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의 아름다운 길 #1
2009. 6. 1. 나주경찰서길에서
1977년 12월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나주경찰서가 우리 학교 옆으로 이사를 왔다.
신기했다.
경찰도 보고, 형사도 보고...
경찰서장이 지나가면 '차렷!' 하며
경례하던 오빠들도 멋있었고.
그런데 그 경찰서길이
이렇게 멋지게 변하다니...
곧고 푸른 메타세콰이어길...
그 옛날 나처럼 잔상스럽고 비리비리하던
조무라기 나무들이
이렇게 아름드리로 자라나
멋진 길을 만들다니...
이 길을 걷는 사람 누구일까?
누군가는 걷겠지
근심걱정 가득한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 경찰서로 향하겠지
마음에 울분과 억울함이 가득찬 사람들도 이 길을 걸어
대한민국 경찰을 찾겠지
더러는 怨을 풀고 가는 이도 있을 것이고
더러는 원망과 한을 품고 가는 이도 있을 것이고
더러는 다시는 오지 않으마 맹세하며 가는 이도 있을테지
호홋^^
하지만 굳이 경찰서를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로 여기서 오른쪽으로 훽 틀면
중앙초등학교, 성북아파트, 또 사람 사는 세상으로 통하는
샛길이 나오니까...
곧고 푸른 이 길을 걸으며
어린시절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길'을 생각한다
젤소미나의 그 슬픈 눈망울과
트럼펫 테마의 선율을...
난 저 여자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바보처럼 왜 저런 짐승같은 놈한테서 못 벗어나는 거야
벗어나!
벗어나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
바보, 못난 바보천치 같으니라고...
놀렸던 그 젤소미나를 생각하며...
#수도원
수녀: 언제나 차에서 자요?
젤소미나: 넓어요. 냄비도 등불도 있어요.
수녀: 여행을 하며 다니는 것이 좋아요?
젤소미나: 그게 일인걸요
수녀: 우리들도 이년마다 수녀원을 옮긴답니다. 여기가 두 번째예요.
같은 땅에 오래 있으면 떠나기 힘들어 지기 때문이예요.
한그루의 초목도 정이 들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돼요
젤소미나: 서로 나그네 길을 걷는 군요 목적은 다르지만
수녀: 그렇군요. 그게 인생이지요.
#헛간안
누워있는 잠파노에게 제르소미나가 말을 건다.
젤소미나: 잠파노, 왜 나하고 같이 있어요.? 이쁘지도 못하고 요리도 할줄 모르는데...
잠파노: (귀찮은 듯) 무슨 생각을 또 하고 있는 거야. 그만둬 . 자는 거야
젤소미나: 비가와요. 비가 여기서 자길 잘했어요. 잠파노 내가 죽는다면 슬프겠어요?
잠파노: 죽을 생각이야?
젤소미나: 전에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결혼해도 좋아요.
자갈들도 쓸모가 있다면 나도 쓸모가 있겠지요? 그런 일 생각한 적 없어요?
잠파노: 생각하지 않아. 제발 그만둬. 실 없는 생각마. 자.
젤소미나: 잠파노, 조금은 내가 좋아요?
잠파노: 그만 두라니까!
잠파노는 잠이 들어 버린 듯하다. 제르소미나는 나팔을 손에 들고 또 같은 멜로디를 불기 시작한다.
쓸쓸한 감정을 불어넣어서...
# FI
수년 후, 지방의 작은 항구 거리
할 일 없이 걷고 있는 잠파노 판자 아이스크림 집을 지나친다.
잠파노: 하나 줘 레몬이야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그걸 빨면서 걸어간다. 이때 어디선가 여자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운 목소리. 그것은 언제나 제르소미나가 사랑하던 그 반가운 멜로디임에 틀림없다.
멈치 서버린 잠파노. 잠시 그는 근방을 두리번 거리고 살폈으나 다시 들리지 않으므로 헛소리인가하고
그냥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또 같은 목소리가...
멎어버린 잠파노의 눈에 근처의 언덕에서 빨래감을 말리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 띤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여자다.
잠파노: 그 노래를 어디서 배웠수? (여자는 이상스럽게 보는 눈치다) 노래 말이우. 이제 막 부른 노래 말이우
여자: 전에 살고 있던 여자가 부르던 걸요
잠파노: 언제쯤?
여자: 사년인가 오년 전에요. 언제나 나팔을 불고 있었어요
잠파노(깜짝 놀라면) 지금 어디 있소?
여자: 죽었어요. 당신은 서커스 하는 사람이군요. 그 여자도 그랬어요.
그래도 아무 소리도 안하더군요. 바보처럼.... 처음에 그 여자가 바닷가에 넘어져 있는 걸 봤어요.
대단한 열이었어요. 집에 데려와도 울고만 있잖아요?
기분이 좋으면 양지밭에서 나팔을 불곤 했지만 ...
어느날 아침에 죽었어요. 동장이 신분을 조사 했지만...
잠파노. 그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 바닷가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 .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잠파노.
바다에 들어가 얼굴을 적시고 온다. 그리고 모래밭에 주져 앉아서 허덕이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잠파노: 외톨이야. 내겐 아무도 없어!
눈물이 솟아 오른다. 흐느껴 운다. 이윽고 참을 수가 없어서 모래 위에 쓰러져 몸부림치며 울기 시작한다.
캄캄한 해변에 덩치 큰 사나이가 쓰러져 몸부림 치고 있는 그 모습을 담은 카메라가 고요히 토터백한다.
그 귀에 익은 멜로디를 가득 부으면서-
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