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7일 남도투데이 - 남도문화읽기 -
(오후 3:10~3:58, 90.5MHz)
남도의 전통술 이야기
Ann> 매주 금요일 아기자기한 남도 얘기로 꾸며보는 <남도문화읽기>, 오늘은 남도의 전통 술에 대해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남도문화관광해설가인 나주뉴스 김양순 편집국장 연결합니다. 안녕하십니까?
Ann> 왜 갑자기 술 얘기가 나왔을까 궁금합니다?
김> 제가 엊그제 지방도를 타고 어딜 좀 갔다 오다보니까 석양에 일렁이는 보리밭 풍경이 정말 멋지더군요. 그래서 잠깐 내려서 보고 있는데,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라는 시가 생각나더라고요?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여기에서 남도의 술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좀 생뚱맞긴 하죠?
Ann> 그런데 예전에는 술을 직접 빚어서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요즘도 술을 빚어 드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김> 나주 다도면에 가면 불회사라는 절이 있는데요, 예전에 한번 주지스님이 직접 빚었다는 송화차를 한잔 얻어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는 취하더라고요. 대게 사찰에서 솔잎이나 소나무순, 녹차 같은 걸 이용해서 차나 술을 담그는 걸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제가 아는 나주의 한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은 얼마 전에 집에서 직접 국화주를 담갔다고 합니다. 누룩으로 쌀을 띄우고 국화를 담가서 발효까지 잘 시켜서 이제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할 술친구만 있으면 된다는 전갈이었는데요, 저는 국화차에는 공감을 하지만 술은 체질에 맞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예전에 저희 어머니도 집에서 대사를 치를 때 동동주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때 술지게미라고... 술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뉴슈가(사카린 종류)를 타서 끓여서 먹었던 적이 있는데, 이거 죽 같지만 취하거든요. 동네 친구들이랑 같이 나눠먹고 취해서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경험을 했던 생각이 납니다.
Ann> 그렇다면 남도의 전통주라고 하면 어떤 술들이 있을까요?
김> 대게는 지역의 특산물이 지역의 전통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남의 녹향주, 완도의 삼지구엽주, 보성 강하주, 낙안읍성 사삼주, 담양 추성주, 진도의 홍주까지...
그리고 지리산의 국화주와 송화주, 송순주는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이 도리 수도 있겠는데요, 지리산 주변 식당가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송화주는 들국화와 감초, 송순 같은 약재를 넣어서 약으로 먹는 술인 동시에 향을 음미할 수 있는 가향주로도 일품이라고들 하더군요.
Ann> 남도는 지역마다 유명한 술이 있죠? 진도 하면 홍주, 담양 하면 추성주...같은 술이름이 생각나는데요?
Ann> 남도에서 내놓을만한 대표적인 술을 꼽으라면 단연 진도 홍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도사람이면 누구나 빚을 줄 아는 술이 바로 홍주라고 하는데요, 진도사람들이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빛깔 곱고 맛도 좋다는 홍주가 바로 떠오르더군요.
사실 진도는 84년 진도대교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진도만의 순수 토종문화를 유지해왔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민요와 서화, 그리고 홍주를 일컬어 ‘진도 3가락’이라고 하더군요.
선홍색의 붉은 빛깔을 뽐내는 홍주는 40도의 독한 술인데, 삼별초를 토벌하러 온 몽고인들이 그 비법을 전했다고도 하고, 연산군 때 이주(李胄)라는 신하가 유배를 오면서 전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진도 홍주는 진도사람이면 열에 하나 정도는 빚을 줄 안다고 하는데, 진도읍내로 가는 길 곳곳마다 ‘홍주팝니다’하는 팻말이 붙어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진도홍주의 맥을 잇고 계신 분이 양천 허씨 11대손인 허화자 씬데요, 팔순의 연세에도 여전히 홍주를 빗는다고 합니다.
홍주를 빚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쌀과 누룩으로 청주를 만들고 청주를 소줏고리에 넣어 소주를 내리면 되는데요, 소주가 내려지는 항아리의 입구에 지초를 넣어두면 지초에서 핏물처럼 선명한 선홍색이 우려져 나와 홍주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빚어진 홍주는 딸에게조차 돈을 주고 판다고 하니까 얼마나 귀한 술인지 알만 하죠. 하지만 상품화돼서 나오는 홍주도 있으니까 너무 아쉬워 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Ann> 그런데 해남에서도 아주 독특한 맛의 술이 전해지고 있다던데요?
김>대게 험한 일을 하는 바다나 추운 지방에서는 한 모금 마시면 목이 타 들어가는 독주가 발달한 반면 넓은 들을 가진 지역에서는 유순한 곡주가 난다고 하던데 해남에서 나오는 이 술도 좀 특이합니다.
아시다시피 해남은 비옥하고 넓은 땅을 가졌지만 그 땅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녹향주는 45도의 독한 술입니다.
해남 삼산면 녹산골에서 녹향주의 전통을 어어가고 있는 조현화 씨에 따르면,
녹향주는 원래 황해도 장영군 구월산 자락에 몰려 살던 함안 조씨 장연문중에서 대대로 전승돼온 ‘집안 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조 씨의 할아버지가 이 마을에 자리를 잡으면서 삼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는데요, 녹향주는 최소한 2년은 묵어야 시판된다. 올해 녹향주를 마셨다면 그 술은 최소한 2년 전에 만들어진 술인 거죠.
Ann> 그런데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에 추성주라는 술이 또 있다는데, 이 술은 어떤 술입니까?
김> 담양에는 죽제품만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담양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금성산성 남문 아래 연동사라는 절이 있는데, 절집 같지 않은 이 절에 추성주秋成酒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려 문종 때 이영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이 연동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스님이 술을 빚어 먹더란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보니 어느 날부터 술이 자꾸 줄고 있었다. 스님은 아무래도 어린 이영간의 짓이다 생각하고 그를 불러 추궁했고, 마시지 않은 술로 매질까지 당한 영간은 그 날부터 술독을 숨어서 지켜봤다는 군요.
그리고 술을 훔쳐 먹던 늙은 살쾡이를 잡았는데, 아, 글쎄 이 살쾡이가 스님에게 데려가려는 소년에게 비서(秘書)를 주겠다고 제안을 하더랍니다. 비서를 받아든 영간은 비술(秘術)을 익혀 과거에 급제하고 종이품 벼슬을 지내게 됐는데요, 담양 이씨의 시조가 되었던 그는 연동사의 술을 집에서 빚어 마셨고 그 때부터 추성주가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Ann> 그리고 완도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술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술인가요?
김> 완도군 약산 남쪽에 자리 잡은 득암리는 약초가 많다고 해서 약산(藥山)입니다.
삼지구엽초를 비롯해 129종의 약초가 자생하고 있다니 이름값이 옹색하지 않죠? 약산 흑염소가 유명한 것도 약초, 그 중에서도 삼지구엽초 때문인데요, 삼지구엽초의 다른 이름은 양을 음란하게 하는 풀이라는 뜻의 음양곽(淫羊藿)이라고도 불립니다.
약산사람들에게 삼지구엽주는 늘 곁에 두고 ‘복용’하는 건강식품이나 다름없다고 하는데요, 대추·신경초 등의 원료에서 짐작되듯 삼지구엽주는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감초는 아주 조금 넣는데 풀 특유의 쓴 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고, 쓴 향이 아예 사라져 버리고 달착지근한 감초 맛만 남으면 그 또한 삼지구엽주가 아니랍니다.
약산의 공기에 섞여 있는 풀냄새처럼 마치 맞게 쌉싸름한 것이 제대로 된 삼지구엽주 맛인데, 이 맛의 바탕에 증류식 가양주 특유의 향이 자리잡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겠죠?
Ann> 그런데 술맛은 곧 물맛이라고 하던데요, 보성에 가면 물이 좋아서 좋은 술이 나온다는 마을이 있더군요. 어떤 술인가요?
김> 보성군 회천면은 보성 인근에서 지대가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회천의 물은 맛이 독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달착지근한 맛이 우러나면서도 동시에 약간의 짠 기운이 느껴진다는군요. 회천이 바다를 접하고 있기 때문인데, 200여 년의 시간 동안 회천 율포 땅에 뿌리내린 강하주의 깊은 맛도 그 물에서 비롯됐습니다.
강하주를 만드는 도화자 씨는 강하주도 회천 인근 여러 집에서 만들어 마시기는 했지만 흔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농사 꾀나 가진 집에서 집안 대소사나 명절에 빚어 마시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술 만드는 비법만은 흔했다는데요, 예전에는 한 집 걸러 한 집은 강하주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죠. 문제는 밀주단속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밀주 단속이 지속되면서 강하주는 생활 속에서 밀려났고, 지금은 회천 전체를 통 털어도 강하주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열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몇 년전 보성농업기술센터가 보성의 전통주인 강하주를 복원해서 상품화한다는 계획으로 사업에 뛰어들었고, 오랫동안 강하주를 빚어왔던 도 씨는 자연스럽게 술을 만들 사람으로 지목돼 지금까지 틈나는 대로 강하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Ann> 남도의 전통 술들은 나름대로 남도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농도 전남의 특산물을 이용해 빚은 것들이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 한 잔에 담겨있는 남도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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