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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김진수의 들꽃에세이<45> 실고사리(海金砂)

by 호호^.^아줌마 2014. 1. 7.

김진수의 들꽃에세이<45> 실고사리(海金砂)

 

◇ 한국이 원산지인 실고사리는 전라도와 경상도 이남의 숲 가장자리에서 흔하고 세계적으로 40여종이 있다.

 

 

양치류 가운데 단 하나의 덩굴식물…실고사리(海金砂)

 

학명: Lygodium japonicum(Thunb.) Sw.

양치식물 고사리목 실고사리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

 

 

눈 속에서 눈을 뜨는 매화처럼 남녘의 겨울은 고향바다처럼 차고 따뜻하다. 햇살 오래 드는 마당귀에는 속살처럼 보드라운 흙이 부풀고 그 자리에 솔이끼며 별꽃, 주름잎풀, 방가지똥들이 벌써부터 파릇파릇 연둣빛 새봄을 꿈꾼다.

 

이 세상 어느 가슴 모퉁이라도 아직 다 흩날리지 못한 눈보라가 있고, 이 세상 어느 가슴 응달이고 미처 다 녹여 내리지 못한 눈석임도 있기 마련. 산책길을 걷노라면 흰 모자를 눌러쓴 채 어깨가 축 늘어진 한 ‘중년의’ 인동초에 마음이 깊어지고, 그 눈 다 녹이고도 남을 햇겨우살이며 앳영지버섯들에 망연 생각이 머물기도 한다.

 

양치식물(羊齒植物: 잎 모양이 ‘양의 이빨’처럼 가지런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은 씨가 있는 종자식물과 달리 꽃이 피지 않고 포자(홀씨)로만 번식한다. 꽃을 피우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꽃보다 아름다운 식물! 『실고사리』는 그 가운데 유일한 덩굴성이다.

 

초록이 그리운 산책길에 허리를 구부리고 실고사리가 설치해놓은 낮은 아치를 통과해보라. 숲의 정원이 원시의 기운으로 금세 싱그러워질 테니. 서로 다른 실엽(實葉: 홀씨를 만들어 생식을 하는 작은 잎)과 나엽(裸葉: 홀씨를 만들지 않고 광합성만 하는 큰 잎) 이 한 덤불에 뒤엉켜서 연출하는 기이한 맛을 느껴보려면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한다.

 

댓잎처럼 날렵하여 「죽원채(竹园菜)」라 부르기도 하지만 다른 양치식물인 ‘봉의꼬리’에 더 가깝고, 일본에서 계량한 원예종 ‘공작단풍(세열단풍)’의 잎냄새도 난다. 뿌리줄기는 옆으로 기며 흑갈색의 털이 있다.

 

한국이 원산지로 전라도와 경상도 이남의 숲 가장자리에서 흔하다. 세계적으로 40여종이 있으며 인도,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중국, 뉴기니아, 말레이시아 등지에 폭넓게 분포한다.

 

고생대 초기 무렵의 화석에서 발견된바, 육상식물의 선조형이라고 짐작되는 양치식물들의 매력은 역시 원시성에 있다. 여름철에는 녹야(綠野)에 젖어 살다가 초겨울부터 슬슬 제 빛을 발휘하는 『실고사리』. 대부분 겨울에 잎을 떨구고 봄에 새 잎이 나오는 하록성(夏綠性)이나, 서리가 내리지 않는 지대에서는 겨울에도 마르지 않아 우리나라의 제주도를 비롯한 남쪽 해안에서는 대부분 월동한다.

 

『실고사리』의 일본명은 「해초(蟹草)」로‘게풀’이란 뜻이다. 아이들이 이 풀의 덩굴로 게를 낚았기 때문이라 한다. 열대 아프리카의 일부에서는 어망을 짜기도 하고 올가미의 재료로도 사용한다고 했다.

 

『실고사리』는 실내조경소재로도 일품이다.「철선등(鐵線藤)」이라는 별명에서 보듯 철사줄 같은 가늘고 질긴 줄기를 가지고 있어 유인소재에 올리거나 지지대를 꽂은 평분 위에 심으면 일품의 야치(野致)를 사계절 내내 감상할 수 있다.

 

약명은 「해금사(海金砂)」이다. 성숙한 포자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고 황금빛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8~9월에 채취하는데, 포자가 떨어지지 않게 잎과 줄기를 아침이슬에 거두었다가 넓은 종이를 받혀 말린 뒤 그대로 두들겨서 포자를 털어내면 된다. 포자가루는 부드러운 감촉과 매끄러운 광택이 있다.

 

기미는 달고 차다. 독은 없으며 주로 소장과 방광경으로 들어간다. 이뇨통림(利尿通淋)작용이 강하고 청열해독(淸熱解毒)하는 작용이 있어, 요로에 발생한 세균감염이나 요로결석으로 생긴 혈림(血淋: 피가 섞인 오줌이 나오는 임질)에 단방으로 쓴다. 또 비장이 습해 몸이 붓거나, 천식으로 인해 잘 눕지 못하는 것 등에도 적용하며 습진, 대상포진, 신장염에도 효과가 있다.

 

무릇 덩굴성식물들의 공통적 효능은 이뇨작용에 있다. 초록을 잃어가는 나이는 신(腎)이 허해져 방광의 기능도 떨어지기 쉽다.

 

겨울 산책길, 그 강하다는 인동초보다도 더 푸른 옷을 입고 사방 모퉁이와 응달을 지키는 『실고사리』에서 황금빛 포자가 내질러주는 시원한 물줄기를 상상한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전남타임스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