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 / 소를 웃긴 꽃 / 문학동네
그를 처음 만난 날은 가장 많은 시인들을 한꺼번에 만난 날이었다. 그 날은 『삶과 문학』출판기념식이 동대문 어느 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던 날이다. 대부분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가인 <삶과 문학> 동인들이 이십여명 모여서 식사를 하고 책의 출간을 축하했다. 그리고 다같이 촛불집회 장소인 시청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작가회의 소속의 다른 작가들과 합류했다. 행진대오가 행진을 마칠 즈음 작가들과 함께 동아일보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대부분 다 시인이었다.
그 날 윤희상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무척 겸손하고 점잖은 모습의 그는 몇몇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디론가 갔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내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처음에는 다른 작가들과는 별로 말을 나누지 않고 옆에 있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몇 마디 말들로 나는 그가 무척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점상연합회에서 나눠주는 순두부가 맛있다고 꼭 먹으라고 내 손을 잡아 끌고 가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매일 밤 촛불집회에 나와서 밤을 새고 아침 해장국을 먹고 출근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 보다 한참 선배뻘되보이는 어느 시인이 그에게 이제 그만 밤새고 집에서 가족들도 좀 돌봐야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그 유명한 명박산성이 쌓아지던 순간에도 그가 몇몇 신문 기자들에게 제보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를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떤 시를 썼는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윤희상이라는 이름을 내 머리속에 집어넣었다. 시간이 늦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와 나는 둘이서 조금 더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계속 나에게 시를 써보라고 했다. 나는 뭐라 대답을 못하고 그냥 웃기만 했다. 성명서는 좀 써봤고 이런저런 잡다한 글들을 조금 써봤지만 과연 내가 시를 쓸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글쎄 나는 시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시가 의외로 쉽다고 계속 나에게 시를 권했다. 왜 그랬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그를 잊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어느 저녁 촛불집회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었고, 나도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린 눈이 마주쳤고,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가 나에게 뭔가 말을 건넸던 것 같은데 주위가 소란스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인삿말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의 시를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집을 구입했다. 그의 시는 내가 그에대해 느꼈던 첫인상만큼이나 좋았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세상만물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이 부러워졌다! 이런 멋진 사람과 잠시나마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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