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 장 지글러에게 듣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현실은 살인적인 부정의로 물들어 있다. 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그렇지만 인간의 의식은,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북반구 국민들의 의식은 이런 상태를 오래 참지 못할 것이다.
변화된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빼앗긴 대지의 꿈(La Haine de L'occident)
장 지글러 (지은이) | 양영란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10-03-05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로 잘 알려진 장 지글러의 최신작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 열강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남반구의 비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이 책은 서양의 침략과 학살, 수탈이 22억 남반구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초토화시켰으며, 그로 인한 증오의 감정과 아픈 기억이 현재의 세계를 어떤 위기로 몰고 가는지,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기적처럼 싹트고 있는 연대와 혁명의 움직임을 남아메리카의 대표적 빈국인 볼리비아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 책은「증오의 기원」 「착취의 계보」 「정신분열증에 걸린 서양」 「나이지리아, 멈추지 않는 증오」 「볼리비아, 새로운 시작」의 총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최근의 세계 동향을 엿볼 수 있는 개정판 서문을 함께 실었다.
객관적 논리와 생동감 넘치는 현장성, 명료함과 감수성을 동시에 갖춘 이 책은 2008년 프랑스 인권저작상, 2009년 스위스 툰 상과 케어 인터내셔널 밀레니엄 상 등을 받았다.
침략과 수탈의 잔혹사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반구의 역사는 서양에 의한 침략과 수탈, 학살로 점철된 피와 눈물의 역사이다. 과거 서구 제국주의가 뿌려놓은 이 비극적인 역사의 씨앗은 오늘날 남반구의 많은 나라들에 빈곤과 내전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남겼다. 남반구가 서양에 대해 한결같은 목소리로 원망과 굴욕감, 그리고 증오심을 토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증오, 지나친 이기심은 보다 나은 세계를 열망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든다. 이는 인류의 화합과 발전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장 지글러는 세계가 단결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심각성을 공유하고 해법을 강구해보고자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 『빼앗긴 대지의 꿈』이다.
먼저 이 책의 1장 「증오의 기원」은 남반구에 깊이 뿌리 내린 서양에 대한 증오심의 실체를 파헤쳐, 이를 야기한 서양의 범죄가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 묻는 데에서 출발한다. 지글러가 제시하는 서양의 첫 번째는 바로 ‘노예사냥’이다.
그는 노예제도야말로 남반구 주민들이 지난날의 아픈 상처와 기억을 떠올리는 데 중심이 되는 특별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과거 “아프리카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하여 2,000만 명 이상이 강제적으로 가족의 품을 벗어나 대서양 너머로 이송되었으며, 그곳의 농장, 광산 등지에서 배고픔과 질병, 고문 등으로 고통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했다.” 이는 오늘날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조국을 떠나 다른 대륙에 살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가 아메리카 대륙에 터전”을 잡게 된 계기가 된다.
물론 지글러는 “역사의 엄청난 역설”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정체성이 가장 굳건하게 확립된” 시기가 그들이 “노예로 끌려와서 지낸 암흑기 동안”이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사냥’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상처를 안겨주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다음, 지글러는 남반구 주민들이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 구심점이 되는 두 번째” 범죄로 서양의 무력 침략, 즉 식민지 정복을 지목한다. 프랑스의 작가 레옹 블루아는 “우리의 식민지, 특히 극동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의 역사는 고통과 도를 넘어선 잔학성, 이루 말할 수 없는 파렴치함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했다. 참상은 실로 가혹하다.
유럽이 벌인 식민지 정복으로 다양한 종족이 조화롭게 무리를 이루며 살던 아프리카는 완전히 산산 조각났다. 억지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말미암은 내전, 또 그로 인한 빈곤은 끝이 없어 보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유럽의 무력 침략과 학살에 의해 거의 절멸할 뻔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오늘날 사회의 차별과 멸시 속에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서양인들은 항상 피지배자의 문화 파괴, 개별적인 정체성 파괴, 정서적인 관계 파괴 등에 집착했다.” 이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의 경험에서 보듯 결코 잊히지 않을 충격과 상처이다.
계속되는 비극
그렇다면 침략은 끝났는가? 지글러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오늘날 계속 강요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체제”가 노예제나 식민 지배와 겉모습만 달리한 채 남반구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2장 「착취의 계보」에 등장하는 “추한 계보”의 면면이다.
남반구 주민들에게는 “세계화된 서양 자본이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을 비롯하여 다국적 민간 기업들로 구성된 용병들을 이끌고, 신자유주의 이념을 무기 삼아 강요하는” 이 체제, 즉 “현재의 지배 체제야말로 지난 500년 동안 추진되어온 억압 체제 가운데 가장 살인적인 체제”이다. 지글러가 인용한 코트디부아르의 외무장관 울레 시엔의 말을 기억해둠 직하다.
“만일 여러분들이 노예제도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십시오. 내리쬐는 뙤약볕 밑에서 혹은 빗줄기 속에서 수백만 명의 농부들이 여러 달 동안 힘들게 노동한 대가로 얻는 상품의 가격이,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농부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볼 필요 없이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노예제도 폐지 이후) 방법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흑인들은 이제 앤틸리스 제도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에 강제로 실리는 일은 없어졌으니까요. 그들은 자기 땅에 머물러 살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이 자기 땅에서 흘린 피와 땀에 대해서 런던이나, 파리, 뉴욕에서 값을 매깁니다. 노예상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노예상인들은 주식투기꾼으로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p. 102)
피할 수 없는 세계화 체제에서 남반구 사람들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계는 평평하다’는 허울 좋은 기치 아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서구 제국들. 오늘날 그들의 지배는 “그 기간과 지구 전체에 확산된 정도로 볼 때 인류 역사상 최악”이다. 그렇다면 서양은 세계에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놀라운 서양의 이중성
지글러는 이 책의 3장 「정신분열증에 걸린 서양」에서 서양은 한마디로 중증의 정신질환인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언행이 완벽히 불일치하는 서양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한 것이다. 오랜 기간 유엔 인권위원회와 세계 각국의 현장을 누비며 활동해온 저자의 목소리에는 이처럼 말로만 인도주의를 떠드는 ‘정복자’의 이중성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이 가득하다.
지글러는 이 장에서 “인권이야말로 국제사회의 뼈대가 되어야 마땅하다”며 인권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다. 거기에 “모든 인권은 인간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도 덧붙인다. 이는 비단 지글러만의 주장인가. ‘인권’은 이미 만국 공통의 보편성을 획득한 우리 삶의 가장 근본인 가치이다.
국제사회는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의지에서, 1948년 12월 10일 유엔의 총회를 통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인권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다. “모든 개인은 사람답게 살 권리, 자유로울 권리,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를 가진다”고 했던가. 그러나 “1948년 당시 전체 인류의 4분의 3이” 서구 식민 지배의 채찍 아래서 신음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캄보디아 고무 농장에서 강제로 노역하는 노동자들의 숙소에서 아이들은 영양실조와 오염된 물, 말라리아 등으로 죽어갔다. 가봉, 카메룬, 콩고 등지에서 프랑스 임업 업체가 고용한 십장들은 너무 약하거나 병들어서 할당량의 나무를 벌목하지 못하는 일꾼들을 못이 박힌 채찍으로 피가 나도록 때렸다. …… 도둑질을 했다고 의심되는 광산 노동자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채 이들을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았다. 손목에 괴저 증상이 보이면 나무에서 끌어내어 손목을 잘라버렸다.” (pp. 125-126)
잔인한 식민 지배가 “계속되던 시기에 당시 유엔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서양국가들은 해마다 12월 10일이면 인권의 고귀한 원칙을 기리며 인권선언 기념행사를 했다.” 지글러의 말대로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이러한 능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날에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남반구 국가에서, 심지어 우리가 속한 아시아에서까지 서양의 이중적 행위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자신들이 범한 죄과에 대한 반성은? 그조차 여의치 않다. 2007년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1960년 이전까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던 세네갈을 방문해 “참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며, “식민 지배자들 가운데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문명을 전파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기함할 만한 연설을 했다.
또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대통령에게는 “과거는 존재하고, 미래는 이제부터 건설”하는 것이라며 자신은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닌 “미래를 건설”하고자 알제리를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서양의 독선과 오만, 기만적인 태도는 지금도 서양에 대한 남반구 사람들, 더 나아가 많은 세계인의 증오심을 부추기고 있다.
절망의 풍경
서양의 이중성과 제국주의가 빚어낸 참상은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다. 특히 그것은 검은아프리카 대륙에 만연하다. 아프리카 중서부 기니 만에 연한 나이지리아라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온통 암흑뿐인 절망의 풍경을 감지한다. 지글러는 이 책의 4장인 「나이지리아, 멈추지 않는 증오」에서 서구에 의한 극심한 침탈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이 나라는 서구 제국주의가 가져다준 문제점을 모두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8위의 석유 생산국”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나라가 만성적인 기름 부족으로 애를 먹으며 빈곤의 심연에서 허덕이고 있다. 서구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 덕분이다. 이들은 나이지리아 주민의 노동력을 갈취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석유 시추로 인한 환경 파괴에는 무관심하며,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지른다. 천문학적인 수익은 모조리 본국으로 가져간다. 또한 일정 세력과 결탁해 전쟁을 지원하고 나이지리아 정부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오늘날 나이지리아의 외화 수입 중 무려 90퍼센트가 석유에 의한 것임을 감안할 때 국가 전체의 부가 이들 서구 다국적 기업의 손에 좌우되고 있음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오늘날 서양이 남반구에 사용하는 지배 수단이 바로 ‘부패’다. 이 방식은 돈이 좀 들지만 엄청나게 효과적이다. “부패는 시민과 정부 사이를 이어주는 신뢰의 끈을 잘라버린다. 부패는 국가를 좀먹고 결국은 무력화시킨다. 무기력하고 신뢰받지 못하며 비능률적인 국가는 서양 거대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석유 회사의 현지 책임자들은 나이지리아 유지들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곤 한다. 몇몇 ‘파트너’들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긴 하지만 기업들은 그다지 불평할 것이 없다. 그들 기업의 연간 매출전표가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축적된 절망이 불러오는 주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투자를 지원한다. 폭동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서양 기업들이 누리고 있는 과도한 특혜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세계은행은 “자신의 법적 지위를 망각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나이지리아보다 훨씬 처참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사하라 이남 개발지원금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나이지리아에 퍼붓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계은행은 “석유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동시에 정작 가난한 나라들에 돌아가야 할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투자 자금을 축내고 있다.” 지글러의 분노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부모는 가난을 피해 자녀들을 노예로 팔아넘기고, 도심 한복판에는 서양이 내다 버린 쓰레기로 악취가 가득한 나라. 무분별한 석유 개발로 아름답던 땅과 물이 모조리 오염된 나라. 극렬한 이권 다툼으로 온갖 파벌들이 전쟁과 학살을 벌이는 나라. 서양에 대한 증오가 멈추지 않는 이 가난한 나라. 나이지리아에 내일은 있는가. 지글러는 나지막이 묻는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고는 라틴아메리카의 빈국 볼리비아로 눈길을 돌린다.
다시 움켜쥔 희망
볼리비아는 아이티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절반이 양양 결핍으로 고통받는” 이 나라의 가난은 그야말로 참담함 자체이다. 그러나 이 힘없고 가난한 나라에 최근 거대한 희망이 물결이 찾아들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5장 「볼리비아, 새로운 시작」에서 우리는 새롭게 일고 있는 그 희망의 움직임을 또렷이 목격한다.
볼리비아 어린이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로 신음한다. 미량 영양소의 부족과 결핍으로 사망하는 성인들도 부지기수다. 원주민 혈통의 주민 공동체에 속한 어린아이들의 고통도 심각하다. 대도시 외곽에서는 빈민가가 점점 늘고 있으며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은 “얼마되지 않는 먹을거리를 놓고 쥐들과 다툼을” 벌인다. 이 가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1492년 콜럼버스가 이른바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착취, 거듭되는 학살에 전대미문의 시련을 겪었다. 서양은 수세기 동안 엄청난 양의 자원을 아메리카의 광활한 대륙으로부터 그들의 조국으로 퍼 날랐다. 지글러에 의하면 “이베리아 출신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의 땅속과 대지, 숲과 계곡에서 3세기 동안 파낸 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원주민들은 노예와 광산 노동자로 전락해 짐승처럼 일했고, 서구가 벌인 학살과 고문, 전쟁, 그리고 전염병 등으로 무수한 인구를 잃었다. 볼리비아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1809년 스페인이 물러간 후에도 서구 제국주의는 이 나라에 끝없는 간섭을 해왔다. 정치는 불안정하고 쿠데타가 빈번했다. 거대 다국적 기업이 국가 산업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빈곤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놀랍도록 바뀌고 있다. 2006년 1월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추대된 이후의 일이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남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인디언 대통령”이다. 과격한 인종차별주의와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국민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금보다 훨씬 잘사는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이 원주민 농부 출신인 모랄레스의 소망이다.
그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광산, 석유, 농업에서 파생되는 부를 서구의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재탈환했고, 가난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식민지국가 타파 및 민족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2006년 말부터 석유와 가스, 정유 시설, 제련소, 광산의 국유화로 얻어지는 국가 재정 수입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불어났다.” 그리고 모랄레스는 그 수입을 볼리비아의 자립과 빈곤 퇴치, 사회 개혁과 복지 부문에 고스란히 투입하고 있다. 볼리비아가 서구의 압력과 국가 내부의 많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이 나라를 통해 목도할 수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지글러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볼리비아 주민들의 아름다운 ‘연대’이다. 가난에 지친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는 대신 그들의 문제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사람을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택했다.
분열과 다툼, 핍박과 모멸, 무수한 죽음이 뒤따랐지만 사람들은 결코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장-자크 루소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자신의 운명을 상대방의 처분에 맡기게 되는 경우”라고 했다. 볼리비아의 주민들은 더 이상 자신의 운명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용감히 싸웠고 승리를 일궈냈다. 함께 모여 정의로운 내일을 만드는 기쁨을 누렸다.
서구의 간섭과 악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볼리비아를 뒤흔드는 희망의 움직임도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다.
남반구의 비참한 상황은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 없다. 과거 일제 침략의 경험을 상기해보거나, 현재 IMF, WTO 등과 같은 신자유주의적인 국제기구들의 압력, 거대 다국적 기업의 횡포, 서구 열강의 간섭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우리 역시 이 모든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이 책에서 논의되는 사안들은 실상은 세계인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이다.
지글러가 전작들에 이어 우리에게 세 번째로 전해온 이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상처투성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8년을 일하며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고, 현재 인권이사회에 속해 자문위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입장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극심한 세계의 분열과 서양에 대한 많은 세계인들의 증오, 변하지 않는 서구사회의 이중적 태도와 오만함을 가까이 목격하며 얼마나 많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꼈겠는가. 때문에 그는 이 책에서 이전보다 훨씬 강한 목소리로 외친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과거의 죄과를 인정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자고. 그래야 모두가 행복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다시 말해 『빼앗긴 대지의 꿈』은 우리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책이다. 지글러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인권’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권리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거꾸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되묻는 자기 성찰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이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것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만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올곧게 직시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현재의 세계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것.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한데 모여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아름답고 위대한 일은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흰머리 성성한 한 노학자가 아낌없이 전하고자 한 궁극의 외침이다. 인류의 화합 없이 한 단계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그런 뜻에서 장 지글러의 『빼앗긴 대지의 꿈』은 ‘새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데 가장 앞장서는 책이 될 것이다.
지금 볼리비아를 관통하는 희망의 움직임은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도탄에 빠진 세계는 다시 일어서고 있다.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절망하기에 이르다. 충분히 감동적이며 가슴 벅찬 ‘가능성의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값진 희망이다.
장 지글러
1934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장 지글러는 제네바 대학과 소르본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다. 1981년부터 1999년까지 스위스 연방의회에서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2000년부터 2008년 4월까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다. 국제법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자이자 실증적인 사회학자이며, 특히 인도적인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글을 의욕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저명한 기아문제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대표작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비롯해, 식량특별조사관으로서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을 돌아보면서 발견한 세계화의 병폐를 지적하며 그 대안을 제시하려는 의지를 담은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2008년 5월부터는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역자 : 양영란
최근작 : <위기 그리고 그 이후>,<빈곤한 만찬>,<탐욕의 시대>
소개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코리아 헤럴드」 기자와 「시사저널」 파리 통신원을 지냈다.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10년쯤 살았다. 사람 몸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라 <응급실 이야기>에 앞서 록트인신드롬에 걸린 남자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을 깜박여 쓴 <잠수복과 나비>, 세계 최초의 안면이식수술환자 이자벨의 수술 실화를 기록한 <이자벨의 키스>를 번역했다. <미래의 물결> <코튼로드> <식물의 역사와 신화> <현장에서 만난 20세기> <엄마 집에서 보낸 사흘> 등을 번역했으며, 김훈의 <칼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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