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2004)
개봉 2004-03-26
감독 : 윤인호(1963. 5. 30生)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영화학과 졸업
출연 : 김석(백여민 역), 이세영(장우림 역), 나아현(오금복 역), 김명재(신기종 역), 정선경 (여민 모 역)
서태화-아홉살 인생
어른 뺨치는… 아홉살 인생!
아홉 살, 산동네 초등학교 3학년인 여민은 챙길 것이 너무 많은 속 깊은 사나이다. 친구들을 괴롭히는 쌈짱 ‘검은 제비’를 제압하여 동네의 평화를 지키는가 하면, 누나와 외롭게 살아가는 기종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눈을 다친 어머니의 색안경을 구입하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도 한다.
가난한 부모의 착하고 듬직한 아들이자, 학교에선 주먹도 세고 의리도 넘치는 멋진 친구. 받아쓰기도 척척 해내고, 구구단도 술술 외며 세상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느끼던 여민의 아홉 살 시절. 그에게 모든 것은 명료해보였다.
아홉살, 이 나이에도 지키고 싶은 여자가 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새침도도한 소녀 장우림이 같은 반으로 전학오면서 여민의 평탄한 인생은 일순간 혼돈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묘한 설레임이 이 사나이를 흔들어 놓은 것. 동네 총각 팔봉이형에게 조언도 구해보지만 그는 자기 연애문제 해결하는데만 급급해한다.
결국, 편지를 통해 우림에게 사랑을 전하는 여민. 하지만 담임선생님 손에 들어간 이 편지는 만천하에 공개되고, 꼬이기 시작한 연애전선은 급기야 여민이 우림의 돈을 훔쳤다는 누명까지 쓰게 만든다.
여민이 도와주려 했던 주위 사람들의 사랑, 일 모두가 어긋나면서 여민의 아홉수 시련은 절정에 다다른다. 과연 일, 사랑, 우정, 가족...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여민이는 첫번째 아홉수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인가?
먼지 묻은 일기장을 펼치면
80년대와 90년대 대만영화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민주화가 찾아오자마자 자신들의 과거를 정리하고 재평가하는 그들의 부지런함이 존경스러웠고 한국영화계가 언제나 허우 샤오시엔이나 양덕창 같은 영화작가들을 갖게 될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의 첫 십 년을 보내며 나는 한국영화계가 우리들의 과거를 종종 돌아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그 시선이 늘 바람직하지만은 않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아홉살 인생]은 우리 세대의 유년기였던 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반을 무대로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아홉 살 내기들은 우리들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도 유난히 가난한 백여민(김석)은 한 쪽 눈이 성치 않은 어머니 때문인지 조숙하고 어른스럽지만 친구들인 신기종(김명재)과 오금복(나아현)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아직은 철없는 나이이다.
하지만, 그가 다니는 작은 시골학교에 예쁘장한 전학생 장우림(이세영)이 나타나면서 그의 평온했던 마음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더구나 한 번 꼬이기 시작한 그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남다른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고 풀어놓는 윤인호 감독<오른쪽 사진>의 찬찬함은 확실히 이 영화의 매력이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꼼꼼함과 섬세함은 말할 것도 없다. (비록 도시의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나도 학교에서 토끼를 길렀던 기억이 있다.)
더구나 이 영화의 아름다운 화면은 급격한 공업화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특별한 악역이 없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들 중의 하나이다. 문제소년들의 뒤에는 문제부모가 있고, 문제부모 뒤에는 문제를 안은 사회가 기다리고 있다.
정선경(여민모)이 배역진 중 가장 알려진 이름이긴 하지만, 영화광이라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탄탄한 연기력의 조연배우들은 성실하고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이 영화의 성패는 성인배우들이 아닌 아역배우들에게 달려있다. 깜찍하도록 귀엽지만 평범한 얼굴의 김석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 열 두 살 소년은(영화를 찍을 때는 열 한 살이었으리라.) ‘정말 백여민 같은 애가 있다면 꼭 이렇게 생기고 이렇게 행동했겠지.’라고 생각게 할 만큼 자신의 배역에 동화된 모습을 보인다. 교실과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아이들의 소박하고 어리숙한 표정은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고, 특히 어딘가 문근영을 연상시키는 나아현의 야무진 연기는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덕분에 그녀의 라이벌(?)인 이세영이 위태롭게 보일 정도로.
[고독이 몸부림칠 때]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는 아름다움(이런 말을 어린아이에게 써도 된다면)과 품위, 그리고 영리함을 보여줬던 이세영이 이 영화에서는 다분히 전형적인 ‘얄미운 서울아이’ 역을 맡아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보여주지 못 한 듯해 아쉽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닳고 닳은 장우림은 영화의 중반까지 온갖 변덕을 부리며 밉살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 부분이 되어서야 자신의 약한 부분을 솔직하게 내보이며 관객과 등장인물들의 호감을 얻게 된다. 이 반전이 너무 늦고, 너무 갑작스러우며, 지나치게 눈물로 뒤범벅이라는 점은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약점들 중의 하나이다.
서구적인 것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속물’적인 여성과 그녀를 동경하는 훨씬 낮은 계급의 남성의 사랑이야기 둘이 교차하는 것은 흥미롭다. 피아노선생님-외계인시인 사이의 일방적인 감정의 흐름이 비극으로 끝난 것에 비해 백여민-장우림의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차원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자신의 뿌리도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가난한 이웃들과 같은 자리에 자리잡고 있음을 인정하는 장우림이 Paul Anka의 [Diana]를 부르고 백여민은 그에 답해 [선구자]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다. 피아노와 시 혹은 철학으로 대표되는 어른세대의 고상한 세계와 좀 더 대중적인 어린아이들의 세계 중에서 결국 화해의 가능성은 새로운 세대에서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아홉살 인생]은 현재 아홉 살 또래의 어린아이들보다는 이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아홉 살을 보냈던 어른들에게 좀 더 많은 걸 느끼게 해 줄 영화이다. 이 영화는 빠른 속도의 변화를 경험하며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냈던 우리 세대가 삶이라는 미로를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를 기억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긍정적이지만 애매한 결말은 단순히 과거를 향수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의 모든 비극과 어리석음과 폭력은 결코 미화되거나 감상적인 권선징악적인 결말 속에 흐물거리며 녹아내리지도 않는다.
비록, 요란하고 거대한 영화는 아니라 하더라도 [아홉 살 인생]은 우리 세대가 오랫동안 서랍 속에 넣어둔 채 잊고 있었던 일기장의 몇 페이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충만했던 시절은 어쩌면 그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글 : 이소연 Daum 영화평론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닳고 닳은 장우림은 영화의 중반까지
온갖 변덕을 부리며 밉살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 부분이 되어서야 자신의 약한 부분을 솔직하게 내보이며
관객과 등장인물들의 호감을 얻게 된다.
이 반전이 너무 늦고, 너무 갑작스러우며,
지나치게 눈물로 뒤범벅이라는 점은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약점들 중의 하나이다.
아홉살 인생
노영심 작사·작곡
서태화 노래
그땐 알고 싶어 몸살 앓던 날들이
하얗게 별처럼 그만 꽃이 되었네
가슴에 우거진 내 인생 숲이
너와 함께 걷고 싶어라 아홉살 사랑
너와 함께 가고 싶어라 아홉살 꿈들
다시 갈 수 없어 눈물짓던 시간들
아직도 그 곳에 내가 우뚝 서 있네
머물다 사라진 지난 날의
너와 함께 품고 싶어라 아홉살 사랑
너와 함께 가고 싶어라 아홉살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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