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주여행기

국립나주박물관 '개토제'

by 호호^.^아줌마 2009. 5. 20.

국립나주박물관 드디어 '첫삽'

5월 19일 반남면 신촌리에서 '開土祭'

 

영산강유역의 고대 문화상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국립나주박물관(일명 국립영산강고고학박물관)이 드디어 '첫삽'을 떴다.


동신대 문화박물관 유적조사단(단장 이정호 교수)은 지난 19일 국립나주박물관이 들어서는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자미산 자락에서 발굴조사의 시작을 알리는 개토제(開土祭)를 갖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는 지난 2007년 1월 국가사업으로 국립나주박물관 건립계획이 확정된 이후 2년 4개월만에 사업이 추진되는 것으로 국립박물관이 없는 국내 유일 지역이던 전남의 오랜 숙원사업이 해결되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다.

 

먼저, 동신대 문화박물관 유적조사단 이정호 단장의 경과보고...

 

앞으로 4개월 동안 발굴조사를 진행하게 될 이정호 단장도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박물관이 완공되면 주변에 분포한 다시면 복암리 고분은 물론, 영암 마한문화공원 등 많은 고대문화유적과 연계한 관광자원화로 영산강문화의 르네상스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립나주박물관추진위원장 나종석 전남도의원의 인삿말...

 

국립나주박물관 건립사업은 이에 앞서 지난 ‘96~97년 중앙정부예산이 책정됐으나 나주시와 영암군이 설치장소를 놓고 갈등을 벌인데다 관계당국의 소홀로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치열한 각축전을 펼친 끝에 반남면이 최종 후보지로 확정되기까지는 지역민들의 오랜 숙원과 함께,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국보 295호로 지정하는 데 기여한 정호선 전 국회의원의 노력과 국립박물관 기본 실시설계 용역비 10억원(국비)을 확보하는 데 막후역할을 한 최인기 의원의 공로가 크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대다수 유물이 도굴, 침탈당한 이후 그 어느 누구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시절, 지역민들이 나서서 반남 고분문화재의 가치 조명에 나섰다.

1977년 지역 유지들과 출향인사를 중심으로 반남고분군 유적보존회가 만들어져드 고분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역 안팎으로 뛰어다녔다.

그 역사의 산 주역인 정재갑(86, 맨앞 은발 어르신)회장과 회원들.

 

 

 반남면 일대는 대형옹관고분 35기가 밀집된 곳이며 영산강유역 고대세력이 최전성기를 누렸던 중심 지역으로 박물관은 전시 유물의 역사적 현장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박물관은 전체 면적 74,295㎡ 부지에 연면적 3천평 규모로 국비 400억원의 투입돼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신촌리 9호고분에서 출토된 국보 금동관(295호)을 비롯해 영산강고대문화의 독특한 대형옹관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옹관, 토기 등 수백여점의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된다.

 

개토제가 끝난 뒤 뒷풀이...

 

TiP : 반남에 또 다른 국보가 있으니...

한국여성·인권운동의 어머니

소심당(素心堂) 조아라  여사를 추모함

 

조아라 여사는 1912년 3월 28일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에서 조형률 장로와김성은 여사 사이에 3남 3녀 중 둘째딸로 태어나 1927년 광주 수피아여고를 졸업했다. 광주의 어머니, 민주화의 대모, 조선의 할머니라 불리는 여성민주화운동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광복 후 여성·인권운동에 헌신하고 소외된 계층과 항상 고난을 함께 나눈 사회운동가였다.

1936년 수피아여학교가 신사참배·창씨개명을 거부해 폐교될 때 동창회장으로 이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검거돼 수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를 출범시켰으며 이후 광주YWCA재건,수피아여학교 재건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기와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1947년 광주YWCA 재건 때 상무이사로 선임된 뒤 1973년까지 26년간 총무,1979년부터 1983년까지 13대 회장을 거쳐 이후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광주 YWCA와 여성운동·사회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50년대 7∼8년간 전남도 후생국 후생과 부녀계장으로 공직생활을 했으며 1951년에는 전쟁 고아들을 위한 성빈여사(聖貧女舍)를 세우고 이듬해에는 3년제 야간중학교인 호남여숙(湖南女塾)을 설립했으며 청소년 야학인 별빛학원,소외 받는 여성들을 위한 계명여사,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을 맡아 소외 계층을 위한 복지운동도 이끌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에는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지난 2003년 7월 8일 오후 7시30분 지병으로 소천할 때까지 ‘민주화운동의 대모’ ‘광주의 어머니’로 불렸다.

 

<오가는 길에 본 낯익은 풍경들> 

애너벨리의 머리카락을 생각나게 하는 보리밭의 황금물결...

 

그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게 넘기 어려워 했던 보릿고개...

이제 보리가 막 익어가고 있다.

불에 살짝 구워 손바닥으로 비빈 뒤 후~후~ 불어 재를 털어내고

입에 '탁' 털어넣으면....

그립다 그맛이...  

주민들과 너무도 친숙하게 지내왔던 고분들...

그 역사와 문화가 이제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되리라.

 

녹색융단으로 단장한 덕산리 고분...

 

아, 그리운 찔레꽃 향기...

결국 나를 멈춰서게 만드는구나.

마시자, 흠뻑...

취하자, 추억...

 

'나주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은산 / 정찬경 노래

나주 산포뜰 새들의 천국  (0) 2009.05.31
옛 잠사터에서 바라본 월정봉 노을  (0) 2009.05.30
영산강에 찾아온 왜가리  (0) 2009.05.20
여성 전통놀이 ‘나주삼색유산놀이’ 재현   (0) 2009.05.18
나주목사내아 琴鶴軒 개장  (0) 2009.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