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전설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섦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2009년 6월 28일 해진녘,
함평군 손불면에 있는 민예학당(옛 손불남초등학교)에서 만난 치자꽃입니다.
치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서 사랑을 받는 꽃이죠.
영국에서는 가데니아라는 처녀가 천사로부터 얻어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6월부터 꽃이 피기시작하고 9월에 황홍색의 열매를 맺습니다.
어렸을 때 오빠가 발목을 삐었는데 아버지가 치자 우려낸 물에 밀가루를 반죽해서 바르고
천으로 묶어두었더니 나중에 시퍼런 독이 깨끗이 빠지고 대신 밀가루가 퍼렇게 변해있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치자꽃 향기...정말 매혹적입니다.
밤에 맡으니 청량한 가을 맛이 납니다.
꽃말이 한없는 즐거움, 순결, 신중, 행복이라던가요?
풍류를 즐겼던 옛날 사람들은 꽃잎을 따서 술잔에 띄워 그윽한 향기와 새하얀 색을 즐겼다고 하죠?
그러고보니 옛날 잔치때 치자 우려낸 물로 전이며 떡을 만들어먹었던 기억도 생각납니다.
치자꽃이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세상에나... 카메라에 담아온 꽃에서 향기가 납니다.
아하, 그러고보니 꽃잎 하나를 카메라 가방에 넣어두었더니 그 향기가 이러는 군요.
치자꽃 향기 속에 7월을 기다립니다.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시 / 백창우 작곡/ 신현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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