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시 제2009 - 503호
전라남도 문화재 지정 고시
문화재보호법 제72조와 전라남도문화재보호조례 제4조, 제7조, 제12조, 제13조, 제14조 등과 동 시행규칙 제7조 등의 규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전라남도 문화재 지정(인정) 고시합니다.
2009. 12. 31
전라남도지사
1. 지정고시 내용 개요
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 2건
- 제303호 보성 은봉종택과 대계서원 고문서 일괄
- 제304호 장흥 신흥사 소장 정방사명 동종
나.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지정 : 1건
- 제46호 : 담양 황금리 들노래
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 1건
- 제30호 고흥 한적들노래 보유자 백형길
2. 지정고시일자 : 전라남도보 고시일
3. 지정고시 세부내용
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1) 보성 은봉종택과 대계서원 고문서 일괄
o 문화재명 : 보성 은봉종택과 대계서원 고문서 일괄
(寶城 隱峰宗宅과 大溪書院 古文書 一括)
o 지정번호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3호
o 소재지 :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 473
o 수 량 : 150점(간찰첩본 4, 고문서 142, 대계서원문서 4)
o 시 대 : 조선시대
o 소유자 : 사유(안재호)
o 관리자 : 안재호(죽산안씨 문강공 종회)
o 지정 사유
문강공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은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20세에 임진왜란을 당해 박광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도 격문을 띄워 근왕(勤王)의 의기(義旗)를 높이 세웠다. 임진․정유왜란과 관련된 「진주서사(晋州敍事)」, 「삼원기사(三寃記事)」, 「호남의록(湖南義錄)」, 「임진기사(壬辰記事)」, 사림정신을 고취한 「기묘유적(己卯遺蹟)』, 「항의신편(抗義新編)』, 동서 분당과 관련된 「혼정편록(混定編錄)』, 「기축기사(己丑記事)」 등의 저술을 남겨 절의정신을 고무시키고 배운 것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참된 선비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죽산안씨는 안방준의 5대조[安民]에 보성으로 입향하였으며, 은봉의 종택(宗宅)은 대대로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에 있었고, 소장 자료들은 은봉 맏아들 안후지(安厚之) 계통의 역대 종손들이 보존, 전승해 왔다. 1657년(효종 8) 건립되어 1704년(숙종 30)에 사액된 대계서원(大溪書院)의 관련자료도 보관되어 있다. 은봉 종택 소장 자료는 안방준(安邦俊) - 안후지(安厚之) - 안전(安全) - 안두상(安斗相) 대(代)에 남겨진 간찰첩본, 교지 등과 안권(安權) - 안영환(安永煥) - 안규삼(安圭三) - 안종묵(安鍾黙) - 안옥순(安玉淳) - 안병문(安秉文) 대의 사회활동과 문중활동에 관계된 간찰과 각종 고문서들이다. 그리고 대계서원 관련 고문서 등 150점(간찰 첩본 4, 고문서 142, 대계서원 문서 4)이다.
간독류(4책)는 안방준과 교유한 명현들의 편지를 엮어놓은 첩본(諸賢簡牘), 은봉과 그의 아들, 손자, 증손자들과 교유한 명현들의 편지(先儒往復[諸賢簡牘]), 은봉과 인척을 맺었던 성문준(成文濬, 우계 成渾의 아들) 집안의 편지와 은봉 자신과 후손들의 편지(內外先祖手蹟), 고종 원년(1864)에 대계서원에서 『은봉전서』를 간행 배포할 때 받은 답장 편지(簡牘) 등이다. 당대 학자들의 교유 관계, 조선조의 정치상황, 선비들의 출처관(出處觀), 친인척 간의 교유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서예사적 가치도 있다.
대계서원 관련 문서는 대계서원진신장의안(大溪書院搢紳掌議案) 등 조선후기의 기록자료로서 사액서원의 운영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과 조선 후기 사회의 한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크다. 가치가 있다.
고문서 가운데 교지류는 안방준(安邦俊) - 안후지(安厚之) - 안전(安全) - 안두상(安斗相) 등 4대에 걸친 차첩, 교첩, 유지, 교지 등으로 당시 제도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명문류는 1600년대 후반에서 등 1800년대 후반에 이르는 문서로서 매매관행과 제도를 알 있는 고문서이다. 소지류는 『은봉전서』간행과 관련하여 문파(門派) 간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문서와 산송(山訟)이나 계(契), 위선(爲先) 사업과 관련된 문서들이다. 이 문서들은 조선조 후기에 한 종가의 역사와 생활세계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보성의 은봉 안방준 종가와 대계서원에 소장된 고문서는 선현의 간찰, 대계서원 문서, 안방준과 그 후손관 관련되는 교지류와 호적문서, 그리고 명문류와 소지류 등이다. 이들 문서는 조선조의 정치상황, 선비들의 출처관(出處觀), 친인척 간의 교유, 인물교류사, 사액서원의 운영, 종가를 중심으로 한 생활사 등 조선후기 제도사와 향촌사회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도 있다. 또한 간독류는 예술적 가치도 있다. 따라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를 지닌다.
2) 장흥 신흥사 소장 정방사명 동종
o 문화재명 : 장흥 신흥사 소장 정방사명 동종(長興 新興寺 所藏 井方寺銘 銅鐘)
o 지정번호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4호
o 소재지 : 전남 장흥군 장흥읍 연산리 89-8번지 신흥사
o 시대 : 조선(1751, 영조 27)
o 규모 : 높이 64cm, 구경 43.9cm, 두께 2.7cm
o 소유자 : 신흥사
o 지정 사유
장흥 신흥사에 소장된 “海南 井方寺銘 銅鐘”은 조선후기[1751년, 영조 27년, 乾隆十六年 辛未 五月日]에 제작되었지만 고려시대 걸작인 탑산사종(보물 88호, 1233년 추정)과 상당한 친연성이 느껴진다.
신흥사 동종은 고려 종에 비해 구경이 넓고 상대와 유곽사이에 범자문이 있으며 유곽사이에 보살입상이 있고 단아한 몸체와 정교한 문양, 그리고 아름다운 용뉴의 표현은 조선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좋은 작품이다.
종을 제작한 도편수 윤취오(尹就五)와 수재(手才) 장흥(長興) 윤광형(尹光衡)은 사장(私匠)계열의 주종장으로서 17-18세기에 여러 종을 만들었던 집안의 장인으로 보인다. 이들은 장흥 장평면과 장동면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윤씨 집안에서 사승(師承)관계를 이어가면서 꾸준히 주조물을 조성하여 수준 높은 동종과 금고 등을 생산한 집단이다.
따라서 장흥 신흥사 종은 작품으로서의 가치 이외에도 주조의 절대연대와 관련 인물과 장소도 도 알 수 있고 종장의 연구 등 한국 금속공예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됨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할만한 가치를 지닌다.
나.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지정
1) 담양 황금리 들노래
o 문화재명 : 담양 황금리 들노래
o 전승지 : 전남 담양군 수북면 황금리 307번지
o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6호
o 예능보유단체
- 명칭 : 담양황금들노래 보존회
o 예능보유자
- 성명 : 남귀희(남, 1948년 1월 3일생)
o 지정사유
담양 황금리는 영산강 상류의 너른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들판이 넓고 물산이 풍부한 곳답게 예술적 전통이 남달랐던 마을로 논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던 들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담양 황금들노래는 모판을 만드는 일부터 모를 찌고, 모를 심고, 논을 매고, 장원질을 하는 전 과정에 걸쳐 있다. 그리고 각각의 노래는 늦은 소리와 잦은 소리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논매기에서는 <지화자소리>, <떨아지소리>, <나헤소리>, <사뒤여소리> 등과 같은 다양한 노래들이 배치돼 있다. 이런 구성과 짜임새는 황금들노래가 남도 민속예술의 멋과 신명을 담아 전승되어 왔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모판 만들기 노래를 비롯한 다양한 노래의 전승, 힘차고 흥겹게 불려지는 집단적인 신명, 다양하고 화려한 음악적 구성과 선율 등은 황금들노래가 지닌 전통성과 예술성의 정도를 잘 보여준다.
담양 황금리 들노래는 영산강 상류지역을 대표하는 들노래다. 남도의 젖줄에 해당하는 영산강유역 민속예술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부터 제13회 남도문화제, 1985년 제2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출전하면서 널리 알려진 들노래이다.
선소리꾼 남귀희(남, 1948년생)는 선친의 예능을 승계해서 30대부터 황금들노래 공연에 앞장서오고 있는데 가창력이 탁월한 향토음악인으로서 3대째 황금리에서 살아온 토박이이다. 그리고 황금리 주민들은 들노래 보존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황금리 마을에서는 들노래보존회를 조직하고 들노래 전수관을 세워서 전승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황금리 들노래는 논농사의 전과정에 해당하는 노래가 잘 갖추어져 있는 점, 영산강의 상류이며 전남의 내륙지역에 속하는 들노래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전남지역의 도서지역과 해안지역의 들노래와 비교할 수 있는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점, 남성들로 이루어진 들노래인 점, 선소리꾼의 음악성이 뛰어나 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 점, 집단노동예술로서 황금마을 주민들의 들노래 보존을 위한 적극적이고도 열성적인 태도와 역량이 있는 점 등으로 보아 무형문화재 지정 가치가 있다. 아울러 예능보유단체로 담양 황금들노래 보존회, 예능보유자로 남귀희를 인정하여 전승할 필요가 있다.
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1) 고흥 한적들노래 보유자 백형길
o 문화재명 : 고흥 한적들노래
o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1996.10.14 지정)
o 전승지 : 전남 고흥군 도덕면 용동리 한적마을
o 예능보유자
- 당초 : 정봉주(사망), 박반심
- 인정 : 백형길(남, 1932년 1월 16일생, 고흥 도덕면 용동리 929-5번지[한적]
o 인정 사유
「고흥 한적들노래」고흥군 도덕면 용동리 한적마을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들노래로 전남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민요로 꼽힌다. 전남의 들노래는, 논매기소리를 기준으로 볼 때 영산강 유역을 낀 전남 서부지역의 긴소리권, 섬진강 유역과 동남부 해안지역의 산아지타령권, 서남해 도서해안지역의 절로소리권등 세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산아지타령권은 고흥, 구례, 곡성, 보성, 순천, 여수 등지를 지칭하는데, 이 권역을 대표하는 노래가 바로 한적들노래다.
「한적들노래」는 전통성과 예술성,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인정받아 199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면서 정봉주(남, 1923년생, 작고) 씨와 박반심(여, 1931년생) 씨가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한적들노래는 모찌는 소리(<방애타령>, <산아지타령>)-모심는 소리(<상사소리>, <자진상사소리>, <산아지타령>, <등달아라>)-논매는 소리(<초벌논매는소리>, <산아지타령>, <두벌논매는소리>, <세벌논매는 소리>-길가락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논농사의 주요 과정마다 노래가 배치돼 있고, 산아지타령권답게 산아지타령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형길은 한적들노래의 전승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전통적인 맥락 속에서 들일을 하고 들노래를 전승해 왔다. 논농사를 업으로 삼아 살아온 이력 자체가 일에 대한 지식과 예능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초 보유자였던 정봉주와 함께 공연활동을 했으며 그의 예능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는 유일한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 2000년에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되었다. 들노래 소리 뿐만 아니라 육자배기, 상여소리 등 다양한 향토소리를 보유하고 있는 소리꾼이다.
백형길은 한적들노래 중에서 논매는 소리와 길가락 소리를 담당하고 있다. 이는 모심기를 여성이 맡고, 논매기를 남성이 맡는 전통적인 역할 분담에 따른 것이다. 그는 현 단계에서 한적들노래가 지닌 일노래의 기능과 그 예술적 연행을 가장 잘 구현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된 이후 주어진 역할을 잘 해왔고, 해제된 예능보유자의 역할을 수행할 만큼 충분한 예능성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예능보유자로 지정해서 원활한 전수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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