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반상회
구시대의 산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반상회가 돌아왔다. 지난 9월부터 반상회를 한다는 공지가 있더니 이번달은 곳곳에서 반상회가 열리고 있다.
반상회, 어렸을 때는 동네 어른들이 치르는 행사려니 생각했고, 청년기를 지나면서는 군부독재정권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국민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그리고 지방자치시대가 되어서는 단체장 치적을 홍보하기 위한 관제모임이라 여겨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끔 나주시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반상회보를 훑어보며 몇몇 유익한 정보가 눈에 띄면 기사자료로 쓰면서 이런 정보를 시민들이 얼마나 보고 활용할까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IT강국으로 전 세계를 주름잡는 대한민국 사회가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보화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소외계층과 어르신들에게는 시기각각 바뀌는 복지시책과 지역정보를 알려줄 창구가 필요한 마당이다.
반상회의 역사를 살펴봤다. 브리태니커 사전에서는 한국 시민조직, 국민조직의 최하부단위인 반(班) 구성원들의 월례회라고 정의했다. 행정상의 공시사항을 전달하고 주민의 건의사항을 반영하며, 가까운 이웃끼리 서로 돕는 인보상조(隣保相助) 정신의 함양 등을 위해 조직된 모임이라는 것.
반상회는 1917년 일본이 한국 국민의 통치수단으로 이용한 '반' 조직이 시초가 됐다. 그 당시 주민의 통제와 전시동원체제로 이용되었고, 대체로 지배체제의 유지·강화를 위한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에 당연히 의식 있는 주민들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법’과 ‘시·군 통반설치조례’에 의해 전국적으로 조직돼 매달 25일이 전국적인 반상회날로 정해져 있는데, 25일이 휴일이나 공휴일이면 다음날 개최한다. 나주시는 이달부터 반상회 날짜를 25일로 못 박지 않고 30일까지 유연하게 운영한다.
우편함에 꽂아져있는 반회보를 펼쳐보았다. 혁신도시 신사옥 착공소식이 1면을 장식하고 있다. 6·25납북피해 신고, 나주시립도서관이 연말까지 휴관한다는 소식, 2012년 농어촌진흥기금 융자사업 안내, 그리고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유통 및 신고접수 안내 소식도 상세하게 나와 있다.
우려했던 단체장 치적홍보와 주민계도 소식은 전체 12면 중 극히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반상회보를 다시 보게 됐다.
사실 반상회의 깊은 뿌리는 향약이나 두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주민들이 모여 마을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출발점.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폐쇄적인 생활습관이나 잦은 감정 대립, ‘그 나물에 그 반찬’이라는 인식으로 전락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거부감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아파트단지에서는 ‘분리수거 불참 1만 원’ ‘반상회 불참 3천 원’처럼 벌금을 매겨 반상회를 이끌어간다고 하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다.
하지만, 문만 닫으면 별개의 섬이 되고 마는 요즘 같은 시대에 홀로 사는 노인과 장애인 가구, 소년소녀가장, 자식들이 있다고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해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노인가정 등이 늘고 있는 이 시대에 반상회가 우리 사회 취약계층의 안부를 묻고, 시민사회의 여론은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소통의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면 의미있는 시민조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우리 동네 반상회,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한번 참석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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