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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스크랩] 07231111 체육교육 송미나-인간이란 무엇인가

by 호호^.^아줌마 2008. 3. 1.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인간의 유형을 혈액형별 특징, 성격유형으로 나누어 보기도 하지만 이것을 통해 우리가 인간에 대해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래에서 정리한 것이 인간을 다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를 통해서 인간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걸맞지 않은 문학을 일부러 꿰맞춘 것 같아 교수님께 부끄럽지만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을 논해보려고 한다.


성숙하는 존재: 여기에서는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 나간다는 의미로 한 단계 더 발전되고, 더 나은 모습의 '인간'에 다가설 수 있는 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실수도 많이 하며, 완벽함이란 전혀 볼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뭔가를 배우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해 나간다. 예를 들어 파올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주인공인 베로니카가 죽을 뻔 한 경험을 하고 난 후 그 이후의 삶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고, 살고 싶다는 끊임없는 의지가 생기게 된다. 자살 이라는 실수, 사실 정말 죽음에 이를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 그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된다. 황순원의 「별」에서 주인공인 남자아이는 누이의 죽음 후 누이의 사랑에 대해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누이를 부끄러워 하고 미워했던 아이는 미워했지만 그만큼 자신을 사랑했던 누이에 대한 미안함 그리움으로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은 과연 아파야만 성장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지 않고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없을까? 하지만 일상에 젖어있는 인간은 거기에 안주하거나 순응할 뿐, 또 다른 이면의 세계를 생각지 못하는 존재이다. 아픔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고 나의 현 위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여 더 발전하도록 도와준다. 아픔과 실수, 부정적인 것으로 보기 보다는 나를 치유해주고 성찰할 수 있게 도와 주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다. 그 순간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행복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성장하는 존재' 즉, 발전적인 모습으로 가는 것이 인간의 한 측면이 아닐까. 


자기실현의 존재 : 아직 나조차도 자기실현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에게 '자기실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돼 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때문에 그 판단은 개인에게 맡기고 자기실현을 왜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지 설명하겠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에서 하는 일들. 이 부분에서는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3년전 읽어 봤던 책인데 사실 그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은 금화 세닢으로 양치기가 되어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그냥 가만히 있기 보다는 어디론가 떠돌아다니는 즉, 정말로 떠돌아다닌 다기 보다는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아실현을 이루게 되면 나의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왜 구지 편한 삶을 두고 떠돌아 다니면서 자아를 실현하려고 하느냐 라고 물으면 내가 아직 그러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왜 그래야 하는지는 대답하지 못하겠다. 인간이 모두 다 자아실현을 위해 열심히 사는 존재는 사실 아니다. 자기실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자가 있는 반면 현실에 안주하거나 그러한 욕구를 지니고 있지 않고 타성에 젖어 있거나, 자발적이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인간이란 '자기실현'을 통해 인간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꼭 있어야 한다고 밖에 나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면 자기실현을 통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껴 보는게 어떨지...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인간의 본성: 선인가 악인가?

교도소, 형벌. 이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피해를 주기 때문에 이를 막아보자는 의미에서 만들어놓은 것이다. 혼자 살면 모를까 집단으로 살아가는 존재일수록 부딪히고 서로 싸우고 조용할 날이 없다. 하지만 교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범죄를 지르거나 아예 교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앤소니 버제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폭력을 일삼는 청소년 패거리들이 나온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 강간, 살인 등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다. 교도소에서 교화를 해 봤지만 오히려 착한본성을 찾기 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힘들어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은 다시 폭력성이 있는 인간으로 사회에서 길들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사회 속에서 질서를 지키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내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인간의 본성 이라는 것이 다 숨겨져 있다. 이것은 위에 소설 처럼 폭력적인 것 성적 욕망 증오 등 부정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위의 환경에 따라 발현되느냐 마느냐의 차이이다. 수치상으로 인간의 선악 비율을 따지기도 그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 어려운 현실로서는 선,악을 논하기가 매우 힘들다. 개인의 사회적 성장 배경이나, 유전자의 특질에 따라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세상은 더 밝은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악이 있다면 선으로 최선의 방법으로 교화 시켜야 하며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100% 윤리적 인간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인간이기에 인간은 타인을 도와주고 베풀 줄 아는 멋진 존재 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역지사지로 자연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인간을 선하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태안 앞바다의 오염 같은 경우 바다는 우리 인간에게 "인간이면 다냐?" 라고 소리를 지를 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윤리적 존재로 드높이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전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만큼 무자비만 존재도 없을 것이다. 생태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을 텐데 '인간'의 개입으로 생태계는 엉망이 됐으니 말이다. 선과 악의 가치는 상대적인 관점이다. 이래도 인간은 선하다고 할 것인가?


다양한 욕구와 감정을 지닌 존재 : 이건 인간의 핵심이라고 보여 진다. 이 욕구는 셀 수 없이 많은데 세 가지만 집어 보겠다.  소유욕, 사랑, 질투. 누구나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도전하는 것과 성취욕이 생길 수 있다. 또, 무미건조한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것에 대해 조명해 보려 한다.


-소유욕: 물질에 대한 탐욕, 소유욕은 당연한 것이다. 또 사람에 대한, 어떤 능력을 갖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소유욕도 해당한다고 본다. 내가 자기 친구들 중에 가장 예쁜 '미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어하는 것도 '공부 1등'이라는 것을 갖고 싶은 것도 소유욕이라고 본다. 소유욕은 욕심과는 다르다.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인가를 탐내고 얻으려는 욕구지만 소유욕은 내가 그것을 갖을 만한 정당한 과정과 요건을 갖추었다면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과하면 도리어 화를 불러 일으키지만 적당한 욕망은 나에게 목적의식을 심어주고 그것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극이 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이는 자기가 최상의 향기라고 생각되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 여자들의 냄새를 갖기 위해 그녀들을 죽이는 행위를 하고 만다. 이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소유욕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나타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는 좋은 향기를 만들고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 또 자기가 당대 최고의 향수 제조자가 되는 것을 생각하는 그러한 소유욕은 자기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타인을 죽이고 인간의 비윤리적인 모습을 나타내면서 까지 행한다면 이것은 제한을 받아야 한다.


-질투: 질투는 인간의 감정에서 뺄 수 없는 것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을 의식하고 영향을 받는 존재인 인간에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감정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오셀로」에서 나온 오셀로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러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비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일반인들에게는 의처증과 의부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로간의 사랑을 하게 되면 남녀, 부모 자식 등에서 서로를 사랑하면 사랑할 수록 '질투'가 생기게 된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적이 있는가? 여기서는 주인공이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다.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의 재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살리에르는 음악가 로서 '재능'보다 '노력'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정말 노력을 해도, 모차르트의 발끝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모차르트의 능력이 질투가 날정도로 부러웠고 사랑했던 그는 결국 모차르트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어 죽게 만든다. 질투를 느낀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너무 좋아해서 생기기도, 또는 부러워서 생기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과격하고 도가 넘는 질투는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적당한 질투는 나도 그사람과 같이 돼야지 라는 목표의식이나 동기부여를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질투’ 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질투의 감정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한 적이 있다. 진정으로 그 사람을 좋아한다면 긍정적인 마인드 콘트롤을 통해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랑:  동물들은 생물학적으로 번식을 위해 사랑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난 진정한 인간이라면 동물과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동물과 같은 육체적 번식을 위한 에로스 적인 사랑이 아니라 마음과 서로의 영혼을 사랑하는 아가페적 사랑이 필요하다고 본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람을 사랑하는 것 보다는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그런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 하고 있다. 《음식이 아니어도 사랑은 우리를 살아가게 이끄는 진정한 동력임을 깨달아 나간다. 그것은 불꽃이며 그 불을 댕겨야만 영혼도 살찌운다는 것을….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는 겁니다.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한거죠.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사랑은 혼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을 통한 감정임을 나타낸다. 음식이 없어도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다니.. 이 말은 정신적 풍요를 '사랑'을 통해서 인간이 누리고 있는 것이고 이는 어떠한 가치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 한다. 인간이 이런 존귀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태어난 존재라니, 사랑은 위의 말처럼 불꽃 같이 따뜻한 것인가 보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만들어 내는 존재

: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앞을 보다가 뒤를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유토피아는 지향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존재라는 모순이 있지만 인간이 과학기술을 발전해가고 더 편리한 삶을 원하며 유토피아를 현실화하려 한다. 사실 인간이 유토피아를 지향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디스토피아 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부분도 많다. 산업화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개인간 불평등이 속출하는 등 모순된 모습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는 제목만 들으면 왠지 경쾌하고 흥겨운 스토리가 전개될 것 같다.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똑똑하고 예쁘고 성격 좋은 인간이 최고가 아닐까? 그야 말로 어디 흠잡을 대도 없고 완벽한 인간을 생각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과학기술을 동원한다. 열성유전자는 하급한 일을 하고 우성유전자를 가진 존재들은 그에 맞게 길들여 지는 것. 음~ 훌륭한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상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일까? 자유와 의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존재의 의미인데 이를 억압하는 것이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반유토피아로 인간을 내몰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인간이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오만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인간이 신석기 혁명부터 산업혁명까지 숱한 노력이 인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과거와 비교해보면 조금 더 유토피아의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진정한 유토피아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더욱 그것을 갈구하고 도달하고자 노력을 하고 ‘발전‘의 의미가 보이는 것이다.


집단과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존재 :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이다. 홀로 고독하게 살아나갈 수 없고, 사회 집단을 이루어 살고 서로 소통관계에 있다. 다니엘 디포 「로빈슨크루소 」라는 책을 모두 다 읽어보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외딴섬에서 홀로 있다보니 사람이 그리워져 배구공을 친구로 맞이하게 된다. 나는 처음에 그 사람이 무인도에 갇혀있어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고독, 외로움 때문이었다. 집단과 더불어 살던, 뒤만 돌아서면 누군가 얘기할 사람이 존재했던 그때에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마 타인과의 소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만 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 받음으로 내가 살아있고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항상 나의 주변에 누군가가 있기에 그 사람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혼자 잘난 맛에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위에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가. 또 혼자 생각하고 말한 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 나도 알고 있다.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없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를. 두 번째로 인간이 만능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또한 집단을 이루어서 살아야할 요건을 준 셈이다. 혼자가 되면 약자가 되기에 뭉쳐서 서로를 보호하게 되고 서로가 가지지 못하는 능력을 상호 보완적으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개인이 꼭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한한 존재 (죽음) : 생명체라면 태어나서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처럼 애절하게 슬퍼하는 존재도 없다. 자기 가족이나 아는 지인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사실 저번에 내가 죽음에 대한 레포트를 썼을때 죽음에 이르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고 전개했다. 하지만 그때 받았던 비판 중에 하나가 인간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음에 다르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맞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죽음을 숭고하게 받아 들일 수 있고, 반면 내가 그동안 한에 쌓여 분노하면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마지막 순간, 그 의미 있는 시간에 다른 사람 욕을 하며 내가 살아온 길을 비난하거나 도대체 왜 태어났지 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대부분 그럴 것 같다. 인터넷에서 인간다움이란 것에 대해 토론하는 글을 읽어 본적이 있었다. 출발했지만 도착하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도는 정답 없는 문제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러한 답글을 달았다. “인간은 죽음을 맞으면 가장 인간다워 지는 거 아니야?” 이는 참으로 현실적이다. 죽음 앞에선 누구도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고 자기에게 가면을 씌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욕할 사람도 없고 고고하게 죽을 필요도 없다. 유한한 존재의 인간은 평생 삶을 사는 것이 아니지만 언제나 난 죽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것만 같다. 솔직히 젊은 나이인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하루하루를 좀더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어떨까? 인간은 벼랑 끝에 도달해야 현실을 직시하는 것 같다. 그때 가서 후회하는 내가 되기보다는 지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자. 그리고 이왕 세상에 태어난 거, 나를 마음껏 펼치고 죽는 것이 ‘내가 여기에 태어난 이유’에 대한 답이 아닐까.


인간을 알기 위한 나만의 생각이 편협적 이고 엉뚱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인간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을 100% 완벽하게 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덕분에 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조차 해보지 않았을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한학기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첨부파일 07231111체육송미나-인간이란무엇인가.hwp


 

출처 : 닭머리
글쓴이 : 송미나 원글보기
메모 : 인간이 무엇이냐고요?