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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연극

<부러진 화살> 지성인 유지나& 김민환은 어떻게 봤나

by 호호^.^아줌마 2012. 2. 3.

<부러진 화살>, 최종병기 법정을 찾아서
  글쓴이 : 유지나     날짜 : 2012-01-25 08:31    

스크린 법정을 펼쳐 낸 <부러진 화살>이 설 연휴에 개봉돼 열기를 뿜고 있다. 2007년 터진 석궁사건에서 ‘활’의 의도적 발사여부가 법적 논쟁의 ‘최종병기’였을 것이다. 그 앙금은 르포 소설을 낳았고, 그에 기초한 르포성 법정영화 <부러진 화살>을 생산해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노라면 법정영화의 묘미를 가슴 저리도록 느끼게 된다. 

정지영 감독이 오랜 부재를 딛고 13년 만에 연출한 <부러진 화살>은 법정영화의 덕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작품목록에서 대표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법정영화는 영화사 초기부터 존재해 온 강력한 장르이다.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1928)은 정교한 이미지가 빛나는 걸작으로 통한다. 한국영화사에도 <검사와 여선생>(1958, 윤대룡)이나 <법창을 울린 옥이>(1966, 임권택) 등이 존재한다.  

설연휴, 스크린-법정의 진실과 폭소

정의로운 법과 공정함이란 가치를 성찰하게 만드는 스크린 법정은 관객-배심원과 함께 허구로써 진실의 법정을 짜나간다. 대중오락물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할리우드나 다른 나라에서도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살려내는 법정영화를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의 흑막을 고발하는 <JFK>, 법정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심층적으로 드러낸 이란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이렇듯 법정영화는 법집행의 사연을 중심에 놓고 드라마화하는 본질적 구조를 갖고 있다. 법정영화로서 <도가니> 역시 권력과 밀착한 복마전의 긴장감을 치열하게 보여줘 아픈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아픔은 정의로운 법집행을 바라는 에너지로 전환되어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가시나무 새’가 흘러나오면 비애감에 온몸이 저릿저릿해 온다.     

이어 등장한 <부러진 화살>은 법정영화 고유의 심각함과 아픔 속에서도 유쾌한 코믹성을 가미하고 있어 흥미롭다. 심각한 주제를 다소 무겁게 풀어내던 정지영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변한 것이다. 영화 대사처럼 ‘재판이 아닌 개판’이 되버린 상황에서 법지식으로 무장한 저항은 통쾌한 유쾌함을 전파해준다. 그런 대목에선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하는데, 법대로 전개되지 않는 법정의 권위가 유쾌하게 폭로되기 때문이리라. 이런 예외적 성과는 매력적인 캐릭터 연출과 관찰자적 시점에서 나온다. 채플린 말처럼 비극적 인생사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법정영화의 새 지평을 열기에 충분해

수학자답게 원칙과 상식에 근거한 법을 아름답다고 믿는 피고인 김 교수, 이에 반해 법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법적 정의를 수행하느라 상처투성이가 되버린 박 변호사, 이 두 사람 앞에서 판사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곤혹스러움을 찡그린 표정으로 감춘 채 안간힘을 쓴다. 수학자다운 집중력으로 관련법을 독학한 김 교수는 지행합일 원칙주의자의 본때를 증명해낸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보수 지식인의 덕목은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대학 공책에 가득 적은 법조항을 외우고 읽어가며 재판장의 위선을 고발한다. 대한민국에는 (법대로 집행하는) 전문가가 없으며, 오직 사기꾼만이 전문가라는 일갈! 이런 대목은 일반적인 법정영화에선 맛보기 힘든 재미, 즉 판결을 넘어 선 전복적 쾌감을 선사해준다. 그런 쾌감은 ‘법대로’ 집행되는 또 다른 법정을 꿈꾸게 만드는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4년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김 교수는 얼차려 시키는 간수 이름을 손바닥에 적으며 저항권을 행사한다. 그리곤 우리에게 미소를 날린다. 해피엔딩을 넘어선 유쾌한 도발이다.
       
영화는 허구이며 현실이 아니다, 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현실의 산물이며, 드라마 소재로 현실을 우려 먹고 사는 예술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영화보기의 의미는 삶의 한 순간을 인문예술학적 행위로 맛보는 데서 나온다. 즐거운 영화보기가 가능한 곳, 의미 충만하고 사회치유력까지 곁들인 <부러진 화살>의 ‘스크린-법정’, 바로 그 곳에 마련된 가상 배심원 자리에 앉아 보시길 권한다.

팁: 연기자로서 안성기의 재발견. 박원상, 문성근, 김지호 등 연기자들의 생생한 리얼리티 연기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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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2005 동국대 명강의상>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 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부러진 화살>과 사실
  글쓴이 : 김민환     날짜 : 2012-02-07 03:41    

영화감독 정지영이 단돈 5억 원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느낌이 씁쓰레했다. <하얀 전쟁>과 <남부군>이라는 문제작을 남긴 노장에게 충분한 제작비를 대기 어려운 영화계 사정도 안타까웠지만, 천하의 정 감독이 그런 적은 돈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영화를 만들고 표표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부러진 화살>은 관객 2백만을 돌파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영화 자체가 수작(秀作)이다. 아마추어이긴 하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지영 영화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정 감독은 버릇처럼 도입부와 종결부에 군더더기를 곁들여 스스로 맛을 떨어트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 <부러진 화살>은 전혀 달랐다. 이 영화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법정영화를 긴박감 있고 사실적으로 연출해냈다.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법정영화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는 법정영화라는 장르와 관계없이 정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 그는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성어를 실감나게 만들었다.

영화 속 팩트 논란, 허구를 사실로 느끼게 해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사실감이다. 영화란 본질적으로 허구인데 관객은 너 나 없이 이 영화를 사실로 느낀다. 감독이나 제작진이 이 영화의 95% 이상이 사실이라고 주장해 사실감을 한 겹 더 두텁게 만들었다. 허구를 사실로 느끼게 한다면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말 이외에 덧붙일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사실감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영화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에 MBC-TV의 <백분토론>에 참여한 두 법조인의 태도에서 그런 시각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변호사 두 분은 이 영화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분은 더 나아가 이 영화가 악의적으로 법조인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핏대를 세웠다. 법조인의 눈으로는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많은 관객은 왜 모든 것이 사실인 것처럼 느낄까?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이유 말고도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법조인이 상정하는 사실과 일반인이 생각하는 사실은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법조인은 법리라는 전문적인 잣대로 사안을 평가한다. 법리로 치면 <부러진 화살>은 거짓투성이일지 모른다. 피고가 자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혈흔이 판사의 것인지 아닌지를 가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물음에 법 전문가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피고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석궁을 들었다면 법리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감독이 피고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자체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러진 화살이 던진 메시지, 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져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 그런 법리적 사실은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내용(content)보다는 맥락(context)에 주목한다. 영화에 나오는 교수는 입시문제가 틀린 사실을 지적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났다. 어디서 한 번 잘리면 어디서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우리 상황을 감안하면 해임은 지나친 조치였다. 그러나 법원은 법리에 따라 그의 복직을 막았다. 일반인은 밥줄을 끊어놓은 판사를 석궁으로 응징하고자 한 교수의 감정에 은근히 공감한다. 석궁을 쏘아 그 정도 상처를 냈다고 해서 교수에게 중죄를 내리도록 분위기를 몰아 간 법원당국의 처사는 일반인 정서로는 지나치다. 교수에게 그 흔한 사면조차 없었다면 그것도 냉혹하다.
 
법리에 충실하고자 하는 법조인을 욕해서는 안된다. 법조인이 법리마저 팽개친다면 그건 큰일이다. 그렇다고 법리로만 사실 여부를 가리려는 태도 역시 온전치 않다. 일반인은 법리에 대해 유념하고, 법조인은 일반인의 정서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접근할 때 우리는 사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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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환
· 다산연구소 대표
· 고려대 명예교수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한국언론사>
          <민주주의와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