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이야기⑥
춤추는 초가을 햇살의 요정…물매화
학명 : Parnassia palustris L.
속씨식물문 쌍떡잎식물강 범의귀과 물매화속
꽃잎이 눈송이처럼 희어 ‘결백’이겠다. 꼿꼿한 외줄기를 보면 필시 ‘지조’이고, 천상의 기품으로 보아 분명 ‘고결’이겠다. 그러니 꽃 다 지고 나서 밀려오는 ‘아쉬움’인들 꽃말이 아니 되겠는가!
누가 이 작은 풀꽃에 꽃말의 마법을 걸어놓았을까. 가을꽃의 귀족, 왕관을 닮은 꽃, 치명적인 아름다움, 진주의 꿈, 숲속의 요정, 청초한 외로움... 이런 수사가 탐화가들의 입가에서 끊이지 않는다. 물가에 한 송이 매화를 닮은 초본, 물매화다.
물거울 속 제 모습을 사랑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처럼,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백조의 호수’의 무희(舞姬)들처럼, 호반의 물매화는 초가을 어린 햇살을 껴안고 말쑥한 그만의 춤을 춘다.
커다란 연꽃이나 화려한 장미, 향기로운 국화나 희귀한 난초 앞에서 작은, 하얀, 한 줄기의, 한 잎사귀의, 한 꽃송이의 ‘풀의 원형’으로 깨어나 마치도 “모든 풀꽃들의 형색은 물매화로부터 꿈꾼다” 이렇게 노래하는 듯하다.
물매화는 맑은 석회암지대를 지나 새로 물길이 난 초원이나 도랑가 양지바른 점질의 토양에서 요정처럼 피어난다.
물매화가 세간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조금 더 살피기 위해 필자가 세 장의 ‘세밀화’를 그려보았다.
첫 그림은, ‘옴친 꽃’일 때의 미감이다. 물매화가 제법 ‘인체’에 어필하는 기호(記號)를 갖춘 시기이다. 까치발을 세운 ‘노루다리’ 위로 발레리나의 치마가 열리고 그 배꼽 위를 꼴깍 삼키는 높이로 동그란 얼굴이 하늘을 향해 길게 목을 늘인다. 이 순간 관객들의 얼굴에도 무대의 조명이 비춰진다.
둘째 그림은, 꽃이 활짝 피어서 은쟁반이 되었을 때이다.
암술 하나를 중앙에 두고 다섯 꽃받침과 다섯 꽃잎과 다섯 수술과 다섯 헛수술(꽃밥이 발달하지 않고 퇴화한 것)이 서로 에워싸고 있다. 꽃잎 위에 새겨진 꽃주름까지 더하여 그 심메트리(symmetry)한 구조는 세정(世情)을 떠나 산천을 헤매는 초름한 가슴들을 싱싱하게 다잡아준다.
셋째 그림에서, 꽃 날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때이다.
암술은 그대로인데 수술은 하얀 수술대만 남았고, 헛수술은 처음처럼 가느다란 촉수 끝에 이슬 같은 꿀샘이 알알이 맺힌 (흔히 ‘왕관’을 닮았다고 하는)형상.
곤충을 꾀기 위한 꿀샘이 어찌나 영롱한지 한번 홀리면 사람도 금세 이 구슬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어떠한가 물매화의 이 비타협적 존재형이!
여름에서 나와 가을까지 피우는 생명력과 줄기이자 꽃대인 가녀린 몸으로 거대 인간을 굽히는 마력과, 한갓진 단아함으로 저자의 번다함을 성찰하는 명상에 이르러 필자는 화신(花神:꽃을 관장하는 신)의 칭호를 주어 그에게 반한다.
물매화는 세풍에 흔들리지 않는 천상의 회오리를 몸에 새겼다. 우리도 가끔은 내 몸 안에 고인 하늘의 웅덩이를 경이롭게 굽어볼 때가 있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 <나주뉴스 기고글>
새로 물길이 난 초원이나
도랑가 양지바른 점질의 토양에서
요정처럼 피어나는 꽃
물매화
체코소년소녀합창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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