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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김진수의 들꽃이야기⑧ 인동덩굴(金銀花)

by 호호^.^아줌마 2011. 12. 6.

 

김진수의 들꽃이야기⑧

 

딸 같은 꽃 아배 같은 덩굴…인동덩굴(金銀花)


학명 : Lonicera japonica Thunb

속씨식물 쌍떡잎식물강 꼭두서니목 인동과

 

                         김수철 '꽃의 동화'

 

“행운이란 인연의 대지에 피어나는 꽃이다.”

인동덩굴이야 세상에 흔하건만 이 꽃을 만난 내 인연은 굳이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해의 갈꽃 섬 노화도에서다. 그러니까 그 행운에 꽂히기 위해 나는 일찍이 없던 ‘섬마을선생님’의 배를 탔으며, 남모를 고독을 씹어 부두에 내리고, 무람없이 부딪는 갯바위마다 노을 진 서쪽하늘로 서있었다.


그런 자의 어스름에 인동덩굴 무수한 흰꽃들이 달빛처럼 날아온 것이다. 인연의 대지에서 ‘꽃을 든 남자’로 돌려세운 행운의 솟대. 나를 최초로 ‘꽃마을’에 들인 벅수가 바로「인동덩굴」이었던 것.


모든 것을 잃어버린 언덕이라든가, 팔을 꺾는 고통의 벼랑이라든가, 사람이 무춤 외롭다보면 별의별 게 다 가슴으로 파고든다. 휘파람새 아래서 얼어붙었던 입술이 열리고, 낮은 꿀풀 곁에서 잃어버린 벗들의 음성도 듣는다.

 

◇  ‘희생적인 사랑(꽃)’, ‘아버지의 사랑(덩굴)’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 인동덩굴


마침 갈꽃 흔들리는 가을언덕에 앉아 겨울은 더 이상 인동초만의 겨울이 아님도 배워냈다. ‘인동(忍冬)’은 비록 몸은 허하고 한없이 고달플지라도 장차 어떠한 겨울도 이겨낼 수 있다는 나와 우리 아배들의 내면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인동덩굴은 이름도 쓰임도 다양하다. 길게 혀를 내민 수술이 할아버지의 수염 같아 노옹수(老翁鬚)라 하였으며, 잎을 다 거두지 않은 채 겨울을 살아 ‘겨우살이덩굴’, 흰꽃과 노랑꽃이 나란히 피어 금은화(金銀花:흰색에서 차차 노랑색으로 변한다), 흰 꽃이 해오라기를 닮아 ‘노사등(鷺?藤)’, 귀신이 들려 몸에 한열(寒熱)이 나고 정신이 몹시 어지러운 오시병(五尸病)도 고친다하여 얻은 ‘통령초(通靈草)’ 이름까지 스무 가지도 넘는다.


인동덩굴의 성미는 달고 쓰고 차다. 심경과 폐경에 작용하여 열을 내리고 12경맥을 순조롭게 하여 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 항염증 반응이 좋아 유행성 감기나 편도선염, 위궤양, 대장염, 관절염, 신장염, 피부병에 이르기까지 효능이 좋다. 「방약합편」의 각종 암 처방전에도 ‘금은화(꽃만 따로 말린 것)’가 자주 쓰이는 것을 보았다.


꽃말도 참 많은데 그 중 ‘꽃’은 ‘희생적인 사랑’으로, ‘덩굴’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린 꽃말을 우선으로 꼽는다. 이는 중국의 안탕산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임동(任冬)이라는 약초 노인과 그의 두 딸 금화와 은화에 얽힌 설화의 이미지와도 오묘하게 화통한다.


괴질이 도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약초를 캐러 간 임동노인이 험한 산중에서 돌아오지 않자 그의 쌍둥이 딸 금화(金花)와 은화(銀花)가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그런데 두 딸이 지나는 발자국마다 푸른 덩굴이 자라고 금꽃 은꽃이 다투어 피는지라 마을 사람들이 이 풀을 기이히 여겨 달여 먹고 괴질을 다 낫는다.

 

훗날 이 식물을 약초노인의 이름을 따서 ‘인동(忍冬:반상록덩굴성관목)’이라 하였고, 딸의 이름을 따라 ‘금은화(金銀花)’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처럼.

 

인동열매


‘인연’의 이름으로 다가온 행운의 꽃, 인동덩굴! 임동노인처럼 오늘날 약초꾼을 자임한 내 꽃스승이자, 딸 같은 가족과 아배 같은 세상이 만나 드맑게 흐드러지고 싶은 생의 길라잡이나무다. 인동덩굴은 만 가지 인연의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새떼들처럼 오늘도 어느 솟대에 앉을까 내 앞을 두리번거린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나주뉴스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