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현종의 나주 몽진을 기념하고 고려사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연등문화축제가 지난 3일 봉축법요식을 시작으로 석가탄신일인 10일까지 영산포 둔치체육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고려 현종 나주몽진 재현 연등문화축제
지역 불교계, 천 년 전 고려사직 의미 되살려
고려왕조-나주 정체성 밝힐 학술행사 필요해
불기 2555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2011년 빛가람 고려사직 연등문화축제’가 영산포 둔치체육공원과 시내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나주불교사암연합회(회장 원일스님)와 나주지역 불교단체 연합으로 구성된 빛가람 고려사직 연등문화축제위원회(추진위원장 이성필)가 마련한 이번 행사는 지난 3일 봉축법요식과 연등문화축제 개막식을 시작으로 불꽃축제, 어버이날 효(효)콘서트 등의 공연과 함께 점등행사와 사진콘테스트, 시낭송회, 불꽃쇼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함께 펼쳐졌다.
특히, 3일 열린 봉축법요식에서는 불교계 큰스님으로 통하는 용타스님의 설법과 함께 인기가수 태진아의 특별공연이 마련돼 성황을 이뤘다.
이번 축제는 1011년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외가가 있는 나주로 몽진을 해 고려사직(임시수도)으로 삼고, 연등회, 팔관회 등의 국가의식을 개최하였고, 초조대장경의 판각을 구상했던 고려사직 연등문화를 천 년 만에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고려사직 연등문화축제는 기존의 시민회관(법요식)과 영산포삼거리(점등식)로 나뉘어 진행됐던 행사장소를 영산포둔치체육공원으로 일원화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기존의 불교행사와는 달리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축제로 발전시키면서 천년 만에 연등회를 재현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연등달기 행사는 시민들이 직접 영산강 유채꽃밭과 풍등(하늘), 유등(영산강)에 달아 소망을 기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돼 관심을 끌었다.
이번 축제를 총괄한 김일환 축제집행위원장은 “석가탄신일을 기해 마련된 이번 연등문화축제는 기존의 종교의식 위주의 행사를 탈피해 고려왕조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유산인 연등회를 재현함으로써 역사도시 나주의 위상을 정립하고 지역축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행사로 첫발을 딛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고려 현종의 나주 몽진 천년역사에 대해 그 의미를 되새기는 학술심포지엄 등을 통해 고려왕조와 고려사직에 대한 역사학적고증과 연구가 실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주는 1011년 거란의 2차 침입 시 고려 현종(고려 8대왕 : 991년-1031년)은 친고려적인 도시이고, 고려창건의 계기가 되었던 나주출신의 2대왕 혜종의 고향인 나주로 몽진을 하여 10여일 동안 머물면서 고려의 사직으로서 국왕이 직접 개최하였고,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초조대장경의 판각을 시작하여 거란을 물리쳤다.
광주 전남 공동혁신도시인 나주시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0년 전에 고려정부의 수도 개경에 이어 제2의 사직(임시수도)이고 거점도시 어향지처럼 대우를 받았던 곳이다. 또한 1018년 전국을 8목으로 조정할 때(현종 9) 나주만이 호남 유일의 목으로 남음으로써 고려왕실과 중앙정부가 인정하는 주요한 도시로 인정을 받았던 지역이었다. (출처 : 고려사절요)
고려사직 유래
나주는 고려정부의 제2의 사직(社稷)이라 할 만큼 고려정부와의 인연이 깊다. 왕건이 후삼국의 패권을 장악한 것도 나주 오다련 등 토호세력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 하였기에 가능했고, 나주오씨(장화왕후)와 아들인 고려 제2대왕 혜종이 나주출신이며, 또한 1011년 거란의 2차 침입으로 현종이 몽진할 때 전주의 지역은 후백제의 도읍이었고 아직 그 세력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혜종의 고향인 나주로 몽진을 하였던 것이다.
현종은 특히 나주에 10여일 머물면서 금성산 기슭(현, 동신대학교 추정)에서 국가의식을 개최하고, 초조대장경의 판각을 시작하여 거란을 물리쳤으며, 1014년 현종5년(8대왕 991-1031) 태묘와 사직단을 수리하였다라고 고려사절요는 전한다. 이렇듯 나주는 고려정부의 또 다른 사직이고 거점이었다.
금성산
금성산은 나주의 진산으로 옛날부터 영산강과 함께 나주의 상징이었으며,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나주는 금성산을 등지고 영산강을 두르고 있어 읍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기 때문에 옛부터 이름난 인물이 많다고 기록해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작은 한양, 즉, 소경(小京)이라 했고 인근고을 주민들이 서울대신 구경을 했다고 한다.
'나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18민주화운동 31주년 나주도 열기 ‘후끈’ (0) | 2011.05.18 |
---|---|
박준영 도지사 시·군 순방은 업무보고용? (0) | 2011.05.09 |
제89회 어린이날 기념 '제19회 나주 어린이 큰잔치' (0) | 2011.05.02 |
도코모모 코리아 나주 근대문화건축 탐방 (0) | 2011.05.02 |
제13회 나주배꽃·유채꽃 전국사진촬영대회 (0) | 2011.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