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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김노금 세상보기-맘마미아와 친정엄마

by 호호^.^아줌마 2008. 9. 26.

맘마미아와 친정엄마


나이 오십이 넘도록 나고 자란 고향을 한발자국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으면서도 별 불편을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낯익은 얼굴들과 정겨운 이웃들. 그리고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전원도시인 고향을 늘 감사해 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서울이라도 올라가보면 수준 높은 연극이나 음악회들이 잇달아 개최되고 있음을 볼 때,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부러움은 사뭇 큰 것이었다.

그런 엄마의 갈증을 잘 아는 딸아이들이 가끔씩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공연 소식들을 알려 주지만 그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일어어서 늘 안타까움으로만 남았던 공연 중 맘마미아를 뮤지컬로 영화로 두번이나 광주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스웨덴의 그룹 아바의 히트곡 18편을 엮어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는”1999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전 세계에서 30,000회 이상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부터 대 도시 중심으로 거의 매년 전국을 순회하며 무대에 올려졌는데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맘마미아가 울려 퍼진 것이다. 오십이 넘은 우리 세대가 젊은 날 불렀던 “댄싱퀸”“맘마미아”“허니허니”등의 노래를 딸아이와 함께 부르고 손뼉 치며 같이 했던 그 시간의 감동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외국 작품이지만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낸 우리나라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곧 이어 상영된 영화 “맘마미아”의 메릴 스트립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또 하나 며칠 전 나주에서는 극단 예인방의 72회 특별 기획 공연으로 친정 엄마가 나주 시민들에게 선을 보였다. 지금이야 예인방하면 전국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아주는 극단이지만 삼십 여 년 전 연극의 불모지 나주에서 매혈을 해가면서까지 희곡집을 사모아 가며 땀 흘리던  한 젊은  열혈 연극배우의 열정으로 일구어낸 극단 예인방의 작품이기에 더욱 애틋하고 반가운 공연 이었다.

나주지역 정서를 모티브로 모녀간의 속내를 배꽃 향기의 이미지로 풀어낸 친정엄마는 내 이웃들의 이야기를 자분자분 들려주며 자식으로서 또 어미로서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가슴 아릿해지는 연극이었다. 이미 수십 편의 영화와 방송 등에서 중견 연기자로 자리 매김한 배우 김진호를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는 때론 능청스러움으로 ,때론 수더분함으로, 우리의 가슴 깊숙이 들어와 안기며 친정엄마의 속 깊은 사랑을 맛보게 했다.

맘마미아와 친정 엄마는 모두다 모녀간의 이야기다. 맘마미아는 젊은 날의 미혼모가 딸 하나를 키우며 중년이 된 지금. 그리스 외딴섬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하며 딸과 함께 사는데 평소 자기의 아빠가 누구인가를 알고 싶어 하던 딸이 결혼식을 앞두고 엄마의 낡은 일기장에서 아빠일 듯싶은 세 남자를 결혼식에 초대하여 일어난 일들일    밝고 신나는 배경음악으로 스토리 라인을 끌고 간다.

반면, 친정 엄마는 남편이 남긴 배 과수원 하나를 일구면서 홀로 살아가는 친정엄마 집에 언니들과 함께 과수원을 팔아 나누기로 작정하고 내려온 딸과 자식들의 속내를 알고 괘심하고 섭섭하면서도 결국은 딸들을 위해 과수원을 팔기로 마음먹은 엄마와 딸이 자신들의 속내를 교감해 가는 이야기로 극을 이끌어 가는 내용이다.

맘마미아가 세 명의 남자 중 아빠가 누구인지를 모를 정도의 범상치 않은 내용을 시종 밝고 경쾌하게 이끌어 갔다고 하면 친정엄마는 한국적 정서에 바탕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연극이었다.

자신의 결혼을 기회로 엄마의 옛 남자친구를 찾아 재결합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재치를 발휘하는 딸의 작전은 성공한다. 젊었을적 한때의 실수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딸을 낳아 키워온 한 아줌마는 이제 노래와 춤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맘마미아를 찾은 관객 중 30,40대 주부들이 많았다는 기사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性的으로 분방한 외국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과거의 상처를 가진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친정 엄마처럼 평생의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두 모녀의 화해.. 또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두 팔 벌려 환호하는 “맘마미아”처럼의 신나는 일이 현실에서는 좀처럼 어려울 것 같지만 세상사 마음먹기 달린 것 같다.

인간과 인간사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에 꽉 막힌 가슴앓이. 또, 풍요로운 가을에도 농민이 자살 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에서 두 편의 작품은 잠깐이었지만 내게 큰 행복감을 주었고 인생사 너무 많은 것을 생각게 하였다. 아무래도 이 가을 나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인간사와 여성문제를 다룬 두 편의 작품으로 인해 내면의 곳간이 한 뼘쯤은 커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