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잠사터에서 바라본 노을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했던가?
일제시대 이후 전국 최대 잠사 생산지였던
나주잠사(蠶沙)주식회사 건물은
1910년에 세워져 일제시대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곳인데
지금은 굴뚝과 오동나무 몇 그루만 남기고
주차장이 되었다.
그 안쪽, 형체만 남은 건물들도
나주를 상징하는 근대건축물로 지정돼
리모델링사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어느 세월에...
단발머리 어릴적,
가끔 그쪽을 지나올라치면
잠사에서 흘러나오는 하수굿물이 따뜻해서
유난히 코와 볼이 빨갛던 거지가
그 하수구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간간히 떠내려오는 번데기를 냉큼냉큼
건져먹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가슴 속에 짠한 아픔이 피어났던 그 곳.
어느날 그 하수구 옆에 아무도 없어
궁금해하던 차에 몇달이 지나
그 거지는 어느 빈집에서 싸늘한 모습으로 발견됐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또 한동안 가슴에 싸한 아픔이 일던...
청년시절,
친한 후배의 집이 이 곳 잠사 담벼락과
이웃을 하고 있어서
또래처럼 지내는 후배 몇몇과 또 동기들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와서 '올 나이트'를
하며그 돌담길에 드리워진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붉다 생각했던 곳.
하지만 지금 그곳엔 세월을 알려주는
담벼락과 막 붉은 물이 올라오는
담쟁이덩굴이 남아있을 뿐이다.
내 추억의 친구들도
이제는 이 곳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그 가로등 불빛같은 노을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붉은 빛으로 불타올랐다가
월정봉 그 너머로 넘어가는 노을을...
불타오르는 것은 사그라진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한낮의 태양도
한여름 소나기 몇줄기에 사그라지고 만다.
興할 때가 있으면 忘할 때가 있다는 것,
그것이 노을의 미학이다.
2009년 5월 29일 오후 6시 40분쯤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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