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소띠해 소띠들에게 듣는다
소띠해의 소망
김소연(1997년생)
나주중앙초등학교 6학년
어느덧 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두 번째 맞이하는 소띠해입니다. 올해는 소띠해라서 나의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이 넘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8년도에도 물론 기쁜 일도 있었지만, 힘들고 안 좋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공부를 더 잘해서 초등학교를 후회 없이 졸업하고 싶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안 된 점도 있었고, 아토피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려웠던 것도 기억하기 싫은 추억입니다.
하지만 보람이었던 일은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로 가야금병창을 배웠는데 학교에서 발표할 때랑 다른 행사장에 초대를 받아서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던 것이 가슴 뿌듯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2009년 소띠해에는 중학생이 되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녀가 되고 싶습니다.
중학생이 된다고 하니까 가슴이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이 됩니다. 중학생 때는 공 부를 많이 시킨다고 하는데 혹시 공부를 조금 못한다고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 지, 나랑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지만, 다른 초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왕따시키면 어쩌나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잘 대해주면 남들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 거러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이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어서 서로 헤어져서 살고 있지만 2009년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백민원 가족들도 모두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날마다 기도합니다.
나주시민 여러분께서도 모두 건강하시고 福이 가득한 2009년 새해 보내세요.*^-^*
청년실업 걱정 없는 새해를 바라며
송상근(1985년생)
동신대 운동처방학과 4학년
새해다. 새해가 밝았다.
힘찬 소 울음처럼 새해맞이를 하며 만세라도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을 했지만 결국 혼자서 조용히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했다.
올해는 대학 생활을 접고 사회를 향해 첫발을 내딛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의 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도 안 좋고 청년실업은 넘쳐난다고 하니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이 왠지 두렵기만 하다.
지금 학교 도서관에 가보면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2~3년 전에 졸업을 하고도 계속 도서관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선배들이 즐비하다.
왜 그들은 좀 더 일찌감치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던가, 너무 높은 곳에만 눈높이를 두지 말고 중소기업이나 적당한 일자리라도 찾아서 취업을 하고 차근차근 좋은 자리를 찾아도 될 텐데 후배들 보기에 민망하지도 않나...
한 때 나와 친구들은 그 선배들을 보면서 이런 얘기들을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취업이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똑같은 신세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릴 적 적성검사를 하면서 너는 과학자, 나는 사업가, 또 너는 문학가... 이런 결과를 보고 가슴 설레던 때가 있었다. 집안 어른들은 “너는 꼭 검판사가 돼야 한다”고 압력을 받으면 살았다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런 꿈과 희망은 대학입시를 하면서 수능 점수에 맞춰 대부분 무너졌고, 이제 취업을 앞두고 더 이상 ‘장래희망’은 없어졌다. 그저 하루빨리 취업해서 장가밑천 장만하고 가족들 먹여 살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직장이면 감지덕지다.
얼마전 TV의 한 시사프로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다뤘는데, 한 지방대 졸업생은 취업을 하다하다 안돼서 꽃게잡이 어선을 탔다고도 하고, 또 다른 졸업생은 생선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돈이 안돼서 임상실험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연구중인 심장약을 먹고 심장이 얼마나 벌렁거리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란다...
새해에는 경기가 좋아져서 젊은 인재들이 자신들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 일할 일자리가 많이 창출됐으면 좋겠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과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혼자 사는 노인 등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치인들은 제 할 일 똑바로 했으면 좋겠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우리 부모님들도 땀흘려 일한 만큼 소득을 보장받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미 FTA 재협상을 놓고 말이 많은데 미국산 소 때문에 우리 한우, 농산물이 헐값신세가 되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바람은 아직 군 복무를 안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대학생활 잘 보내고 장교로서 임관해서 조국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 또 그때 설계해야 되겠지...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처럼
김선숙(1961년생)
대한양돈협회나주시지부 간사
다사다난했던 무자년 한 해를 뒤로하고 온 세상을 뒤덮은 새하얀 함박눈과 함께 기축년 새해가 떠올랐다.
무너진 경제와 갈 바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치, 모든 것들이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새해를 희망으로 맞이하자고 ‘파이팅’을 외쳐본다.
올해가 소띠라고 하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덕담을 많이 듣게 된다.
소는 옛날부터 부(富)의 상징이요, 자식들 대학공부 시키는 적금통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또 아들딸 시집장가 보내는 종자돈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그러다 보니 소띠들은 근면성실의 상징이요, 집안의 부를 일구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옛 속담에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다.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해서 결국 성공을 만드는 사람 중에 소띠 태생이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소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고독한 사람들이 소띠들이고 일을 위해 태어나 일을 하다 죽는 것도 소띠들이다.
강자에 강해서 결코 무릎을 꿇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예상외로 인정과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 소의 습성이고, 어쩌면 소띠들의 성격이 아닌가 싶다.
우리도 소와 같이 맡겨진 자리에서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값진 결실을 맺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그 첫걸음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자녀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사랑함으로써 가정의 화목을 바로 세울 때 나아가 우리 사회와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난해 우리는 얼마나 허탈하고 실망스러운 한 해를 보냈던가? 국민들이 위정자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위정자들은 국민들의 아우성과 실망의 목소리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안하무인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그렇게 실패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어떨 것인가? 실패한 1년을 교훈으로 삼아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경제가 어떻느니, 원달러 환율이 어떻느니 하는 말에게는 솔직히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 주변에 사업하던 사람들이 애면글면 애를 쓰는데도 결국 고슴도치 외 따 짊어지듯이 빚을 떠안고 고향을 뜰 때, 종종 친한 지인들과 몰려가 수다 떨며 식사를 하던 밥집이 어느날 굳게 문을 걸어 잠금 채 ‘점포 임대’를 내걸어 놓았을 때, 그때 느껴지는 서글픔과 아쉬움이 새해에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2009년도 새해에는 나주가 살만한 도시, 살다가 뼈를 묻을 고향이라는 희망을 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새해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영산강 항해하는 마도로스를 꿈꾸며
양치권(1949년생)
영산강뱃길복원추진위원회 회장
올해는 내 나이 환갑,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이순(耳順)을 지나 환갑노인이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제 막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원양어선 선장으로 전 세계 바다를 항해하던 시절이 눈에 선하다. 고향땅 나주에서 새롭게 홍어장사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살면서도 내 가슴은 늘 검푸른 파도를 헤치며 망망대해에서 펄떡이는 홍어를 낚아 올리던 그 시절을 꿈꾸곤 한다.
2009년도는 내 나름대로 큰 의미와 희망을 안고 맞이하고 있다.
세밑을 앞두고 영산강 프로젝트의 첫걸음인 영산강 생태하천사업 착공식 축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 데 이어 새해벽두 힘차게 굴착기가 돌아가고 있다. 영산강 뱃길이 열릴 날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영산강 뱃길복원에 대한 꿈을 안고 지역에서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고군분투 해온 지 12년만에 드디어 영산강 뱃길 복원의 시금석이 될 영산강 프로젝트가 본격화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각에서는 영산강 뱃길복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산강 뱃길복원이 한반도 대운하의 전초전이라느니, 관광용 뱃길은 괜찮지만 물건을 실어 나르는 뱃길은 안 된다느니...
관광용 뱃길이라고 해서 나룻배 정도 오가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관광용 배가 다닐 정도면 홍어배, 황시리젓배도 다니고 수출용 자동차도 실어 나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영산강의 시인 나해철 님도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를 그리워하며 ‘황시리젓배’가 끊기던 그 날을 한탄하지 않았던가?
영산강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영산강이 파괴되는 일을 모른다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랑 칠 때 가재를 잡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09년은 내 개인적으로나 지역사회적으로 꿈이 실현되는 한 해가 되길 바라고 있다.
지난해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 해였다. 오죽했으면 나주의 대표적인 산물인 배를 갈아엎는 일이 있었을까 싶다.
그래도 홍어는 전국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보니 10% 정도의 매출이 감소되는 가운데도 꾸준하게 소비가 이어졌다. 새해에는 경기가 좋아져서 나주배와 영산포 홍어, 그리고 나주의 모든 산물이 풍작을 이뤄 지역경제를 꽃피우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영산강둔치에 유채꽃이 만발할 때 유채꽃 향기 속에 홍어맛을 보러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기를 바란다.
금년 한 해는 우리 모두 한우처럼 근면과 성실로 새롭게 일어서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꿈꾼다. 지금도 내 가슴의 훈장처럼 애지중지하고 있는 나주 최초의 해기사면허증으로 영산강을 항해하는 마도로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바다와 강이 살아야 도시가 살고 문명이 일어나듯, 2009년 새해에는 영산강이 살고 영산강 물길이 살고, 내 고장 영산포와 나주가 부흥하는 한 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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