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출신 월북음악가 고(故) 안성현 선생 3주기
지석강 솔숲에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 건립
통일 발판 놓은 민족작곡가 조명사업 ‘절실’
나주시 남평읍 출신의 월북음악가인 고(故) 안성현 선생이 오는 25일로 서거한 지 3주기를 맞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주시에서는 몇몇 지역민들에 의해 노래비 건립사업이 추진된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기념사업계획조차 내놓지 않고 있어 문화의 새로운 가치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행정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안 선생은 1920년 7월 13일 나주시 남평면 동사리에서 태어났으며, 17세 때인 1936년 말 부친인 가야금산조 명인 안기옥(安基玉,1894~1974)을 따라 함경남도 함흥으로 이주해서 살다가 일본에 유학, 도쿄의 도호음악대학 성악부를 졸업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남여중, 광주사범학교, 조선대 등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작곡발표회를 열고 작곡집을 펴냈다.
하지만 월북음악가라는 이유로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안성현 선생은 사후에야 비로소 지역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안 선생의 사망 소식은 2006년 5월 27일 연합뉴스가 북한의 문학신문에 난 기사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연합뉴스가 인용 보도한 북한의 문학신문(2006. 5. 13)에 따르면, “민족음악 전문가인 공훈예술가 안성현 선생이 노환으로 4월 25일 오후 3시 86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선생에 대한 기록은 이 보다 휠씬 전인 2000년 무렵에도 찾을 수 있다.
보성군에서는 지난 2000년 10월 1일 이 지역 출신 박기동 시인이 짓고, 안성현 선생이 작곡한 ‘부용산’이라는 노래의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당시 <한겨레21>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박기동 선생은 부용산의 작곡가가 월북음악가라는 이유만으로 군부독재의 탄압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결국 호주로 망명하다시피 이민을 갔던 것.
당시 제막식에는 안성현 선생의 미망인 자격으로 송동월 여사가 참석해 눈시울을 붉혔는데, 그 때 당시에는 안성현 선생이 북한에 생존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옆 사진>
하지만 이 기사에서는 안성현 선생이 나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박기동 시인은 2005년 4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안성현 선생에 대해 “목포항도여중 재직시절 단짝으로 지냈던 안성현은 1년에 두 차례씩 작곡발표회를 갖고 작곡집을 발간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회고했다.
안성현은 당시 아끼던 김정희 학생이 죽자 제자를 애도하는 곡을 만들기 위해 박 시인의 습작노트에서 시 ‘부용산’을 택해 곡을 붙였는데, 이 시는 바로 일 년 전 박 시인이 스물 네 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누이의 주검을 묻고 돌아와 쓴 시였던 것.
여기서 박 시인은 “오직 음악밖에 모르는 그가 어떻게 빨치산 활동을 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 의문”이라며, “그는 서정성이 넘치는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곡을 붙인 로맨티스트였다”고 회고했다.
1999년 광주 KBC에서는 ‘부용산을 아십니까?’라는 TV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방송국에서 추적한 결과 안성현 선생은 1949년 9월에 항도여중을 의원면직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일설에는 한국전쟁 중 최승희가 남하했을 때 “북쪽은 예술인의 천국이니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고 따라갔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안성현 선생에 대한 행적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지역 안팎에서는 선생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사업들이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안 선생의 행적과 업적은 남북통일 이후 양 지역을 연결하는 문화적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리 기초를 닦아두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현재 안 선생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동월(85·부산진구 초읍동 거주)여사와 1남 1녀가 있으며, 처남 송경래(51·광주 북구 연재동 거주)씨가 작곡집을 보관하고 있다.
한편,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최정웅)에서는 남평읍민의 날인 오는 30일 지석강 솔밭유원지에서 노래비 제막식을 갖는다. / 김양순 기자
<사진설명>
1. 남평읍 지석강 솔밭유원지에 세워진 ‘엄마냐 누나야’ 노래비
2. 지난 2000년 10월 보성군 벌교읍 ‘부용산’ 노래비 제막식에 참석한 고 안성현 선생의 미망인 송동월 씨(왼쪽에서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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