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64> 팽나무(朴樹皮)
역사와 전설과 고향으로 트인 길목…팽나무(朴樹皮)
학명: Celtis sinensis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교목
우리나라 정자목 가운데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은 나무는 『팽나무』이다. 20m 이상으로 키가 크고, 500에서 1000년을 헤아리도록 오래 살며, 수세가 강하고 수형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지금도 산림청의 관리를 받고 있는 보호수만 1,200그루를 넘는다. 양지와 음지, 기슭과 골짜기, 내륙과 바닷가를 가리지 않는 호방한 성품의 낙엽활엽교목이다.
다만 평탄하고 토심이 깊은 곳을 좋아하여 비탈진 산지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노거수는 전라도와 경상도, 제주도 같은 주로 해안지방에 분포한다.
이는 『팽나무』가 큰 바람에 잘 견디는 강한 뿌리를 가졌고 내염성이 좋은 이파리를 달고 있다는 의미다.
속명 셀티스(Celtis) 는 ‘베리 같은 단맛의 열매가 달리는 큰 나무’라는 뜻으로, 고대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한다. 영어권에서는 이 나무를 슈거 베리(sugar berry)라 부른다. 열매가 연두색으로 열렸다가 10월 경 등황색으로 익으면 달착지근하여 먹을 만하다.
초여름부터 맺는 이 단단한 열매로 실탄을 삼아 대나무총을 만들어 쏘면 “팽-” 소리가 나서 『팽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팽나무』의 한자명은 박수(朴樹), 박수(樸樹), 박유(樸楡) 등으로 모두 ‘질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박유’는 이 나무가 느릅나무(楡)와 일가친척임을 암시한다.
경상도 쪽에서는 포구나무(포구 근처에서 흔히 자라기 때문)라 부르기도 한다. 같은 속으로 어린잎이 자줏빛을 띄는 「자주팽나무」가 있고, 잎이 둥글고 끝이 뾰족한 「둥근잎팽나무」, 잎이 거꾸로 된 달걀 모양의 「한다섬팽나무」, 잎이 원형 또는 넓은 도란형인 「왕팽나무」, 열매가 검정색이고 잎 끝이 꼬리처럼 길어지는 「검팽나무」 등이 있다.
「검팽나무」는 학명 조세니아나(choseniana)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원산이다. 그밖에 유사한 푸조나무와 풍게나무가 있다.
『팽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한국의 3대 당산나무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변하여 모든 것이 잊혀져가는 오늘에도 『팽나무』는 전설처럼 옛 성황당 부근, 너른 들판 또는 마을 어귀의 평화로운 자리에 서서 동그마니 우리들 잊을 수 없는 옛 고향과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돌이켜 준다.
한여름의 온갖 풀벌레소리와 초록 들판을 건너온 맑고 긴 바람과 우리들 누워 재잘거리던 아득한 유년의 놀이터들을 잊지 못하게 한다.
설사 뽕밭이 바다가 되었더라도, 예의 이정표나무였던 옛 솜씨를 발휘하여 『팽나무』는 여기서부터 북으로 얼마를 걸으면 장터이고 거기서부터 동으로 황토언덕을 절로 넘으면 고모네, 그리고 건너 훈이네 창밖으로 바라보던 눈보라 속의 그 서러운 굴뚝이 바로 내가 살던 초가삼간 대숲머리였다는 것도 다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그뿐인가, 팽나무는 크고 좋은 목재로 그 부모님의 옛 집을 지어주고 가볍고 튼튼한 재질로 가재도구와 악기를 만들어주었으며, 향기로운 줄기껍질과 잎으로는 병든 이들의 탕약을 지어주었다.
줄기껍질을 생약이름으로 박유지(朴楡枝) 또는 박수피(朴樹皮)라 따로 불렀다.
알칼로이드와 사포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성미는 달고 평하며 조금 쓰다.
생리조절작용이 있고 두드러기 치료에도 활용되며 폐농양과 요통에도 유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잎은 또 박수엽(朴樹葉)이라 하는데 스카톨, 인돌 등을 함유하여 종기나 통증 치료에 사용하고 부종에 차로도 마신다.
고목이 된 팽나무의 겨울 우듬지들은 마치 사람의 모세혈관처럼 가늘게 갈라지면서 끝이 가지런하다. 하늘의 손이 구름처럼 다듬어놓은 정원수라 할까, 느릅나무과의 어떤 나무보다 위엄 있고(꽃말) 풍채가 좋다.
거울 앞에 앉아 참빗을 든 할머니의 쪽머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학당의 엄한 훈장선생님의 칼칼한 목울대도 떠오른다. 생의 늘그막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본을 보이는 역사책 같고 생명과 존재의 가운데를 활짝 펼쳐놓은 철학책도 같은 나무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
◇ 수세가 강하고 수형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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