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38>
거대한 뿌리로 용트림하며 생장하는 대표 여름약초…칡(葛根)
◇ 칡은 그 땅의 기운을 뿜어 올리는 억센 줄기와 그 하늘의 기운을 섞어 쏟아 내리는 거대한 뿌리곳간의 영양이 다 약발이다.
산기슭에서 만나는 가장 흔한 식물 가운데 하나가 ‘칡’이다. 흔하다기보다 지배적이다.
한 해에 물경 18미터를 뻗으니 볕이 트이고 잡목이 우거진 경사나 길가, 구릉지라면 어디서나 천막을 치는 싸움터의 병영 같다.
지하 십 수 미터까지 말을 달리는 우악스러운 심근성(深根性: 뿌리가 깊게 뻗는 성질)에, 질긴 근육질의 만경(蔓莖: 목본성 덩굴)을 치켜든 깃발의 서슬이 과시 제왕의 체모다.
8월에 잎새 뒤에 감춘 자줏빛 수상화서(穗狀花序: 한 개의 긴 꽃대 둘레에 여러 개의 꽃이 이삭 모양으로 피는 꽃차례) 또한 어린 공주의 핑크빛 이미지는 아니다. 색으로 보면 도도한 왕실 여인들의 입술연지에 가깝고, 형으로 보면 외줄기 위에서 오금이 저리게 줄타기를 잘하는 남사당패의 꼭두쇠 같기도 하다.
『칡』을 「갈(葛)」이라 한다.‘葛’에 대한 옛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질을(叱乙)’이 츩 → 칡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한방에서 꽃은 갈화, 뿌리는 갈근, 잎은 갈엽, 덩굴은 갈만이라 하여 모두 약으로 쓴다.
초여름에 길섶이나 나무 위로 뱀처럼 꿈틀거리는 털복숭이 칡 순은 갈용(葛茸)이라 하는데, 이는 조직이 연하고 털이 고루 덮여 있는 수컷 사슴의 어린 뿔을 닮았다. 그 효능 또한 녹용(鹿茸)에 버금간다고들 믿고 즐겨 부른다.
줄기의 섬유질로는 베옷(葛布)을 입었고, 노끈이나 광주리, 종이를 만들었으며, 집도 짓고 뗏목도 엮었다. 칡 녹말로는 냉면국수를 뽑고 더운 물에 꽃을 띄워 차를 마셨다.
요새야 칡뿌리 따위에 곡괭이를 들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 우리 때만 해도 가난했고, 한겨울에 패를 지어 칡 캐러 다니던 것이 조무래기들의 연중행사 아니었던가. 너나없이 학교 앞에서 1원에 서너 조각 받은 물칡, 나무칡, 밥칡들을 따지며 귀갓길의 입술이 새까매졌던, 그 초름한 주전부리를 어찌 잊을까.
『칡』은 그럼에도 약이 제일이다. 그 땅의 기운을 뿜어 올리는 억센 줄기와 그 하늘의 기운을 섞어 쏟아 내리는 거대한 뿌리곳간의 영양이 다 약발이다. 낫으로 베어도 아랫도리에서 새순을 내이고 악천후와 숲 그늘과 박토에도 자유자재인 이 씩씩한 나무의 즙은 여름내 달궈진 내 간의 열을 식히고 내 마른 심장을 적셔서 타는 갈증을 풀어준다.
그러므로 ‘천화분(하눌타리 뿌리)’과 더불어 당뇨병에도 쓰는 이 칡에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풍부하여 갱년기 여성의 불면증이나 우울증을 개선한다. 카테킨(Catechin)이라는 성분은 숙취를 유발하는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고, 무기질과 탄수화물, 비타민C 등이 풍부하여 여드름이나 피부염을 낫게 한다.
콩과식물에 많은 다이제인(daidzein)이라는 성분은 골다공증을 예방하며, 혈액순환을 도와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을 낮춘다. 또한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은 체내의 유해한 중금속을 배출한다.
원래 ‘등(藤)’은 계요등, 배풍등, 백화등 하듯이 덩굴식물에 흔히 붙여 쓴다. 칡도 그래서 ‘갈등’이다. 우리가 일이 꼬일 때 흔히 쓰는 말에도 ‘갈등(葛藤)’이 있다.
칡(葛)과 등나무(藤)가 만나면 깊이 얽힌다는 뜻. 더구나 줄기가 오른돌이인 칡과 왼돌이인 등이 외나무기둥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서로 웬수처럼 붙들고 안다리 밭다리를 거는 꼴이 아니 되겠는가.
위로 기어오르는 길엔 갈등이 많다. 자연에서 등나무와 칡이 만날 일이 별로 없듯 세상사도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한여름에 칡넝쿨 아래서 턱을 괴는 공부이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전남타임스 기고글)
칡꽃
8월에 잎새 뒤에 감춘 자줏빛 수상화서
(穗狀花序: 한 개의 긴 꽃대 둘레에 여러 개의 꽃이 이삭 모양으로 피는 꽃차례)
또한 어린 공주의 핑크빛 이미지는 아니다.
색으로 보면 도도한 왕실 여인들의 입술연지에 가깝고,
형으로 보면 외줄기 위에서 오금이 저리게 줄타기를 잘하는 남사당패의 꼭두쇠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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