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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김진수의 들꽃에세이<39> 도라지(桔梗)

by 호호^.^아줌마 2013. 10. 2.

 

김진수의 들꽃에세이<39> 도라지(桔梗)

 

폐에 작용하여 담을 삭이는 귀하고 길한 뿌리…도라지(桔梗)

 

학명: Platycodon grandiflorum

쌍떡잎식물강 초롱꽃목 초롱꽃과 도라지속의 여러해살이풀

 

 

꽃에 대한 설화는 모두 슬프다. 지구별에서 보면 꽃이 먼저고 사람이 나중일 것 같은데, 일단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로 말문을 트면 이 차례는 오간데 없어진다. 착할수록 애절하고 아름다울수록 애틋한 인간 사이의 인연들이 꽃잎에 물들고 열매에 맺히고 뿌리 채 전설이 되기도 한다.

 

초가을 언덕 마다 흔들리는 도라지꽃에게도 쌉쌀한 옛 이야기가 서려있다.

 

옛날 도씨 집안의 외동딸‘라지’가 한 나무꾼 총각을 연모하였는데, 라지의 어여쁨에 반한 고을 원님에 붙들려가 견디다 못해 자결하고 말았단다. 사람들이 안타까워 총각이 사는 산골의 길가에 묻어주었겠고 그예 무덤가에서 예쁜 꽃이 피어났다니 모두들 이 꽃에 처녀의 이름자를 붙여 ‘도라지’라 불러주었다 한다. 고전의 춘향전처럼 아쉽게도 극적 반전이 없는 세드앤딩이다.

 

 

내가 만약 소년이라면

저 산도라지 흰꽃 같은 소녀를 만나고 싶다

내가 만약 소녀라면

저 산도라지 흰꽃 같은 소녀와 만나고 싶은 소년을 만나고 싶다

둘이서 손잡고 언덕에 올라

초가을 흰 구름과

깊어만 가는 저 쪽빛 하늘을

해종일 우러르고 싶다

- 졸시 「도라지꽃」

 

 

도라지의 흰 꽃은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백조처럼 무용을 잘하던 그 아이, 선미처럼 뽀얗다. 쪽빛 꽃은 그 애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맨 앞줄의 까까머리 소년일 따름이니 둘이서 손잡고 언덕에 올라 꿈결인 듯 먼 산에 흔들리고 싶었던 거다.

 

한껏 부풀다가 펑펑 터트리는 이미지(balloonflower: 꽃모양이 풍선 같아서 붙인 영명)는 역시 과년한 남녀 간의 스캔들이라기보다 말 못하여 답답한 소녀의 순정에 가깝다.

 

『도라지』의 어원은 ‘돍아지’에서 왔다. ‘돌밭에서 돋아난 풀’로 돌+아지가 변한바 전설과 달리 현실은, 척박한 땅에서도 함부로 죽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도라지의 생약명은 「길경(桔梗: 귀하고 길한 뿌리가 곧다.)」이다. 성미는 따뜻하고 맛은 달면서 쓰고 맵다. 폐에 작용하여 담을 삭이고 해열하며, 기침을 자주하여 상한 기관지(인후통), 편도선이 붓고 아플 때(편도선염) 좋으며, 몸이 붓거나(부종) 고름을 빼내는(배농) 효도 두드러진다. 주성분은 사포닌으로 항염, 부신피질호르몬분비촉진, 타액분비촉진 등의 약리작용을 나타낸다.

 

감기 들어 오슬오슬할 때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계피, 자소엽(차즈기), 갈근(칡뿌리), 생강, 총백(대파 흰 뿌리), 진피(귤껍질), 대추, 감초 등에 도라지를 넣어 달여 보라.

 

금세 몸이 풀리고 목도 부드러워질 것이다. 감기를 동의학에서는 상한(傷寒)이라고 하는데, 밖으로부터 오는 찬 기운에 상해서 생기는 병이다. 그러므로 열이 난다하여(인플루엔자 감기도 아닌데) 함부로 해열시켜서는 안 된다.

 

초기 감기엔 무엇보다 맵고 따뜻한 성질의 음식이나 약재로 굳어진 몸을 덥히고 가볍게 땀을 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열도 내리고 두통이나 몸살로 욱신거리던 자리도 말끔히 가신다.

 

성질이 더운 생강을 필두로 나머지 양도 비슷비슷하게(양이 적으면 적은 대로) 넣으면 된다. 우리가 반창고나 소독약, 연고제, 진통제, 소화제들은 대강 서랍에 갖추면서도 유독 빈번하고 괴로운 그놈의 감기에 대해서는 무대책이다.

 

약재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두어 시간만 달일 수 있는 싸고 간편한 약탕기 하나 준비해 두면 끝이다. 감기만 편해도 세상은 살맛난다.

 

 

 

 척박한 땅에서도

함부로 죽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도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