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그리고 40인의 상경단
“당신 뭐 하는 사람이요?”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요?”
“나, 5·18민주유공자회 나주회장이요. 우리가 정부청사 점거하러 왔소? 우리는 장관에게 지역민들의 서명을 전하러 왔을 뿐이오.”
그래도 통하지 않았다. 한 무리의 전경들이 정문을 가로 막고 인(人)의 장막을 친 뒤 비상태세를 갖췄다.
신원을 밝히지도 않고, 신분증도 패용하지도 않은 일단의 무리들이 40인의 KTX 상경단의 앞길을 가로 막은 채 40여분 동안 승강이를 벌이게 했다.
“우리는 호남고속철도 KTX가 나주역을 통과해야 한다는 전남도민 13만8천5백85명의 서명부를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전달하기 위해 왔다”는 임성훈 시장의 설명도 먹혀들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청사에 대한민국 국민이, 그리고 공무원증을 패용한 공무원이 들어간다는데 이를 가로막는 참담한 현실을 겪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소통부재 현장을 고스란히 체험했다.
분위기가 점점 더 험악해지자 일행 중 네 명만 통과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배 박스 3개 분량의 서명용지를 시장, 의장, 시민대표가 들고 들어간단 말인가?
겨우 12명으로 협상을 마치고 국토해양부 건물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거기서 배기운 의원과 재경·재인천 향우회장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이 출타중이라며 비서관과 실무과장이 일행을 맞았다. 에어컨도 가동되지 않은 후텁지근한 회의실에서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실무자로부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호남고속철도 추진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기존선로를 활용한 나주역 경유는 애초부터 정부의 기본입장이었으며, 지금까지지 변동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인 셈이다.
그러면서 그 관계자가 하는 말, “언론보도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십쇼. 국가계획이 그런 식으로 결정되는 거 아닙니다.”
한마디로 전라남도의 언론플레이에 좌지우지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쐐기를 박듯 배기운 의원이 “앞으로 진행되는 호남고속철도 사업에는 나주역 경유를 반드시 명시하라”고 주문했다.
서명부와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종이학 천 마리를 건네주고 나오며 출입을 저지하던 사람들에게 임성훈 시장이 "수고하셨습니다!"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사복경찰 한 사람, 한 손은 주머니에 쑤셔 넣은 상태에서 짝다리를 짚고 건성으로 손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상경단이 알아낸 바로는 그 인사 과천경찰서 정보과 직원으로 파악됐다. 그런 사람이 국가의 녹을 먹고 있으니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국회에서마저도 상경단을 태운 버스는 정문을 통과하는데 30여분을 허비해야 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직접 나서서 지역구 민원인으로 소개를 하는데도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국회의원이 경호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친 뒤에야 진입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전라도 나주에서 올라온 40인의 상경단이 큰일을 낼 사람들로 보였던 모양이다.
이어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최고위원과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도 서명부를 전달하며 호남고속철도사업이 정치적 논리가 아닌, 국가의 중요사업으로서 수도권과 지방을 잇는 혈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부분을 거듭 강조했다.
여당과 야당 대표 모두, 지역민들의 여론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렇게 일정을 마친 40인의 상경단은 밤 10시가 다 돼서야 나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참으로 긴박하고 험난했던 12시간의 여로였다.
그렇다면 이제 나주역에 호남고속철도 기적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임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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