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 권하는 사회
‘실단과 보건소 여비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김모 과장님을 향한 못된짓을한 과장은 월1백만 적게는 5십만원씩 매월 받아먹고 그런식으로 하면 되겠어요 이번 추석때도 요직에 있는 과장들은 3백-5백만원씩 불법으로 회계처리해서 상사들한테 상납했는데...’
지난달 3일 나주뉴스에 배달돼 온 편지의 내용이다. 보내는 사람은 나주시 시청길 22번지 최OO. 무려 석 장에 걸쳐 나주시 내부비리에 대해 빼곡하게 고발을 하고 있다.
취재원과 제보자에 대해서는 어떤 위험과 회유가 있더라도 보호하고 비밀을 지키는 것이 취재기자의 본분이지만, 이 상황에 대해서는 무턱대고 보도를 할 수도, 그렇다고 그냥 취재수첩에 끼어놓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주시는 이 상황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었다. 시 관계자는 나주시의회 모 의원에게도 같은 내용의 편지가 배달돼 귀띔을 받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참인가. 편지의 내용으로 봐서는 공직 내부의 비리를 조목조목 적고 있어 내부고발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분명히 진위를 파악해야겠지만 그 일을 맡을 감사실 관계자도 역시 편지에 거론되고 있어 감사실에 일을 맡기는 것은 마땅치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일부 내용은 나주시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내용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논의를 거쳐 경찰에 수사의뢰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감사실에 편지를 건네주고 조사를 벌이는 중이라고 한다. 감사 담당자가 자신의 비리를 고발한 사안을 조사한다고? 말문이 막혔다.
과연 문제의 진위를 파악하자는 것인지, 내부고발자가 누군지를 색출하자는 것인지 안 봐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 상황에서 새삼 다산의 얘기를 떠올려 본다. 공직자로서 다산의 기개는 대단했다. 이른바 공직자의 바이블이라고 일컫는 ‘목민심서’에는 상관의 명령이라도 법령에 어긋나거나, 백성을 위해서 이롭지 못한 것은 반드시 거절하고 듣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 열거돼 있다.
준법을 누누이 강조했던 다산이지만 이롭지 못한 법령이라면 절대로 지켜서는 안 된다고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다. ‘위민흥리(爲民興利)’가 아닌 어떤 명령이나 법령도 지키거나 응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였다. 그렇다면 부당하고 부정한 명령이라면 물어 무엇 하겠는가.
올해 들어 잇달아 터진 공무원들의 비리로 공무원들이 줄줄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몸통은 없고 깃털만 뽑혀나가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는 와중에 소위 간부공무원들의 비리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고발할 생각을 한 것을 보면 공직 내부에 쌓인 찌꺼기가 적잖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 연루된 비리 공무원이 사법처리 선상에 오른 공무원뿐일 거라고 생각하는 공무원과 시민은 없을 것이다. 몸통이 있으니 깃털이 있을 것 아니냐는 짐작은 어렵지 않은 일 아닌가.
이런 상황을 과연 나주시 수뇌부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나주시의 치부를 드러낸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여기고 스스로 자정노력에 나설 것인지, 내부고발자를 찾아내 괘씸죄로 다스릴 것인지 그 과정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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