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끼 더, 과일 한조각 더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란다. 화이트 데이니 무슨 데이니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모두 다 팔자 좋은 사람들 이야기 인 것 같고 11월 11일 이 빼빼로 데이가 주는 어감이나 시각적 느낌이 어쩐지 쌀직불금이다, 비료 값 폭등에 빼빼마른 농민의 날 같은 느낌으로 와 닿는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가을걷이가 끝나고 이맘때가 되면 우리농촌은 쌀 수매로 몸은 바쁘지만 흥겹던 때가 있었다. 면 소재지 농협 앞에서 살던 어린 시절의 가을 새벽은 그렇게 몰려드는 경운기 소리로 잠을 깼었다. 이 동네 저 마을에서 경운기들이 새벽부터 쌀가마를 높다랗게 쌓고 면 소재지 농협 마당으로 모여 쌀 수매 날은 그야말로 온 동네의 잔칫날 이었다.
농민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피땀 흘린 결실이 오롯이 돈으로 환산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등급이 많을수록 농부의 얼굴은 모처럼 환해졌고, 2등급에는 그럭저럭 아쉬워도 고개를 끄덕이며 고등어 반찬이나마 푸짐하게 들고 가던 풍경이 있었다.
올해는 사상 유래가 없는 대 풍년을 기록 한다지만 웃음꽃이 피어야 할 농촌에는 적막감과 탄식 소리만 들린다.
생산과잉으로 갖가지 농산물이 폐기되고, 최근에는 저장할 수 있는 배마저 폐기 중에 있다하니 풍년이 원수가 돼버린 듯하다.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세계화의 추세와 비 농민들의 말없는 지지에 힘입어 WTO 협정과 국가의 재정적 적자를 막는다는 이유로 수매를 폐지한 후, 농촌과 농민의 급격한 몰락을 막기 위해 도입한 쌀 직불금제는 유야무야가 되어 피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의 가슴에 대못만 박고 슬그머니 끝나가는 느낌이다.
농사에 관한 한 전혀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올 같은 가뭄에도 모든 작물이 대풍인 이유가 끊임없이 지하수를 끌어 댈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따지고 보면 노동력은 배가 들고, 타는 가뭄에 농약에다 물까지 끌어써야 했던 석유농법 덕분에 이른 대풍 이었다. 농기계를 동원하여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석유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올해는 세계적 유가 인상 때문에 모든 국민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이들이 바로 농민들이었다.
식물을 심어놓고 타는 땡볕에 타죽지 않을까 병해충에 말라 비틀어 지지 않을까 애타며 밤잠을 설쳤을 농부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 져 온다. 그로인한 엄청난 영농비의 부담은 모두 생산자인 농민 몫 이었는데도 이런 참담하고 기막힌 결과라니...
애써 가꾼 농산물을 뒤엎어 버려야 하는 농민의 고통이 해마다 계속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길은 결코 없는 것 일까 싶다.
이 나라의 법과 제도는 가진 자를 위해서는 세일하다 못해 정교, 교묘하게 잘 만들어져 있지만 서민이나 농민들을 위해서는 왜 이렇게 주먹구구고 엉터리고 분통 터지는 일이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일부 파렴치 하실 고위 공무원들 덕분에 쌀 직불금 제도가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어졌는지를 두 눈으로 목도 하고서도 하소연 할 길 없는 농민들의 분노가 어쩐지 허허롭게 들린다. 이제 모든 가을걷이가 끝나가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얼마 후면 김장철이다. 해마다 서민들 에게는 김장비용이 큰 부담이었는데 올해는 예년에 비해 무와 배추의 작황이 좋아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김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도 결코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이런저런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제도나 법은 당연히 고쳐나가야겠지만 소비자인 우리가 농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쯤 있을 것이라는 생각해 본다.
한 가정에서 김장을 할 때 무나 배추를 서너 포기 정도 더 담아 본다면, 또 수입되는 밀가루 음식보다는 끼니 거르지 않고 밥을 꼭꼭 챙겨먹는다면... 그리고 건강에 좋은 우리과일 먹는 것을 생활화 해본다면...
이런 마음들을 우리 모두가 가져본다면, 쌓아놓은 산지 폐기물 앞에서 탄식하는 우리농민들의 얼굴이 조금씩 환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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