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칼럼… 작은 음악회
가만히 누워 있자니 입가에 실실 걸리는 웃음이다. 살다가 벌인 재미난 일, 아니 재미난 날에 대한 회상이니 외양간에 누워 침 젤젤 흘리며 제 속 게워 반추하는 소 영락없다.
지난 달, 그러니까 10월의 마지막 밤 운운하는 핑계를 대며 내 집 마당에서 벌인 작은 음악회다. 감, 모과, 동과, 조롱박과 누런 호박... 등등을 즐비하게 늘어놓은 틈바구니에 붉은 단풍까지 끼웠다. 장작불을 피우고 긴 탁자를 연이어 붙여 식탁보를 씌우니 제법 그럴 듯했다. 무쇠솥 달궈 누릇누릇 익히는 삼겹살도 그렇고 아궁이에선 풀풀 촌닭이 끓고.
옛 선비님네들 사랑해 마지않던 사철화 여전히 피어있었던가. 별은 총총하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데 일조하였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밤하늘에 울려 퍼지던 색소폰이다. 이어지던 아마추어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하모니!
정말 나는 오랫동안 간절했다. 배 깔고 누워 부르던 동요와 학창시절의 노래, 한글로 토 달아 열심히 외우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들, 그리고 정겨운 우리 가곡과 쓸쓸한 날 가만가만 나를 위무해주던 독일 리트들, 누군가 취향 닮은 이들과 함께 듣고 싶고, 입 모아 부르고 싶었다.
‘내가 커서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지을 거예요. 울도 담도 쌓지 않은 그림 같은 집, 내가 커서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가꿀 거예요. 작은 뜰에 꽃도 심고 고기도 길러, 언제라도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까닭 없이 심신이 지치던 날, 아이들과 율동하며 큰 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없어. 한 그루의 무화가 나무, 또 우리들 마당의 돌담 이끼 낀 틈에서 피어나오는 새파란 오랑캐꽃의 무리... 이런 것들이 가장 사실적인 것, 알아야하는 것,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것들이야.’ 이는 루 살로메가 릴케에게 준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언가.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연 우리가 꿈꾸던 삶은 무엇이었던가. 우리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의 모습조차 망각한 건 아닌가. 바쁘게 치닫는 사이 계절은 어느 새 막바지로 치닫고, 우린 또 이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마는 아쉬움이었으리라.
설레었지만 지치던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 와 짐을 푸는 기분이 이러할까. 마음 깊은 곳에 두레박을 내려 맑은 샘물 길어 한 바가지 들이킨 기분이랄까.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들 때, 항상 점잖아야 되는 어른이라는 호칭이 무겁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언제라도 모일 것이다. 그리고 돌아갈 것이다. 이 작은 음악회를 통로로 해맑던 유년과 푸르던 젊은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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