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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나주시 봉황면 수양마을 크리스마스반상회

by 호호^.^아줌마 2013. 1. 2.

송년르포…연말연시 희망의 불을 지피는 수양마을 사람들

 

◇ 나주시 봉황면 각동2구 수양마을회관에서 나주시 도시재생과 정선영 팀장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겸한 올해 마지막 반상회를 갖고 있다.

 

 

“우리 같은 촌사람들 누가 알아주겄어? 정 여사가 최고여!”

 

주민들 찾아가는 틈새행정…나주시 봉황면 수양마을 크리스마스반상회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낭만도 잠깐,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지난 25일 오후 나주시 봉황면 각동2구 수양마을회관에서는 특별한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부녀회원 여남은 명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케이크에 불이 지펴지고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고 곱게 포장한 선물보따리가 풀어헤쳐졌다. 알록달록 색깔도 고운 수면양말 두 켤레를 흔들면서 아주머니들이 아이들 마냥 좋아라 박수를 친다.

 

나주시가 지난해 9월부터 반상회를 부활해 마을별로 실시하면서 이 마을을 담당하게 된 나주시 도시재생과 정선영 도시행정팀장이 크리스마스와 겹친 이날 조금은 색다른 반상회를 준비한 것.

 

정선영 팀장이 이달 반회보를 펼쳐들고 설명에 들어간다.

 

“적십자회비는 형편껏 내시고요, 정치자금기탁제도는 그냥 넘어갑시다. 아, 2기분 자동차세 이거는 연말까지 꼭 내야겠네요. 기한 지나서 내면 연체로 나온다 안 하요. 글고 어르신들, 농한기때 동네 들어와서 물건 파는 사람들 조심하랑께. 살살 꼬셔도 넘어가면 절대 안 돼요잉? 만약 뭔 일 생기면 즉각 저한테 전화 하고요. 글고 이건 진짜 중요하네. 요새 감기 걸리면 큰일나니까 손 자주 씻고 꼭 병원 가봐야 쓰요잉...”

 

설명이 이어지는 도중에도 동네아짐들의 말참견은 계속 된다.

 

“아, 그걸 누가 모르간디? 다 안께 걱정 말어.”

 

“그랑께. 작년 그러께 해남댁이 약장시들한테 관절약인가 뭔가를 샀다가 물르느라고 욕 봤다드만.”

 

“예전에는 소청(소축사) 지으면 보조를 해주던디 지금도 해주나 모르겄어?”

 

이렇게 시작된 얘기는 부녀회장네 진돗개가 왜 새로 산 개집에 안 들어가고 눈보라 속에서 떨고 있냐, 올해는 배추농사가 잘 돼 돈좀 만진 사람들이 많다더라, 겨울에는 농사가 없어 쉬는데 우리도 곰처럼 잠이나 자면 좋겠다, 곰은 몇 달이나 잠을 잘까...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아짐들의 수다에 홍정숙(64)부녀회장이 화제를 돌린다.

 

“농민신문에 보니까 다섯 집 이상 모타서 태양열주택을 지으면 정부에서 보조를 해준다는디 그걸 어디다 알아봐야 쓰까? 요새 전기세가 어찌나 많이 나오던지 배겨낼 재간이 없다니까...”

 

정 팀장이 경제교통과에 자세히 알아봐서 연락을 해주겠다며 꼼꼼히 메모를 하며 “이런 일은 업자를 잘 만나야 한다”며 훈수를 둔다.

 

그러자 올해 구순의 문순암 할머니 왈 “정부하고 군인은 믿을 것이 못 되니께 집이들이 잘 알아봐서 해야제. 요샌 딸도 못 믿어라우. 놈(남)의 식구잖여.”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그러자 다시 화제는 며느리열전으로 옮겨 간다. 누구네 며느리는 배추농사를 지어서 얼마를 벌었네, 그래도 며느리는 우리 핏줄을 낳아서 키워주지만 딸들은 남의 집 핏줄 키우잖냐...

 

이런 저런 말끝에 마을부녀회장을 지낸 홍옥현(67)씨는 “우리 시아버지가 육이오 때 경찰들한테 동네 뒷산으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해서 난 시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며느리 노릇도 못하고 살아봤소. 식구들이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살았제.”라며 가슴 아픈 가족사를 끄집어낸다.

 

그러자 동변상련의 문순암(90)할머니는 “그때 동네 사람들 많이 죽었제. 지서 순경들이 뭔 빨갱이를 잡아낸다면서 사람들을 만호정 앞으로 모이라 해놓고 뒷산으로 끌고간께 뭔 훈련이나 시킬랑가보다고 생각했제, 그렇게 멀쩡한 사람들을 몰살시킬 줄을 몰랐제.”

 

우리 현대사의 뼈아픈 사건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 바로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 돈박굴제 뒷산 양민학살사건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철야마을 뒷산 양민학살사건은 빨치산과 공비 색출을 이유로 나주경찰서 봉황지서에 의해 무고한 주민 30여명이 희생된 현대사의 뼈아픈 사건이다.

 

1951년 2월 25일경 나주경찰서 봉황지서에 “철야마을에 빨치산 활동을 도와주는 몇몇 사람들이 있으며, 그 중에 몇 명은 빨치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주민의 밀고가 접수되자 경찰은 26일 이른 새벽 4시경 마을 주민 200여명을 만호정 앞에 집결시켰던 것.

 

밀고 된 80여명의 주민은 마을일을 보는 이장과 반장 등이었으며 마을별로는 철천3구 30명, 동태 25명, 유촌 15명, 수각 10명으로 빨치산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밀고 된 점을 감안해 볼 때 모략에 의한 참극이었던 것.

 

“경제가 어렵다, 농촌이 어렵다 해도 속 알아주는 사람 있응께 사는 것이제!”

오지마을 구석구석 찾아가는 반상회 주민과 행정의 소통과 위민행정의 창구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흐르는 사이 하루 품일을 나갔다던 정순규 이장이 들어선다. 늘 농삿일에 쫓겨 ‘비오는 날’ 반상회를 하자던 정순규 이장은 이날도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과수원 절주작업에 나갔다가 올해 마지막 반상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늦으막이 참석했던 것.

 

정순규 이장은 “크리스마스라 다들 쉬는 날인데 오셨소?”라고 인사를 건네자 정 팀장은 “크리스마스니까 왔지라우”라며 받는다.

 

정 이장은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 농촌이 어렵다 해도 이렇게 마을까지 찾아와서 주민들 속 알아주는 정 여사님 같은 공무원이 계신께 사요!”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화제는 다시 태풍 ‘볼라벤’과 ‘덴빈’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배농사로 옮겨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다 속에 두 시간이 훌쩍 지나며 정선영 팀장이 오늘 반상회가 마지막이라며 내년부터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산포면으로 가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가 시장님한테 잘 말할 테니 우리 마을에 계속 와 달라”고 짐짓 부여잡는 잔정까지 보이는 아짐들. 정 팀장은 “반상회는 산포에서 하고 아짐들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올테니까 돼지고기 삶아놓고 부르쇼잉” 너스레를 떤다.

 

구시대의 산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반상회. 신문과 방송,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보화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행정의 말단 농촌마을 주민들에게는 시시각각 바뀌는 복지시책과 지역정보를 알려줄 창구가 필요하다.

 

행정이 말단의 마을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오지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행정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역할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과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나누는 정 팀장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공무원의 희망을 엿본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 수양마을 사람들은 봄에 수확할 완두콩을 지금 이 한겨울에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반상회가 아니었으면 들을 수 없었던 정보였다.

 

 

 

 

 

 

 

 

구시대의 산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반상회.

신문과 방송,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보화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행정의 말단 농촌마을 주민들에게는

시시각각 바뀌는 복지시책과 지역정보를 알려줄 창구가 필요하다.

 

행정이 말단의 마을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오지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행정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역할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