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민들레
김수평 / 나주뉴스 NPC위원
7월에도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있다.
민들레꽃은 보통 4월에 많이 핀다. 여름에 피는 여름꽃이 아니다. 봄꽃이다. 봄이라도 꽃샘바람으로 소매 속이 시린 그런 봄이 아니다. 볕 다숩고 바람도 순해진 안온한 봄에 맞추어 핀다. 뭣도 모르고 함부로 꽃몽오리 터뜨려 심술궂은 바람에 부대끼다 뚝 뚝 무너지는 목련보다 영리한(?) 꽃이다.
이렇듯 민들레가 노오란 웃음꽃을 피우면 봄이 자지러지기 시작한다. 또 어디에도 핀다. 텃밭 가에도, 동네 어귀에도, 기찻길 옆에도, 강둑에도 핀다. 바람 덕택인 것 같다. 꽃이 지면 홑씨가 되어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은 사람만 심는 것이 아니다. 바람도 심는다.
산소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효심은 있지만 효행이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유별난 효자라는 뜻이 아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사람은 고아가 된다. 어려서 고아는 슬프지만 늘그막의 고아는 외롭다. 그래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에라도 맴돌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고즈넉한 무덤가에 앉아 대화를 한다.
무심이었으면 좋으련만 이것저것 바라는 소망이 어찌나 많은지 그걸 다 들어주시려면 저승에서라도 힘드시겠다. 끝끝내 자식은 부모의 애물단지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A/S는 끝도 갓도 없는 것 같다.
어머님 같은 누님을 여읜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의 파편들을 산소길에 떨군다. 7월 상순이지만 태양은 벌써 신경질을 부린다. 땀으로 옷이 감긴다. 대기오염이 어떻고 지구 온난화가 어떻다는 데 대해 아는 바 별로 없지만 요즈음의 날씨가 기후가 내 유년시절과 같지 않다는 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세상인심만큼이나 기후도 헝클어졌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마의 땀을 훔치는데 노란 민들레꽃이 눈에 들어온다. 남들 다 피는 4월 좋은시절 마다하고 무슨 연유로 습기 배인 7월 더위에 필까? 그것도 척박한 돌자갈 틈새에서. 그 꽃은 너무 작고 가냘퍼서 들바람에 하늘거리지도 못한다. 활짝 피는 간드러짐도 없다. 제 철에 피지 못한 억눌린 세월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는 것 같다.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에 내 가슴도 오그라든다. 그동안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 작은 꽃에서 눈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눈물 냄새를 가슴으로 맡았다.
세상은 고르지 않다. 유복한 부모 모시고 별다른 고생 없이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통운(通運)한 사람들이라 하는가. 4월에 피는 민들레처럼 인생을 찬연하게 꽃 피우는 사람들. 시쳇말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하는가 하면, 고생을 타고난 사람들도 있다. 태생부터가 어둡고 실타래 얽히듯 꼬이기만 하는 사람들. 세상의 변방을 떠돌다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저버리는 사람들.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를 가만가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전자는 아닌성 싶다. 인생의 또렷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냉혹한 세상과 타협하기에 바빴던 나, 그러니 세월과도 불화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하여, 세월이 포개질수록 몸도, 마음도 주름만 늘어났다. 몸속에서 가랑잎 구르는 소리 들리는 나이 들어서야,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망하다는 자책에 짓눌리다니.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항상 늦는 것을.
하지만 담뱃진같이 달라붙어 있는 내 운명에 죄도 없이 폭행만 당할 순 없다. 그래서 찾아나선 곳이 도서관이었다. 살아생전에 글 한 꼭지라도 피우고 싶어서.
이처럼 인생의 석양에 책을 벗하고 글을 써보겠다는 게 얼핏 마음을 비운 선비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마음을 비운 게 아니라 되레 내 인생에 수도 없이 태클을 걸었던 운명에 대해 당돌하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또 오기와 욕심으로 범벅이 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3년 가까이 도서관을 기웃거렸다. 봄가을로 문을 여는 문예창작반에도 들락거렸다. 어줍잖은 글도 써서 모았다. 닭이 천 마리면 그 중에 학이 한 마리 있다는데 내 글은 전부 닭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성당개 3년이면 복음을 전파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아니다. 애초부터 잘못된 것 같다. 거기에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
“느그 놈들도 나이 묵어 바라 한 해 한 해가 틀릴 것잉께.”
맞는 말이다. 3년 전보다 몸이 안 좋다. 나이 들어 오는 병이야 순리이다. 욕심 같아서는 아픔을 깡그리 떨쳐버리고 싶다. 안 된다. 귀찮지만 보듬고 같이 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이가 한 10년 젊었으면…. 허욕이다. 어쩔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너무 늦었다고 눈물짓는다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대단한 문사(文士)가 될 싹도 보이지 않는데 차라리 접을까? 많이 흔들리는 요즈음이다.
이럴 때 산소길에서 철 늦게 핀 민들레를 보았다. 어디서 한가하게 놀다가 늦은 것이 아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피우겠다’는 의지를 불사른 투혼이 엿보인다. 나처럼 늦깎이로 꿈을 그리는 사람들한테 저 민들레는 “좌절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웅변하는 것 같다. 하잘 것 없이 그냥 애잔하게만 보이는 그 작은 꽃이 나한테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 친구야, 4월에 핀 꽃보다 네가 더 옹골차다고 찬사를 보내마.
“오 오! 장하다! 7월에도 꽃을 피우는 민들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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