찌 남편 잃고 홀로 된 여식을 문전박대 하신단 말씀입니까?
저도 엄연한 임씨 가문의 핏줄이요, 한 때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귀염을 받던 자식이 아니었습니까? 체면이 그리도 중요하고, 남의 이목이 그렇게 무섭더란 말입니까?
좋습니다. 다 감내하겠습니다. 저 임경희, 지금부터 인습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목사고을 나주의 여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우리 아들 나수빈, 비록 가문에서 받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노력해앞길 개척하는 당당한 선비로 키워내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꼭 해내겠습니다. 꼭!!!!
동네아이1 : 이 판결이 있은 뒤 나씨 집안에서는 명판결이라 하여 학봉 김성일 목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남학파와 호남학파의 교류 속에 나주 최초의 사액서원을 세워 활발한 학문교류의 장을 펼쳐갔다고 합니다.
동네아이2 : 하지만 임씨 집안에서는 잘못된 판결이라 하여 대궐에 항소하였는데, 사헌부에서는 2년이나 재판을 끌다가 결국 나주목사의 판결이 잘못 되었다며 임씨 가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동네아이3 :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성산 월정봉에 있던 사직단에 불이 나서 나주목사 김성일은 결국 임씨 집안과는 영영 씻을 수 없는 앙금을 안은 채 나주를 떠나갔다고 전합니다.
동네아이4 : 김성일 목사는 그 뒤 임진왜란이 나자 진주성 2차 전투에서 나주의병장 김천일 선생과 함께 장렬하게 싸웠으나 왜놈들에게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선생은 아들 상건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으며, 김성일 목사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친정아버지(최비용), 친정어머니(최안순), 사또(황길연), 이방(조성환), 호방(박칠순), 며느리(최경희),시아버지(박계수), 시어머니(김남임), 아이(박수빈), 동네사람1, 2, 3(장정숙, 임정례, 최서연), 동네아이1, 2, 3(임정현, 김해미, 조은산)
극본․연출 : 김양순 / 연기지도 : 정진모
2015년 나주읍성 도시재생의 민간협력 사회적경제기업으로 발족한 협동조합 성안사람들은
시민극단 운영과 함께 정리수납전문사업, 흙돌담유지보수사업, 빈집가꾸기 등의 사업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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