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칼럼… 구루를 찾아서
실패자를 뜻하는 ‘루저’란 말이 화근이었다. ‘키 180 이하 남자들은 모두 루저’라고 했다던가. 방송 중 한 여학생이 무심코 뱉은 말 한 마디의 여파다. 그로 인해 인기를 끌던 TV프로가 존폐위기에 처했단다. 키 작은 남자들은 그 프로의 실무자들을 상대로 집단소송까지 벌일 태세라니.
반면 스승, 지도자를 뜻하는 ‘구루’란 말은 신선하다. 최초의 사회적 기업가라고 불리는 빌 드레이턴, 아쇼카 재단의 창립자를 소개하는 기사를 흥미롭게 읽는다.
한 사람에게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은 자칫 타자 의존형 인간을, 좀 더 나아가 그에게 낚시법을 가르쳐주는 건 간신히 제 끼니를 제 손으로 해결을 하는 자급자족의 부류를, 그러니 한 발짝 더 나아가 어업혁신의 방법을 모색하는 사회적 기업가를 탄생시키는 것이 이 재단의 궁극적 목표란다.
아쇼카는 기원전 3세기, 불교를 받아들여 윤리 중심의 정치를 도입,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인도의 황제 이름이다. 명칭의 유래에서 엿보이듯 건전한 사회혁신을 꿈꾸는 이들을 발굴해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는 단체가 아쇼카 재단이다. 그 혜택을 입은 이른 바 아쇼카 펠로의 한 예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다.
자신을 향한 그 어떤 존칭의 수식어들을 다 떼고 그저 빌이라 불러주라 주문했다. 미국 최고의 리더 25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된 혁신적 CEO 드레이턴을 향해 빌 케이츠, 콜린 파월, 오프라 윈프리까지 구루라 부르기를 주저 않는다던가. 읽는 내내 떠오른 포숙이다. 포숙을 추억하는 관중의 고백이다.
‘내가 가난했던 시절, 포숙과 장사를 했다. 이익을 분배할 때 항상 내가 많이 차지했다. 그러나 포숙은 날더러 탐욕스러운 자라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거덜이 난 적도, 세 번의 벼슬에서 세 번 다 쫓겨났으나 그 때도 포숙은 내게 어리석은 자라 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세 번이나 달아났으나 비겁자라고 하지 않았고, 포숙은 이런 나를 천거하고 자신은 그 아랫자리를 마다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를 낳아 준 것은 양친이나 나를 이해한 것은 포숙이다.’
훗날 재상이 된 관중은 지금까지 보잘 것 없던 제나라를 혁신시켰다. 무역에 힘써 부국강병의 실효를 거두고 백성들의 요구와 국가의 이익을 일치 시키는 놀라운 통치력을 보인 것이다. 사유(四維), 즉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이 네 가지 도덕 강령이 흔들리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는 게 관중의 정치철학이었다.
천하의 루저에서 구루로 탈바꿈한 관중은 키가 커서 세인들의 우러름을 받았을까. 불과 몇 센티 차의 키가 어찌 사람 판단의 척도가 될 수 있으랴. 외모지상주의에 따른 격세지감이 아찔하다.
혜안(慧眼) 지닌 한 개인이든 경제적 위치를 갖춘 사회적 기업이든 누군가를 묵묵히 밀어주는 신뢰의 힘은 위대하다. 그 굳건한 믿음의 투자가 루저를 구루로 변신시키는 큰 기적을 일으킨다. 실패자요, 졸장부로 전락할 관중을 국가사회에 공헌하는 스승이요, 지도자의 큰 재목으로 기른 혁신적 인재 양성가 포숙이야말로 진정한 구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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