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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스크랩] 당신이나 잘하시오

by 호호^.^아줌마 2009. 12. 4.

당신이나 잘하시오

권필은 아룁니다. 영광스럽게도 편지를 받아보니 저를 인정하신 말씀은 너무 과하셨고 저를 책망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온당하십니다. 감히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 없어 제 속마음을 대충이라도 여쭙고자 합니다.

저는 타고난 성질이 엉성하고 막돼먹어 세상 사람들과는 어울리기 어려웠습니다. 붉은 대문을 단 으리으리한 저택을 보면 반드시 침을 탁 뱉고 지나가는 반면에, 못사는 동네의 허름한 집을 보면 반드시 서성대고 두리번거리면서 ‘팔베개를 베고 맹물을 마시지마는 내 사는 즐거움을 다른 것과는 바꾸지 않겠다.’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나 않을까 기대하곤 했습니다.

또 붉고 푸른 인끈을 늘어뜨린 고관대작으로서 온 세상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을 보면 노비를 대하듯 천시하는 반면에, 의협심이 있는 개백정으로서 마을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자들을 보면 반드시 흔쾌한 심정으로 그들과 함께 노닐면서, 비분강개하여 슬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저들 속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곤 했습니다.

이런 소행이 제가 지금 세상에서 괴상한 인간이라 취급당하는 이유입니다만, 무슨 심경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제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때문에 현실에서 실랑이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산이나 들로 물러나 칩거하면서 들뜬 생각을 가라앉히고 심신을 수양하여 옛사람이 말한 도를 추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렴계(周濂溪), 정자(程子), 장재(張載), 소강절(邵康節), 주자(朱子), 여동래(呂東萊)의 저작을 가져다가 읽고서 사색하였습니다. 터득한 바가 있다고 감히 자신하지는 못하나 문장과 의리 사이에서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마음을 굳게 먹고 학문에 종사한지 이제 예닐곱 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엄한 스승께서 저를 이끄신 것도 아니고, 훌륭한 벗이 저를 도와준 것도 아니라서 그럭저럭 녹록하게 세월을 보내는 중에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습관이 또 그 틈을 타고 저를 휘감아 얽매고 말았습니다. 비록 도에 뜻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말과 행동은 예전의 저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족하(足下)께서 이러한 책망을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아! 족하께서 저를 책망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틀리지 않고, 족하께서 저를 아끼시는 정은 참으로 넉넉합니다. 저는 일찍이 벗이 선한 사람이 되도록 책망하고 어진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옛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옛사람의 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홀연히 나타났고 그것도 제 자신이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감히 제가 족하께 두 번 절하여 축하를 올리고 또 제 자신에게도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남에게 잘 하라고 하기는 쉽고 자기에게 잘 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족하께서 제게 잘 하라고 한 것을 가지고 자신에게 잘 하라고 할 수 있다면 또 다행일 것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권필은 말씀 올립니다.

△▲ 《석주집(石洲集)》 별집 2권에 수록된 〈답송홍보서(答宋弘甫書)〉원문.

- 권필(權필¹, 1569-1612), 〈답송홍보서(答宋弘甫書)〉, 《석주집(石洲集)》

1) 필 : 韋+畢
※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는 『한국문집총간』 350책의 원문텍스트와 원문이미지가 DB로 구축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석주집(石洲集)》은 제 75책에 들어있습니다.

해설


송홍보(宋弘甫)라는 사람으로부터 충고의 편지를 받고 보낸 답장이다. 송홍보는 곧 송석조(宋碩祚, 1565∼?)로서 홍보는 그의 자이다. 명종 때의 명신 송기수(宋麒壽)의 손자로서 1601년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광해군 때에 두루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가 권필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기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권필의 능력을 칭찬하면서 한편으로는 처신을 충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충고의 내용은 출세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여 세상에서 평이 좋지 않으므로 행동을 고치라는 취지였으리라. 답장 중에 “지금 세상에서 괴상한 인간이라 취급당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런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편지를 받은 권필의 답은 어땠을까? 우선 그는 그런 평을 듣게 된 자신의 성격과 행동을 변명삼아 설명하였다. 뒤이어 행동을 반성하고 학문에 뜻을 두어 고쳐보려 했으나 고쳐지지 않으므로 당신의 책망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이어서 내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하는 당신에게 고맙지만, 내게 충고하는 것을 당신 스스로도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답장은 혼란스럽다. 권필이 친구의 충고를 있는 그대로 고맙게 받아들였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오히려 상대를 되받아치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다. 남의 잘못은 잘 보면서 제 잘못은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나, 내게 충고한 것을 자기 자신에게 충고해보라고 한 이야기가 그 증거이다. 충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실상, 이 편지에서는 충고를 받고서 앞으로 자신의 행동을 고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전에도 고치려 했지만 고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은 예전의 저와 다를 것이 없었던 것[其言其行, 只是向來底人]”을 경험했다고 밝힌 것도 그의 생각을 엿보게 한다.

문제가 된 그의 행동은 큰 부를 쌓은 부자들과 잘난 체하는 고관대작을 증오하고, 거꾸로 가난뱅이나 비천한 협객들을 친구처럼 여기는 것이었다. 사대부 지식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신분적 이익에 안주하지 않으려 했다. 그 점은 허균이 〈통곡의 집[慟哭軒記]〉 등에서 말한 “오직 비천함과 가난, 곤궁과 궁핍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가 살고자” 하였고, “반드시 하는 일마다 이 세상과는 배치되고자” 노력한 태도와도 통한다.

자신도 잘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양심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을 터이므로 이 답장은 “너나 잘해라” 하고 친구의 충고를 완전히 되받아친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출처 : 나주향교(羅州鄕校)
글쓴이 : 시습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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