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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고난주간을 보내며...헨릭 구레츠키 '교향곡 3번'

by 호호^.^아줌마 2009. 4. 8.

 

Symphony No.3, Op.36

구레츠키 /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Henryk Mikołaj Górecki, 1933년 12월 6일 ~

David Zinman, Conductor / London Sinfonietta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슬픔의 노래 (Symfonia pieśni żałosnych)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은 1976년 폴란드의 살레지아 지방에 있는 도시 카토비체(Katowice)에서 작곡되어 1977년 4월 프랑스의 Royan Festival에서 초연되었다. 이곡은 한개의 모트브가 재현되는 현대적 선법(Neo-modal) 형식의 아주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전쟁으로 인한 모성애와의 결별을 주요 테마로하였다.

1악장과 3악장은 부모의 위치에서, 2악장은 아이의 위치에서 원근법으로 접근하였다.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하는 1악장은 -너무 저음이라 PC 음향으로는 잘들리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된 15세기경에 만들어진 "성모 마리아의 슬픔" 이라는 노래가 근저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2악장에서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게슈타보 지하 감옥에서 발견된 Helena Wanda Blazusiakówna 라는 18세 소녀가 감옥의 벽에 새겨 넣은 기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 3악장의 스프라노가 부르는 가사는 폴란드 남부 민요에서 나오는 전쟁에서 잃은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가 내용이며 빠르기도 앞의 악장처럼 느리지 않아 미묘한 다이나믹으로 처리하며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이다.


1악장 (Lento - Sostenuto tranquillo ma cantabile)
Dawn Upshaw, Soprano
David Zinman, Conductor / London Sinfonietta


2악장 (Lento e largo - Tranquillissimo)
Dawn Upshaw, Soprano
David Zinman, Conductor / London Sinfonietta


3악장 (Lento - cantabile- Semplice)
Dawn Upshaw, Soprano
David Zinman, Conductor / London Sinfonietta

 

헨릭 M. 구레츠키 (Henryk Mikołaj Górecki, 1933년 12월 6일 - )

20세기 후반의 폴란드 출신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교향곡 제3번 - 슬픔의 노래』를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표적인 폴란드 현대 음악 작곡가다. 폴란드 체르니카에서 한 기관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생활을 하며 음악을 배웠다. 구렉츠키의 음악은 다양한 아티큘레이션과 클러스터기법을 사용하다가 단순화된 어법과 소위 작곡기법적 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작품으로 발전한다.

헨릭 구레츠키는 1933년 12월 6일 폴란드의 체르니카(Czernica)에서 다양한 악기를 다룰줄 아는 한 기관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구레츠키는 1951년부터 한 초등학교의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952년부터 1955년까지에 걸쳐 리브닉(Rybnik) 음악학교에서 음악선생과 교육자로서의 교육을 받았다. 1955년부터 1960년까지 그는 카토비체 국립음악학교에서 스짜벨스키(Boleslaw Szabelski)에게 작곡을 배웠다.

음악학교 재학시절인 1958년 구레츠키는 "바르샤바의 가을"음악제에서 혼성합창과 기악앙상블을 위한 『에피타피움』(Epitaphium)을 발표하며 데뷔하였고, 이어서 현악오케스트라와 타악기를 위한 『교향곡 제1번 '1959'』(1959), 소프라노와 기악앙상블을 위한 『모노로기』(Monologhi, 1960), 오케스트라를 위한 『레프레인』(Refren, 1967), 오르간 독주를 위한 『칸타타』(1968) 그리고 소프라노 솔로와 혼성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Ad Matrem』(1973) 등의 작품들을 가지고 각종 국제콩쿠르를 입상하면서 폴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부상하게되었다.

1965년부터 구레츠키는 자신의 모교인 카토비체 음악학교에서 독보법과 악기론 그리고 작곡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 같은 학교에서 정식교수로 발령받았다. 이후부터 그는 폴란드의 음악계를 주도하는 작곡가로서 자신의 모국의 음악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인 야드비가(Jadwiga)와 결혼하여 1남1녀를 두고 있다.

구레츠키의 음악적 경향은 초창기인 1955년부터 1961년까지에는 자유로운 무조음악에서부터 음렬기법과 점묘음악에까지 걸쳐 나타난다.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5대의 악기와 현악4중주를 위한 협주곡』(1957)이나 『교향곡 제1번 '1959'』(1959)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리듬과 다이내믹 그리고 아키큘레이션과 연관시킨 총렬음악을 시도하였는데, 그 예는 1960년에 발표된 오케스트라를 위한『스콘트리』(Scontri)에서 찾을 수 있다. 나아가 고레츠키의 관심은 음색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는 다양한 방법의 아티큘레이션이나 클러스터기법, 소음 등을 통해 음색적 효과를 추구하게된다. 이때의 음색작곡에 의한 대표작으로는 『Trilogie Genesis』를 들 수 있다.

구레츠키 음악에 있어서 발전된 단계의 음악적 경향은 1963년이후부터 찾을 수 있는데, 이때부터 그는 단순화된 어법과 더불어 작곡기법적 요소를 최대한 줄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러한 경향을 특히 교향곡이나 교향악적 작품들을 통하여 시도하였으며, 당시의 대표작으로는 『칸티쿰 그라두움』(Canticum graduum, 1969)이나 『교향곡 제3번 - 슬픔의 노래』(1976)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고레츠키는 단지 몇 개의 음들을 옥타브관계 속에서 겹치게 하며 음색적 효과를 얻고 있으며, 이 작품들이 가지는 형식은 매우 단순하며 음악은 내부적인 구조와 표현은 잘 일치되도록 시도하였다.『교향곡 제3번』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구레츠키는 자신의 작품에 폴란드의 옛 민요를 적절히 인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렇게 특히 교향곡을 통한 구레츠키의 작업은 아방가르드로서 인식되는 면이 있지만 이제 그의 음악은 더욱 단순해지고 이해도가 높아지며 많은 젊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업쇼 [Dawn Upshaw, 1960.7.17~]

특이한 음악성과 아름다운 창법으로 경탄의 대상이 되는 음악가이다. 테네시주(州) 내슈빌에서 태어나 일리노이의 웨슬리언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1984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경연대회에서 우승, 그 해에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에 데뷔했다.

그후 뉴욕·파리·잘츠부르크·빈 등지에서 볼프강 모차르트(Wolfgang Mozart)의 오페라 작품을 공연하여 절찬받았다. 1990년대 후반에는 글라인드본오페라극장에서 피터 셀러스(Peter Sellars)의 지휘로 공연된 게오르크 헨델(Georg Hä ndel)의 《테오도라 Theodora》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아 갈채를 받았으며,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에서 공연된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의 케루비노 역,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새로 제작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é as et Mé lisande》의 잘츠부르크음악제 공연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다.

오페라뿐 아니라 독창회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도쿄·런던·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에서 독창회를 가졌고 카네기홀과 잘츠부르크음악제에서도 독창으로 데뷔했다.

1995~1996년에는 피터 셀러스(Peter Sellars)에게 의뢰하여 요한 S.바흐(Johann S.Bach)의 칸타타 《BWV 199》를 ‘정신이 깃들인 목소리(Voices of the Spirit)’라는 제목의 연주회 시리즈를 통해 뉴욕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95년 가을에는 다시 셀러스와 함께 공연한 《레이크의 길 The Rake's Progress》에서 앤 역을 맡았다.

또한 자기를 위해 작곡해주는 작곡가 가운데 하나인 존 하비슨(John Harbison)의 음악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현대음악을 옹호하는 그녀의 입장은 광범위한 독창 리코딩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미상을 세 차례(1989, 1991, 1996)나 수상했다.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대게는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모색하고 있는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들을 일컫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들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까지이거나 아니면 20세기 이후라 하더라도 이전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음악과는 너무나 다른 현대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는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니 음악사에 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곡가들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조차도 실제 연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고 당연히 음반으로 만들어져 널리 유통되는 경우는 더 더욱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펜데레츠키, 루트슬라브스키 등과 더불어 폴란드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인 구레츠키는 1963년 이후 전위적인 음악에서 방향을 바꿔 단순하면서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고 이 작품 또한 그런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곡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부분은 1악장의  ‘성십자가 탄식 기도문’으로 내용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기막힌 심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들, 내 몸에서 태어난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상처를 나에게 나누어 다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너를 품고 있었던,
진심으로 너를 돌보았던 어미에게
너의 목소리라도 들어 기쁘게 해 다오.


2악장은 2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18세의 유태인 소녀가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벽에 쓴 낙서를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카토비체에서 공부를 했고 또 그곳 국립음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구레츠키는 아마도 이 역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내가 먼저 떠나가지만
엄마 울지 마세요.
고결하신 성처녀 아베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소서.


마지막 악장은 폴란드의 또 다른 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던 폴란드는 그 수많은 침략 전쟁을 겪으면서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야 했습니다. 바로 그건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슬픔이 민요로 전해지고 있고 그것을 구레츠키가 자신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은 것입니다.


어디로 갔는가
내 사랑하는 아들은?
전란이 일어났을 때
내 아들은 잔인한 적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오, 너 몹쓸 인간아
가장 성스러운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해다오, 왜 내 아들을 죽였는지
이제 다시는 아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으니
내가 울고 울어
내 늙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강을 만들어도
그들은 내 아들을 살리지 못하리라
내 아들은 차디 찬 무덤 속에 누워 있건만
아무리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도
그곳을 찾을 수 없구나
가여운 그 아이는
따뜻한 침대가 아닌
어느 거친 땅바닥에 누워 있겠지
나는 자식을 찾을 수 없으니
아름답게 우는 신의 새여
그 아이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오.
신의 작은 꽃이여
내 아이가 행복하게 잠들 수 있도록
활짝 꽃을 피워 주오.

 

국경을 넘고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의 마음을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고 또 가장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은 슬픔입니다. 그리고 그 슬픔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면 누가 뭐래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곡자 구레츠키는 어느 인터뷰에서 슬픔은 형벌이자 동시에 축복이라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숙명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그 숱한 슬픔들은 또 다른 슬픔으로 치유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사순절의 끄트머리 고난주간을 보내며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애통한 마음과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함께하며 듣습니다...2009. 4. 7. 호호아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